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은 Sep 14. 2021

우리의 윤 감독

짧은 픽션 02

*


“토렌트를 써서 헤어졌다고?”


응, 이라고 서희가 짧게 말하고 양꼬치를 쯔란에 살포시 찍었다. 서희의 왼쪽 볼 안으로 양고기가 사뿐히 들어갔다. 얼마 전, 서희는 소개로 알게 된 남자가 있었다. 여러 가지가 무던히 잘 맞는다며 세 번째 만남에 바로 연애를 시작해 알콩달콩 사귀는 티를 어마어마하게 냈는데, 그런지 두 달도 되지 않아 헤어졌다고 했다. 이유는 남자 친구가 토렌트를 이용해서. 얘기는 이랬다. 남자 친구네에 놀러 가서 섹스를 마치고, 영화를 보기로 했다. 남자 친구가 무슨 영화가 보고 싶냐고 물었고, 서희는 에릭 로메르 영화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야 너는 거기서 쉽게 타란티노나 우디 앨런이나 말하지 무슨 로메르를 얘기를 해 너도 참. (나는 듣다가 잠깐 이렇게 반응했다.) 하여튼, 남자 친구는 서희의 말에 에릭 로메르 영화를 넷플릭스, 왓챠, 유튜브를 통해 찾아봤지만, 물론 없었다. 그때 서희는 그냥 있는 거 보자… 했는데, 남자 친구가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야 토렌트엔 분명히 있어’라고 기세 등등하게 얘기했더란다. 서희는 키패드에 올라가 있는 남자 친구의 팔을 홱 낚아채면서 지금 뭐 하는 거냐, 고 말했다. 갑자기 공격적인 태도로 바뀐 서희를 보고 놀란 남자 친구가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아니… 영화… 이거…라고 버벅댔다. 그리고 처음으로 ‘너’라는 호칭으로 남자 친구를 부르며 말했다. 너 토렌트 쓰냐?


서희의 남자 친구는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왜 그러냐고 물었다. 이거 불법인 거 몰라? 서희가 말했다. 남자 친구는 갑자기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데굴데굴 구르는 듯한 시늉을 했다. 아이고, 그거 때문에 그랬어요? 남자 친구는 서희의 머리를 쓰다듬고 다시 키패드에 손을 올렸다. 서희는 다시 남자 친구를 저지했다. 진짜, 토렌트 써? 나는 얘기를 여기까지 들었을 때, 얘기의 전개보다 얘기를 하는 서희의 표정을 살폈다. 진짜였다. 서희는 정말로, 토렌트를 하는 남자 친구의 행동에 정이 떨어진 것이었다. 남자 친구는 서희에게 장담하는데 내가 지금 다운로드해도 아무 일 안 일어난다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가 너 잡혀갈까 봐 그래? 이거 만든 사람들 입장은 생각 안 해? 이런 말을 알몸으로 계속 주고받다, 서희가 집을 박차고 나왔다고 했다.


“그게 끝이야?”


“연락 한 번 왔는데, 그때도 정신 못 차렸더라고. 이해가 안 간대. 무슨 무단 횡단해서 헤어진 기분이래”


“… 진짜 그게 끝이야? 그래도 그 사람 괜찮았잖아. 직장도… 생긴 것도…”


“기본적으로 의식이 없는 사람이야”


공감의 표시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지만, 사실은 그렇게 공감이 되지는 않았다. 토렌트… 나도 사용한 적이 있었다. 영화를 너무 좋아했고, 영화과에 진학하게 되면서 봐야 되는 영화가 무수했다. 난 그냥 허진호 감독 영화만 보고 영화가 하고 싶어 졌을 뿐인데… 내가 알아야 되는 감독이 이렇게 많은 걸까. 히치콕이며 로메르며 고다르, 라스 폰 트리에, 레오 까락스까지 내가 왜 알아야 될까… 새내기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교수님들이 너무 당연하게 물 흐르듯이 이거는 약간 히치콕 같지? 고다르 초기작은 약간… 이런 식의 말을 할 때면 마치 외국어를 듣는 것 같았다. 그때마다 자격지심이 생겼다. 왜냐면 몇몇 애들은 그 외국어를 무슨 말인지 다 알겠다는 듯, 자신이 간지러운 부분을 교수님이 너무 정확한 표현으로 긁어줘서 시원하다는 표정을 짓는 게 그렇게 만들었다. 나도 알고 싶었다. 그들의 농담에 끼고 싶었다. 그들의 여유로운 웃음 속에서 나도 같이 웃고 싶었다. 그래서 토렌트를 접속했다. 


