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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따가 Oct 03. 2021

웨딩촬영, 그게 뭐 특별한가 사진은 맨날 찍는 건데

결혼사진 직접 찍었습니다

스몰 웨딩을 결심한 것은 결혼 박람회의 간이 부스에서였다. 플래너분이 보여주시던 웨딩사진이 끼워진 바인더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신랑 신부가 있었지만, 그 사진을 보는 내 얼굴은 굳어갔다. 스드메 패키지는 100만 원은 우습게 넘는 가격이었다. 거기다 각종 제약 사항에 기타 추가 비용까지 있었다. 다른데 알아보고 오시면 이 가격이 정말 괜찮은 가격이라는 걸 아실 거라고, 아주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플래너님은 말씀하셨다. 오늘 당장 계약하지 않으면 이 가격은 어렵다고, 정말 좋은 기회라는 말까지 듣고는 확신이 들었다. 


이러다 '호갱'님이 되는 거구나!

우리는 결혼식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게 될 첫 단추라고 여겼다. 우리의 삶의 방식이 엿보이는 결혼식을 하고 싶었고, 적어도 우리가 호갱처럼 느껴지는 스드메 패키지를 우리의 시작으로 선택하지는 않기로 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결혼식!?' 좋다! 그럼 어떤 것부터 시작해볼 수 있을까. 결혼사진이 만만해 보였다.

 

결혼사진. 그게 뭐 특별한가 사진은 맨날 찍는 건데. 

어느 가을날. 우리는 하남시에 있는 미사리 조정 경기장을 찾았다.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 쓰면 결혼식에 쓸만한 사진 정도는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차려 입고 바닥에 세울 수 있는 셀카봉 하나를 들고서는 든든해했다. 그날은 핑크 뮬리가 만개한 데다 주말이기도 했으니 사람이 참 많았다. 주차할 곳도 없어 우리는 핑크 뮬리가 있는 곳에서 한 참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걷기 시작했다. 산책 삼아 걷기엔 좀 먼 거리였다. 다리와 발바닥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혼돈의 핑크 뮬리


한 참을 걸어 도착한 곳에서는 꽃 반 사람 반이라 사진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결혼식장이나 청첩장에 들어갈 사진이라면 좀 널찍하고 아름다운 배경에서 찍었으면 했는데, 여기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30분쯤 애쓰다가 결과물에 실망하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 한 예비 신혼부부가 사진사를 대동하고 와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였다. 꽃이나 특별한 배경은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공터였고, 그저 파란 하늘만 보이는 한적한 곳이었다. 옷매무새 하나, 마주 보는 각도까지 신경 써 주시는 사진사님과 턱시도와 드레스를 갖춰 입은 신랑 신부. 그제야 '결혼사진'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저렇게 찍어야 결혼사진이 되는구나...

한 차례 힘겨운 촬영이 있고 몇 개월이 지나 돌아온 봄날. 다시 용기를 내어 유채꽃이 만개한 안성 팜랜드를 찾았다. 괜찮은 사진을 찍을 자신은 없어 연습 삼아 찍는다는 명분으로 왔지만, 저번 촬영 때 배운 것이 있기에 이번엔 나름대로 준비를 좀 했다. 인스타에서 참고할만한 사진도 찾고, 삼각대도 준비하고, 아울렛에서 새로 산 양복에 힘들여 고른 흰색 드레스까지 입고서 유채꽃밭으로 향했다. 햇볕은 따갑게 내리쬐었지만, 일찍 도착했기에 다행히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여러모로 준비했음에도 셀프로 사진 찍기는 결과물이 그리 좋지 않았다. 사진기 앞에서 굳어가는 나의 로봇 같은 어깨와 안면 근육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고, 어설픈 구도와 역광으로 찍은 사진을 보며 평소에 사진에 관심 좀 가질걸 싶었다. 출사 나오신 사진작가분들이 신랑, 신부가 이쁘다고 우릴 찍어주시지 않았다면 또다시 실패를 맛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괜찮은 사진 몇 장을 건질 수 있던 것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셀프로 결혼사진을 찍으면서도 정말 이걸로 괜찮을까 하는 불안함이 있었다. 우리는 의미 있는 결혼식이 필요했지만, 초라하고 부끄러운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야외 스냅이나 스튜디오 촬영을 할까 고민하기도 했고 본식 사진은 정말 마음에 드는 사진작가분을 찾아 부탁드렸다. 우리가 좀 더 부지런했거나 우리 선택에 확신이 부족했다면 야외 스냅도 했을지 모르겠다.


헤어나 메이크업 없이 직접 찍은 사진은, 좋게 말하자면 자연스러웠지만 다르게 보면 조금 못난 모습의 내가 있다. 사진 속 우리 모습이 실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못난 모습이면 또 어떤가. 우리가 찍었던 사진을 보면 함께 결혼사진을 찍으러 간 기억이 떠올라 가슴 한켠이 훈훈해진다. 사진에 대해 쥐뿔도 모르지만. 잘 찍은 사진이란 건 완벽한 모습의 내가 있는 사진이 아닐 거라고. 그리고 우리의 결혼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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