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라미수와 쇠고기의 관계에 대해

소신과 지속가능성

by Summer Breeze

케이크가 너무 먹고 싶어서 편의점에서 티라미수를 보자마자 가격도 보지 않고 결제해서 집에 가져왔다. 촉촉한 커피 시트에 부드럽게 녹는 마스카포네 치즈, 카카오 파우더의 향까지 한 입 머금은 달콤함에 하루의 고단함이 저절로 풀렸다. 앉은자리에서 그릇을 다 비우고 치우려고 포장지를 보니

아뿔싸!

‘쇠고기 함유’란 글씨를 뒤늦게 발견했다.


사실 작년 말부터 채식을 하기 시작했다. 고기에 알레르기가 있던 사람도 아니었고 지금까지 잘 먹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채식을 한다는 사실에 주변 사람들은 놀라며 “갑자기 왜?”라고 묻곤 했다.

설명하기 귀찮을 땐 “강아지를 키워서”라고 간단하게 답변하기도 하지만 사실 내가 채식을 결심하게 된 것은 꽤 복잡한 이유가 있다.


시작은 ‘식량 일기’란 프로그램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음식의 재료들을 직접 재배해서 최종적으로 닭볶음탕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는데 채소는 물론이고 닭도 알을 부화부터 직접 키우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병아리가 닭으로 자라면서 시청자들과 출연진들까지 키운 닭을 잡아먹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끝없는 논의 끝에 결국엔 닭볶음탕이 아닌 고추장찌개를 끓여먹는 것으로 프로그램이 마무리됐다.

그 당시엔 그냥 특이한 내용이네란 생각으로 그냥 넘겼었는데 시간이 지나 ‘100일 후에 먹히는 돼지‘란 유튜브를 접하면서 무언가 큰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해당 채널에서는 ‘갈비’라고 이름 붙인 아기 돼지 영상이 100을 카운트하며 업로드됐는데 아주 정성스럽게 키우는 모습에 진짜 100일 뒤에 갈비가 잡아먹힐지에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진짜 100일이 지나고 영상 속에는 도축된 정육 상태의 돼지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픽션이라는 자막도 있기도 했지만 사실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충격을 받은 건 사실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식용동물과 반려동물의 차이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키우는 개와 보신탕 집에 팔려간 개가 뭐가 다르냐란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기 어렵다. 식당으로 팔려간 유기견들 중엔 리트리버처럼 사랑받는 견종도 있기 때문에 똥개라고 부르는 잡종이라서 잡아먹힌다는 논리도 맞지 않다. 그럼 가족으로 키우는 개와 식용동물로 주로 사용되는 소, 돼지가 뭐가 다르냐라고 물었을 때도 답할 수 없다. 소나 돼지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애정을 주었기 때문에 먹어도 됨과 먹을 수 없음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은 이기적이다. 그건 인간이 느끼는 죄책감과 꺼림칙함을 덜기 위한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식탁 위로 가야 할 운명의 동물도 정을 주게 되면 먹을 수 없다는 논리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하늘을 보고 초원을 마음대로 뛰놀 수 없이 갇혀서 죽을 날을 기다려야 하는 공장식 축산이 일반적인 현대사회에서 약육강식이니까 당연하다는 말도 적용시키기 무리다.


즉, 먹을 수 있고 먹을 수 없는 것, 생과 사는 인간이 정하는 것뿐이고 그 기준 역시 절대적으로 이성적인 것이 아닌 철저히 인간 중심적이다.

처음으로 인간은 오만한 존재라고 느껴져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오만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위해 채식을 결심하게 됐다.


알아보니 채식에도 여러 단계가 있었다. 단순히 고기만 먹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비건의 경우엔 우유와 계란도 먹을 수 없었다. 난 거창한 일회적 시도가 아니라 꾸준히 할 수 있는 지속가능성을 원했다. 회식이 있는 직장인이었고 일을 위해선 사회생활이 필요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낮은 단계인 폴로 베지테리언이 되기로 했다. 폴로 베지테리언은 쇠고기나 돼지고기는 먹을 수 없지만 생선과 가금류는 먹을 수 있는 채식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생선과 닭은 먹을 수 있다고 말을 하면 “에이, 그게 무슨 채식이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쉬워 보이겠지만 직접 해보니 생각보다 먹을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우선 시중에 파는 일반 라면은 전부 먹을 수 없다. 해물라면이라고 써져 있어도 상세 표기를 보면 쇠고기나 돼지고기가 포함돼 있다. 과자, 젤리도 마찬가지다. 고기가 안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상세 표기를 보면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티라미수에 고기가 포함되어 있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이미 먹은 뒤라서 어쩔 수 없지만 제대로 보고 사지 않은 나 자신을 반성했다. 아직까지도 어째서 티라미수를 만드는 데에 왜 쇠고기가 포함되었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잊어버리진 않을 것 같다.


언젠가 또 이렇게 무지로 인해 실수하게 되는 날이 생기더라도 내 결심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지속가능성이 동반될 때만이 소신이 진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부족함이 많은 채식주의자지만 계속 배워가고 싶다.


비건을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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