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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따가 Feb 20. 2022

왜 이렇게 똑같이 나누는 것에 민감해?

신혼부부도 부부싸움을 합니다

"어제랑 말이 다르잖아."


처음엔 사소한 실랑이였다. 규칙대로 내 가 저녁상을 차렸으니 아내가 설거지를 해 야 했지만, 아내는 저녁 먹자마자 급히 회사 일이 생겨서 한 시간 후에야 부엌으로 돌아왔다. 부엌은 설거짓거리가 쌓여있는 그대로였다. 나의 몫은 책상 정리였기에 난 책상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아내는 뒤늦게 설거지를 시작했다. 내가 설거지통 옆에 두었던 컵은 남은 우유가 말라붙어서 잘 씻어지지도 않았다.


"컵 또 여기다 놓으면 어떻게 해. 이건 나한테 일을 미루는 거잖아."

"미루려던 거 아니야. 뒀다가 한 번에 같이 하면 좋잖아."


아내가 다시 말했다.


"자꾸 컵 쓰고 여기 갖다 두면 나보고 하라는 소리잖아."

"내가 왜 일을 미뤄. 그럼 옆에 둬 내가 이따가 할게."

"컵을 썼으면 바로 씻어 둬야지. 나는 컵 이 이렇게 있는 거 보면 화가 나!"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고. 아내는 내게 할 말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참아왔던 얘기를 시작했다.


"컵이 책상에 하나 있어서 설거지통에 갖다 둔 것뿐이야. 나도 놀고 있는 게 아니라 정리 중이라서 그랬고. 컵 바로 씻어 놓기로 얘기한 적 없잖아. 설거지 하나 더 하는 게 그렇게 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가져다 둔 거야. 나는 이게 잘못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 일이 힘들다면 말해줘 내가 더 할게. 나는 그냥 컵 같이 작은 일로 우리가 다투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 이렇게 똑같이 나누는 것에 민감해?"



남편과 아내의 입장


터트려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하는 집안일에 대해 아내와 내가 다르게 느끼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내는 '내가 1을 했으니 너도 1을 해야 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똑같이 나누지 않더라도 함께 해나갈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더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이 내가 된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누가 더 많은 노력을 하는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도 바꿔 달라고 부탁받은 일을 매번 지키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아내에게 화장실을 썼으면 환기되게 문을 열어두거나 환풍기를 켜 달라고 여러 번 얘기했지만, 알겠다는 말 뿐이었고. 음식 상하니까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 먹었으면 바로바로 넣어두자고 여 러 번 얘기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환기하면 되는 일이고. 내가 넣어두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더는 이런 일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꼭 저렇게 작은 일까지 하나하나 똑같이 나누고, 짚고 넘어가야 할까?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이해하게 된 사실이지만 내 섣부른 추측과 다르게 아내의 불만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아내도 자신이 좀 더 집안일을 맡아도 괜찮았다. 오히려 아내가 힘들었던 것은 내 가 집안일을 귀찮아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자신에게 떠넘기는 듯한 태도였다.


그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설거지하는 일 때문에 다투었던 그날 우 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대화를 통 해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그 단어의 뜻은 이해했지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싸우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용기를 내어 말했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집안일을 골고루 한 번씩 맡던 기존의 방 법은 겉으로는 좋아 보인다. 한 번 요리를 했다면 다음엔 다른 사람이 하고, 누군가 요리를 했다면 다른 사람은 설거지를 하는 공평해 보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번갈아가면서 일을 하면 책임은 뒤섞여버린다. 어느 한 사람이 자기가 맡은 일에 신경을 덜 쓰면, 좀 더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에 게 집안일의 책임이 주어져 버린다.


우린 집안일을 나누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부엌은 내 것. 거실은 아내의 것으로 하기로 했다. 부엌에서 해야 하는 모든 일은 나의 책임이다. 요리부터 설거지. 음 식물 쓰레기까지. 아내가 도와줄 때가 있지만.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 부엌에 설거지 거리가 쌓여있고, 설거지를 마음에 들게 하지 않았더라도 아내는 되도록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책임을 나누는 방식으로 집안일 분배를 바꾸고 나서는 서로가 담당인 구역에 대해 관여하지 않았기에 집안일로 다투는 일이 없었다. 비록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 은 숙제로 남아있었지만, 이날 배웠던 건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태도였다. 내가 계속해서 '난 너를 이해하지 못하겠어"라는 태도로 일관했다면, 지금까지도 컵을 설거지하는 일로 다투고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는 숙제를 잊어서 는 안 되겠지만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때로는 이렇게 중립지대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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