우린 모두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퇴근 후 걸어가다가 우연히 ‘깊이 반성합니다.’라고 쓰인 정당의 플래카드를 봤다. 얼마 전 같은 자리에 다른 정당이 ‘저희가 많이 부족했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걸기도 했었다.
정치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을 넘어서 연말, 연초가 되어 정치인들의 이런 메시지를 보고 나니까 문득 사람들은 철저하게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각자의 독특한 환경에 맞춰 자신만의 프레임을 만들고, 그 프레임에 맞춘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다.
화가가 세상을 본다면 세상은 점, 선, 면으로 보일 것이고
수학자가 세상을 본다면 세상은 모두 수와 식으로 보일 것이며
요리사가 세상을 본다면 세상은 모두 재료와 레시피로 보일 것이다.
마치 분홍색 선글라스를 끼면 세상이 모두 분홍색으로 보이는 것처럼 같은 세상을 살고 있지만 서로의 세상은 모두 다른 빛깔일 것이다.
이렇게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서로의 세상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수학자는 재료와 레시피로 구성된 요리사의 세상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고
화가는 수와 식으로 채워진 수학자의 세상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우린 치열하게 싸우고 대립하게 되는 것 같다.
각자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데 사실, 서로 다른 세상을 틀리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차의 좌측에 호수가 보이고 우측에 산이 보여서 왼쪽에 앉은 사람이 산이 아니라 호수가 있다고 주장하고
오른쪽에 앉은 사람이 호수가 아니라 산이 있는 거라고 주장하는 것이 틀리지 않은 것처럼 그냥 상대의 세상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심리학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어떤 사람이 상대에게 호감을 느낄 때 비슷한 사람에게 더 끌릴까 아니면 서로 다른 사람에게 더 끌릴까.
유사성의 원리에 따르면 비슷한 사람에게 더 끌리지만
상보성의 원리에 따르면 서로 다른 점이 보완이 되기 때문에 끌린다고 설명할 것이다.
그렇다. 둘 다 맞는 소리다.
그냥 관점이 다를 뿐이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서로 다른 관점이 서로 반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 그 자체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때론 서로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통역도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