그러다 2학년 초쯤에 했던 수업에서 교수님이 어떤 영화를 말하며 본 사람 손들어보라고 했는데 두 명이 손을 들었다. 어떤 경로로 봤냐 물으니 그 두 명이 입을 모아 ‘토렌트’라고 발음했다. 교수님이 한숨을 쉬셨다. 우리는 웃었지만, 교수님은 정말 피곤하다는 듯이 ‘그런 것 좀 그만해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가난한 학생이었고, 학자금 대출이 많았고, 아르바이트를 했으니 그런 말을 듣고도 ‘저 사람이나 가능한 말이지 우리 같은 애들이 어떻게 매번 돈 주고 보냐’라는 말로 교수님을 씹었다. 그래, 생각해 보니 그때도 서희는 한쪽에서 ‘나중에 너네가 만든 영화 사람들이 돈 안 내고 보면 좋겠냐’라고 했었다.


서희가 틀린 선택을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약간은 아쉬웠다. 서희 남자 친구가 가진 깔끔한 외모가 아른거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눈에 가장 아른거렸던 건 그의 목에 걸려있던 사원증이었다. 우리 과에서, 내 주변에서 사원증을 걸고 있는 남자가 있기나 했던가? 아니 사원증은 고사하고 정장 한 벌이라도 있는 남자가 있었나? 향기라도 한 번 나면 모든 여자애들 마음속에 ‘꽤 괜찮은 애’라는 인식이 생길 정도였다. 참, 그럴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겠지만 모든 게 가벼웠다. 주머니가 가벼운 만큼 다운로드 가볍게 클릭했고, 가볍게 연락해서 가볍게 술을 마시다 가볍게 자고, 가볍게 헤어졌다. 그에 반해 서희의 남자 친구는 이미 3년 차 직장인이었고, 연봉이란 게 있었고, 매일매일 향할 곳이 있는 사람이었다. 


*


서희의 이별은 동기들에게 금세 화제가 됐다. 졸업을 하고 났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소문이 빨리 나는지. 인스타그램에 사진이 내려가서 알았다고 했다. 동기들도 나와 반응이 같았다. ‘그 남자분 괜찮은 것 같았는데’라는 말이 첫 멘트였다. 아무래도 준수함이 사진으로도 전해졌나 보다. 왜 헤어졌대?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시선을 피하려 맥주나 한 모금 더 마시는데 대각선으로 앉은 동기가 주책을 떨며 ‘토렌트 때문이잖아! 토렌트!’라고 말했다. 멀리 앉은 애들은 외국 남자가 있었냐고 엉뚱한 소리를 했고, 지우는 ‘아니 우리 영화 다운로드하는 토렌트 바보들아!’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파가 약간 갈렸다. 몇몇은 ‘와 윤서희 영화과 의리 쩐다’ 그리고 몇몇은 ‘영화과 나온 거 광고하냐 진짜 유난이다’로. 


우리 중에 영화를 하는 애들은 몇이나 될까. 그 난리 통에 나는 혼자 속으로 영화를 하는 사람들을 세어봤다. 예쁘고 교수님들에게도 잘하는 인기 많은 과대 하나, 여러 학교를 거치며 나이가 어느덧 서른 중반이 다 되어갔던 오빠 둘. 그리고 또 있나? 아 집 잘 살아서 유학 간 조용한 여자애 셋. 총 셋이었다. 대부분 학교를 다닐 때도 아르바이트생이었고, 졸업을 하고도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어느 시점을 지나니 자존심을 버린 건지, 지키는 건지 애매해졌다. 분명한 건 서희는 지키는 쪽인 것 같았다. 


나는 영화 관련 커뮤니티에 업로드된 일자리에 한 번도 연락해 본 적이 없었다. 우선 될지 안 될지 모르는 데다가 한 번 촬영에 들어가면 내 모든 생활을 거기에 바쳐야 됐다. 새벽을 담아야 하면 새벽에 나가야 했고, 노을을 담아야 하면 모두가 옹기종기 모여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노을을 담아야 했다. 사실 그건 그렇다 쳐도 페이가 문제였다. 페이가 합당하지 않은 것 같았다. 동기들이고 선배들이고 ‘길게 보고 가야지’라고 했지만 그러는 동안 시간이 나를 앞지를까 봐 두려웠다. 그때의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었다. 서희는 달랐다. 어딘가 악착같은 구석이 있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커뮤니티를 들여다봤다. 영화제도 거의 모든 영화제에 찾아갔다. 서희는 늘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나는 처음 한두 번만 응하고 그다음부턴 가지 않았다. 어중이떠중이 같은 내 포지션이 부끄러워 영화를 잘 마주하지 못했다. 그래서 집에서 보는 게 편했고, 그러다 보면 토렌트를 가끔씩 사용했다. 나는 오랜만에 술기운이 약간 오른 상태로 끈적끈적한 여름의 기운을 느끼며 집으로 향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디디면서 나는 내가 너무 싫어졌다. 외로웠고, 서희가 보고 싶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서희에게 이미 연락을 한 이후였다. 그것도 뜬금없이 ‘영화하는 거 안 불안하냐’라고. 


