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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Sep 14. 2021

수현, 수아

짧은 픽션 01

“넌 아무나 사랑하잖아”


“넌 아무도 사랑 못 하잖아”


수아와 수현이 그렇게 서로를 쏘았다. 수아와 수현은 9분 차이의 일란성쌍둥이다. 수아가 먼저, 수현이 나중에. 얘기 첫 시작은 수아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본 옷을 수현에게 보여주며 ‘이 옷 예쁘지 않냐? 사서 같이 입을래?’였는데 어느덧 둘은 이런 말을 내뱉고 있었다. 수아가 수현에게, 넌 아무나 사랑하잖아. 수현이 수아에게, 넌 아무도 사랑 못 하잖아. 


분명 둘의 생김새는 아주 비슷했으나, 묘하게 수현만 인기가 있었다. 뭐랄까, 눈빛이나 말투의 뉘앙스가 달랐다. 수아가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헤어질 때 아무 목적 없는 목소리로 ‘잘 가! 오늘 재밌었어!’라고 한다면, 수현은 ‘오늘 재밌었는데... 가려니까 조금 아쉽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수아가 그 차이를 알 리가 있을까. 수아는 그저 ‘맨날 거지 같은 새끼들만 만나는 주제에’라고 말하는 게 제일 적당한 다음 공격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넌 거지 같은 새끼들도 안 꼬이잖아’라는 수현의 말에 수아는 K.O 완패를 당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진짜 죽을 만큼 싫었던 일은 고등학교 때 같이 다녔던 학원에서 수아가 좋아했던 오빠가 수현에게 고백을 했던 때였다. 그때 그 오빠는 빼빼로 데이를 빌어 수현에게 고백을 준비했는데, 저 멀리서 걸어오는 수아를 수현으로 착각하고 주려다가 이렇게 말했다.


“아...? 수아였구나. 수현이는 혹시 어디 있는 줄 알아?”


화장실에 갔는데요. 그 오빠는 고맙다며 수아가 좋아하는 미소를 지었다. 뭔가 싸한 기분에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니 하트 모양의 빼빼로를 뒤에 들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수현의 침대에 그 빼빼로가 놓여있었다. 그날 수아는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잠들었다. 


그러던 둘이 제대로 성향이 갈렸던 건 집이 말하자면, 한국의 거의 모든 집이 그렇듯 아빠가 엄마를 패기 시작했던 일이었다. 수아는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에게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서 ‘아빠가 우리를 위해서 뭘 했는데. 엄마도 나도 수현이도 사는 거 힘들어 왜 혼자 난린데’라고 말한 반면, 수현이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아빠... 우리한테 왜 그래.. 예전엔 안 이랬잖아.. 아빠 응? 왜 그래..’하는 것이었다. 수아는 그런 수현이를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쟤는 이 순간에도 사랑을 하네. 대체 어쩌려고.


그리고 아빠가 떠났다. 어느 날 밤 화장실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아빠 같았다. 그러나 아빠가 우는소리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설마 우는 건가, 하고 넘겼었다. 아빠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모든 게 그대로였다. 겨울옷도 옷장에 그대로였고, 신고 나갔을 신발을 제외하고 신발도 그대로였다. 


어느 날은 수현이 ‘이 추운 날 아빠는 어디서 뭘 하고 계실까...’라는 말을 하며 감상에 빠졌는데, 수아는 아무 감정 없이 ‘숙식까지 해결되는 곳에서 일하고 계시겠지’라고 말했다. 수현은 그런 감정 없는 수아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 또 그 말을 뱉었다. 진짜 넌 아무도 안 사랑하는구나.


“네 마음속에 널린 사랑 가지고 유세 떨지 말아라. 네가 사랑하는 아빠 어딨는데 지금? 알기나 하냐?”


수현은 그 말에 뒤돌아 펑펑 울며 집으로 들어갔고, 그 이후로 둘은 서로의 ‘사랑’에 관해서 언급하는 일을 암묵적으로 금기시했다. 그리하여 아빠의 물건은 모두 수현이 관리했다. 아빠가 나중에 돌아오면, 이라고 말하면서 서랍장 한 칸 모두 아빠의 물건을 꼭꼭 넣었다.


그 서랍은 그 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지나 여름이 되어도 열리지 않았다. 어느 날 수아 혼자 집에 남겨진 날, 느지막이 낮에 일어난 수아의 시선에 그 서랍이 들어왔다. 수아는 서랍을 조심히 천천히 열었다. 낡은 나무끼리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열린 그 서랍에는 수현의 사랑이 가득 담겨있었다. 수현의 널려있는 사랑이 그 서랍 한 데에 모여있었다. 


수아는 난생처음으로, 아빠가 돌아오기를 바랐다. 수현을 위해서라도 돌아와야 된다고 생각했다. 수현을 닮은 이 서랍을 한 번은 열어보기를 바라면서. 수아는 생각했다. 만약 아빠가 돌아온다면, 그건 수현 덕분일 거라고. 수아는 조용히 서랍을 닫았다. 낡은 나무에선 아까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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