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작
쿨한 사람이라고 소리 내 발음했을 때 단어가 주는 느낌이 좋다. 어감이 멋지다. 쿨cool을 번역하면 ‘멋지다’라고 할 수 있을텐데 느끼기에 쿨한 사람과 멋진 사람의 차이는 천지같다. 너 정말 쿨하다고 하면 신세대같아 보이고, 너 정말 멋지다고 하면 철 지난 유행어같이 느껴진달까. 어릴 때나 지금이나 쿨하다는 말이 주는 느낌은 한결같다. 사람들이 이 단어를 사용한 지 십 년도 더 지났는데 여전히 젊고 활기찬 느낌을 주는 걸 보면 늙지 않는 단어인가 보다. 그렇기에 나는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쿨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건가봐. 굉장히 오글거리고 웃기지만, 그래도 맞아. 그래도 난 늘 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부정하기엔 너무 오래 바라왔다고.
내 안에서 쿨한 사람의 모습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몇 가지는 성격, 몇 가지는 직업, 몇 가지는 코르셋과 관련있다. 아, 한두 개는 이성하고도 관련있고. 일단… 이성 관련 면에서 난 이미 글렀다. 내 마음 속 쿨한 사람은 애인이랑 헤어져도 아무렇지 않고 남자에게 목매달지 않아야 하는데 나는 윤호랑 헤어진다면 그렇게 행동할 자신이 없다. 코르셋 면에서도 글렀다. 쿨 걸은 식단 조절도 잘 하고 ㅡ식욕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야하는 거지만ㅡ 옷도 세련되게 입고 화장도 잘 하는데 난 약간의 탈코르셋을 지양하고 있으며 옷 입는 데 관심이 전혀 없으니까. 직업도 조금 그른 것 같다. 멋진 커리어우먼이 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런 직업을 가지는 건 분명 내겐 너무 어려운 일일 테니 말이다.
노려볼 수 있을 만한 쿨한 사람의 조건, 첫 번째는 성격. 쿨한 사람은 말이지, 우선 뒤끝이 없어야 한다. 이건 괜찮다. 내게 치명적인 짓을 하는 게 아니면 어느 정도 잘 넘어가 줄 수 있거든. 나랑 친하다고 생각하는 11살 시영이가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는 거일 수도 있다- "아이, 씨" 라고 했지만 사과를 받아 주고서 아주 너그럽게 넘어가 주었다고. 그리고 굳이 따지면 예민하다기보단 무던해야 한다. 난 이것도 합격이라고 할 수 있다. 장장 4년의 기숙사 생활을 하며 2인실, 4인실, 8인실 방에서 지냈는데 룸메이트들과 갈등 한 번 없이 잘 지냈으니까. 심지어 동생이랑도 살았는데 동생하고도 아주 잘 살았다. 알고보니 나는 함께 하는 사람에게 잘 맞춰주는 성격이었지. 음, 아, 또 남을 무시하거나 깔아 뭉개지도 않아야 한다. 뒷담화도 금지다. 쿨한 사람이라면 자고로 남에게 관심이 없어야 하거든. 이건 조금 반성한다.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할 때가 있거든! 또 남을 깔아 뭉개거나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글이니까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다른 사람이 멍청하다고 생각했을 때가 몇 번 있었다. 그래도 입 밖으로 꺼낸 게 아니라 생각밖에 안 했으니 고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어.
그래도 역시 가장 중요한 쿨한 사람의 조건을 꼽자면, 깔끔하다는 거겠지. 그러면 난 영 포기해야겠다. 난 아무리 봐도 깔끔한 사람은 못 되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질척거리면서 달라붙고 싶고 엉겨붙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가는 사람 깔끔하게 인사하고 보내고 싶지만 왜 그러냐고 묻고 싶기도 하고, 굉장히 쓸데없는 짓을 하면서 주변을 마구 들쑤시고 싶기도 하니까. 내가 쿨해보이는 순간이 온다면 그건 아마 귀찮아서 그렇거나 신경쓰기 싫어서 방치하는 거일 테지. 시영이가 내게 낮게 읊조리며 욕 아닌 욕을 한 걸 그냥 내보낸 건 쿨해서가 아니라 어린 아이라서 그런 거고, 괜히 큰 소리 내기 싫어서 이기도 했다. 룸메이트들과 싸우지 않고 잘 지낸 것도 괜히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내가 양보하고 또 양보해서 그런 거였을 수도 있다. 실수하는 사람을 쉽게 용서해주는 것도 워낙 실수투성이인 내가 생각나서 그런 거일 수도 있고. 아니…, 만약을 갖다대지 않고 그냥 그렇다고 확정지어도 좋을 정도다. 아마 다 그 이유일 거다. 내가 쿨해보인다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쿨한 사람이 되고 싶다며 집착 아닌 집착을 한 이유는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원하는 이상향 생각을 더 많이 하는 법이니까. 가령, 강아지상은 고양이상이 되고 싶어서 고양이상에 집착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너무 질척질척한 인간이다. 너무 축축하고 눅눅해. 난 늘 바삭한 와플이 되고 싶지만 습기를 먹을 대로 먹어서 축 늘어진 와플이다. 난 이미... 글렀다. 하하하. 와플이 축축해지면 식감은 부들부들하고 쫄깃해져 천장을 까지게 만들 일도 없지만 대신 본래의 매력을 상당 부분 잃는다. 음, 하지만 그건 내가 원래 바삭한 와플이었을 때나 통할 이야기지. 난 애초에 눅눅하게 태어났다고. 그러면 부러워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거 아냐? 눅눅한 와플이 바삭해지려면 다시 기계 안에 들어가는 수밖엔 없는데 그건 인간으로 대입했을 때 다시 태어나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되도 않는 바삭한 와플 선망은 집어치우고 눅눅한 와플 매력이나 들여다봐야지. 원래 삶은 이런 정신 승리가 전부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통해, 더는 쿨한 사람이 되겠다는 꿈은 집어치우고 그냥 나로서 살겠다고 선언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러니까 그냥 지금 나 자신을 사랑하며 이대로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