[불안한데 그래도 하고 싶어 그래서 해보는 거지]


맞춤법 하나 틀리지 않고, 그 어떤 부호도 이모티콘도 없이 보낸 서희의 문자에선 소위 말하는 깡다구가 느껴졌다. 그래 윤서희 짱 먹어라. 나는 그렇게 답장했다. 


*


서희에게 오래간만에 들은 소식은, 단편을 찍었다는 소식이었다. 핸드폰을 보고 ‘와’하는 감탄을 내뱉을 만큼 놀랄 소식이면서도 내가 기다려왔던 연락 같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고맙다고 답장했다. 문래동에 위치한 작은 예술공간에서 상영한다고 했다. 관람요금 대신 기부금을 받는 곳. 어떤 음료도 팔지 않고 오로지 생수만 반입 가능한 곳. 저 멀리 머리를 낮게 묶은 서희가  조그맣게 보였다. 여러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인사를 하는 서희. 서희에게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서희가 나를 발견하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투명한 주황색 포장지에 둘러싸인 백합을 서희에게 건넸다.


영화가 시작되고 햇빛이 쨍쨍한 여름이 화면에 넓게 퍼졌다. 어두운 극장이 잠시 환해지면서 관객들의 실루엣이 얼핏 옆쪽으로 보였다. 청바지를 입은 여자가 골목을 걷는다. 익숙한 듯 시장 가방을 메고 재래시장으로 들어간다. 감자, 당근 등 여러 가지 채소를 사고, 다시 좀 전에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온다. 가방에서 그 야채들을 꺼내 물에 씻어낸 다음 먹기 좋게 썰어 냄비에 넣는다. 서희의 어머니였다. 서희 어머니의 음식 맛이 떠올랐다. 대학 때 가끔 먹었던 어머니 요리. 찬장에서 그릇을 꺼내 국자로 옮겨 담고, 식탁에 놓은 뒤 서희의 어머니가 밥을 드신다. 누군가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영화는 거의 무성영화나 다름없었다. 텔레비전에서 나는 목소리를 제외하고 사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 잠깐 잠들었다가 다시 일어나서 산책을 가셨다. 저녁에 아버지가 돌아오고 나서야 ‘왔어요?’라는 말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처음 들렸다. 그리고 어두워졌다가 다시 아침이 되면서 영화가 끝났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 ‘감독 윤서희’라는 글자가 영화관을 밝게 비췄다.


얼마 뒤 서희를 만났다. 이제 좀 이런저런 일들이 정리가 됐다고 했다. 서희는 달라진 건 없었지만 뭐랄까, 여태껏 미뤄왔던 숙제를 끝낸 사람의 자신감이 보였다. 


“나 토렌트랑 다시 만난다”


순간 커피를 뿜을 뻔했다. 멀끔하게 생긴 그 남자는 자신이 이렇게 불리는 걸 알고 있을까. 어쩌다가? 


“내 영화 보러 왔더라고. 쭈뼛쭈뼛 자기 이제 토렌트 안 한다고. 굿 다운로더라고 말하길래 웃겨서 밥같이 먹었지. 그러다 그냥 다시 만나게 됐어”


“진짜 넌… 한국 영화의 미래다”


“너도 남자 생기면 토렌트 하는지 꼭 봐라”


서희의 진지한 표정에 나는 까르륵 웃었다. 서희에게 줄 꽃을 고를 때 가판대에는 꽃말이 가득 적혀있었다.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수많은 숭고한 말들을 훑다 ‘순결, 변함없는 사랑’이라는 글자에서 멈췄다. 이거다. 꽃을 포장해 주는 직원분 옆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숫자 4를 떠올렸다. 과를 졸업하고 영화를 하는 사람은 3명이 아니라 4명. 나는 지난여름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서희에게로 향했다. 4 옆에 ‘윤서희’라는 이름을 바싹 붙여보면서.

작가의 이전글 수현, 수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