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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따가 Oct 17. 2021

개발자 신혼부부는 24시간 붙어살아요

잠들고 눈뜨는 것은 따로 입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이렇게 온종일 붙어있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을 거다. 코로나 없던 시절에는 아침에 눈뜨면 보고, 저녁에 퇴근하면 봤겠지. 야근이라도 할라치면 잘 때가 되어서야 얼굴 볼 수 있었을 거다. 우린 6개월 차 신혼부부다. 두 사람 모두 IT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덕에 '전면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매일 24시간 붙어살고 있다. 결혼 기간인 6개월 중에 함께 집에서 머무른 기간이 5개월 하고 2주 정도는 될 거다. 


일어나면 간단히 고구마를 에어프라이어에 돌려 먹는다. 나는 아침 운동으로 실내 자전거를 타고. 아내는 청소를 하며 출근 준비를 한다. 업무 시간에는 서로 회의도 있고 하니 각자의 자리에서 업무를 본다. 그래서 어떻게 일하는지는 곁눈질로만 보게 되는데 디테일한 업무 내용은 몰라도 일하는 분위기 정도는 알게 된다. 보아하니 이번 프로젝트는 순탄치 않은 것 같다.


매일 아침 먹는 고구마


매일 둘이 같이 붙어 있으면 먹는 것부터 달라진다. 혼자서는 귀찮아 끼니를 때우기 일쑤고, 배달을 시켜도 음식이 남는 것 때문에 곤란했는데. 이제는 배달 음식 시킬 때 남을 걱정은 안 하고. 밥도 예전보다 제대로 챙겨 먹는다. 밥 챙겨 먹기가 귀찮을 때도 있지만 남의 집 귀한 딸 데려와서 밥도 잘 못 먹이면 안 된다. 이제는 배달음식이나 인스턴트식품 먹는 횟수가 많이 줄었고. 아내 입맛에 맞춰 김치찌개, 된장찌개, 청국장찌개를 자주 먹는다. 아내는 생각보다 입맛이 좀 구수한 사람이었다.


퇴근 후에는 한 책상에 앉아 개발을 하거나 책을 보는데, 한 사람이 딴짓을 하면 다른 사람도 딴짓을 한다. 이게 서로를 감시해주는 효과가 있어서 서로 눈치를 보며 자제하게 된다. 물론 맘 편하게 함께 빈둥댈 때도 많아 걱정이다. 그러다 바람이 쐬고 싶어질 때면 같이 동네 산책을 하거나 근처 마트로 쇼핑을 간다. 요즘은 마트 가는 것보다 배달을 시키는 것이 저렴한 경우가 많지만. 손에 잡히는 물건을 직접 골라 집으로 가져온다는 것에는 온라인으로 느낄 수 없는 묘미가 있다. 



매일 그대와 아침 햇살을 받으며 매일 그대와 눈을 뜨고파

프러포즈에나 쓰일 것 같은 이런 노래 가사를 보면 매일 잠들고 일어나는 것을 같이하는 신혼부부가 그려지지만, 우리는 정확히 반대로다. 다른 건 다 같이 해도 '잠들고 눈뜨는 것'만 같이 하지 않아서, 같이 산지 6개월 차이고 각방을 쓴 지도 6개월 차다. 특별히 싸웠다거나 해서 각방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아내가 잠꼬대가 잠버릇이라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또 내가 누가 옆에 있으면 잠을 깊게 자지 못해 그렇다. 방이 없다면 몰라 방이 따로 있으면 따로 자야지, 불편해서 어떻게 같이 자나 싶다. 숙면만큼 인생에서 중한 것이 또 있을까.


개발자 신혼부부 말고도 매일 같이 붙어사는 부부가 있는데, 은퇴부부인 우리 부모님이 그렇다. 아버지는 평생을 공무원으로 사셨고. 엄마도 집에 있기보다는 바깥 활동을 많이 하셨기에 아버지 은퇴하실 때까지 두 분이 하루 종일 같이 붙어 있던 적이 없었다. 처음 두 분이 같이 붙어 계시게 되었을 때, 엄마가 못 견뎌하셨다. 뭘 물어봐도 속 시원히 대답도 안 해주고 뭐 하나 작은 것 까지 마음 맞는 일이 없다고 나에게 와서 한 바탕 하소연을 하고 가시고는 했다. 반 평생을 한 집에 살아 잘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있던 것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며 말이다. 


우리는 부모님이 겪었던 과정을 좀 더 빨리 겪고 있는 것 같다. 연애는 오래 했지만 같이 살 게 된 후 서로 다른 부분이 전보다 많이 보인다. 아내는 남을 생각하고 배려해서 말하는 편이지만, 나는 눈치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하는 편이다.  내가 사소하다고 생각해서 신경 쓰지 않는 일들을, 아내는 디테일하게 하나하나 잘 챙긴다. 이런 차이 때문에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 다툰 적도 여러 번인데 요즘은 서로의 성향이 다르니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생각한다. 오히려 각자 잘하는 것이 다르니 역할이 나뉘어 편리하기도 하다.


우린 은퇴하기 전에 좀 더 말랑말랑한 머리로 함께 합을 맞춰보고 있다. 다른 신혼부부들도 겪는 일이겠지만. 우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24시간 붙어 지내면서 좀 더 밀도 있게 한다. 생긴 대로 사는 게 좋은데 괜히 결혼해서 사정 맞춰 가며 붙어사는 것이 때론 피곤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난 6개월 동안 괴롭다거나, 견디지 못하겠다는 마음 안 드는 걸 보면 같이 살게 된 것이 이 사람이라서 다행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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