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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Sep 14. 2021

장미 빌라

짧은 픽션 03

*


재호와 나는 장미 빌라에 살았다. 이름 그대로 담에 흐드러지게 장미가 늘어져있는 빌라. 나는 103호, 재호는 101호. 그게 나와 재호가 친해진 이유였다. 재호네 가족과 우리 가족은 좋은 관계를 맺으며 지냈다. 품앗이처럼 서로 음식을 주고받고, 마주치면 자상하게 인사를 했다. 학교에는 재호가 한 명 더 있었다. 나의 친구는 최재호, 다른 재호는 윤재호. 둘은 확연히 달랐다. 최재호는 축구하는 애, 윤재호는 음악 하는 애. 최재호는 까무잡잡한 애, 윤재호는 허여멀건 애. 최재호는 키가 큰 애, 윤재호는 평균의 키. 최재호는 와일드 윤재호는 센티멘탈. 보통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친해지지 않던데, 재호와 재호는 친하게 지냈다. 나는 그들을 최재, 윤재,라고 불렀다. 


윤재는 최재와 내가 같은 빌라에 사는 걸 부러워했다. 나도 친구가 가까이 살았으면 좋겠어. 윤재는 종종 그렇게 말했다. 아빠의 회사 문제로 이사를 자주 하다 보니 윤재는 학교까지 거리가 멀었다. 윤재는 가끔씩 우리 동네에 밤늦게까지 있기도 했다. 그런 날엔 최재네 집에서 잠들곤 했다. 우리 엄마는 최재랑만 놀던 내가 새로 사귄 친구가 또 재호라는 이름을 가진 걸 알고는 우리 수인이는 재호들이랑만 노네,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 윤재가 여자 친구가 생겼다. 연우라는 이름을 가졌고, 기타를 치는 친구. 언젠가 연우의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사진 속에는 윤재보다 훨씬 작은 몸에 자신의 키만 한 기타를 진 귀여운 여자애가 윤재 옆에 있었다. 자신의 사랑을 자랑하는 윤재가 사랑스러웠다. 


*


연우를 처음 본 건 우리가 고등학생이 되고 첫겨울방학 때였다. 원래는 여름에 보기로 했는데 첫 방학이라 그런지 싱숭생숭하게 학원 보충이니 가족 여행이니 하며 차일피일 미루다 아예 계절을 미루게 되었다. 우리는 놀이공원에 갔다. 겨울이라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그만큼 흥이 나지 않기도 했다. 역시 여름에 왔어야 했나 싶은 가벼운 후회가 잠깐 들었다. 놀이기구에 탈 땐 당연히 윤재와 연우가 함께 앉았고 내가 최재와 함께 앉았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였던 최재라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줄 알았건만, 왠지 무릎이 가까워지니 묘하게 최재가 다르게 느껴졌다. 


연우는 키가 작고 잘 웃었는데, 웃지 않을 땐 조금 서늘해 보이기도 했다. 연우와 윤재가 밥을 먹고 담배를 피우러 갔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윤재가 언젠가 모르고 ‘그래서 연우랑 같이 피우러 나가는데…’라고 얼결에 말해버렸기 때문이다. 둘이 담배를 피우는 동안 나랑 최재는 벤치에 앉아있었다. 


- 연우 귀여운 애 같아

-  좀 무서워 보이는데. 윤재는 쟤 어디가 좋은 거지?


최재의 말투는 너무나 진심이었는데, 이상하게 표정에선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무서워 보인다고 말하면서 전혀 무서워하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스치듯 느꼈던 감정이 생각나서 최재에게 말했다. 그냥 무표정이어서 그런 거 아닐까? 최재가 말했다. 글쎄. 사실 나는 그때 최재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최재의 코를 보고, 턱 선을 보고, 어깨를 보고 있었다. 최재는 확실히 중학교 때보다 훨씬 체격이 커져있었다. 그늘진 골목에서 윤재와 연우가 샤워코롱과 담배 냄새가 어설프게 뒤엉킨 냄새를 풍기며 나왔다. 연우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는데 여러 번 지어본 듯 자연스러웠다. 최재는 윤재를 보며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병신 새끼. 윤재가 괜히 최재의 어깨를 툭 치며 장난을 쳤다. 


*


그날 이후로 꽤 친해진 우리는 꼭 넷으로 숫자가 맞지 않더라도 보게 되었다. 나는 가끔씩 내가 없는 자리가 궁금했다. 내가 없는 자리에선 분위기가 어땠을까. 어쩌다 내 얘기가 나왔을까. 어디를 갔을까. 몇 시에 헤어졌을까. 나는 모든 게 궁금했지만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 척했다. 그저 단체 대화방에 전송된 사진으로 여러 가지를 추측했다. 그러다 하루는 최재가 빠진 날이었다. 우리는 신발을 구경했다. 서로의 발 사이즈를 이야기하다가, 윤재가 자신은 손도 발도 그리 크지 않아서 여차하면 여자 신발을 큰 사이즈로 신어도 된다는 말을 했다. 이어서 연우가 손을 쫙 펴면서 말했다.


- 최재는 손 진짜 크더라

-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나도 모르게 연우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때 연우는 무척 당황했는데, 나는 연우의 그 표정을 보고서야 내가 어떤 말을 내뱉었는지 알았다. 은연중에 내가 갖고 있던 질투와 최재에 대한 애정 같은 것들을 눌러 담은 말. 그냥 저번에 내 기타를 쳐보겠다고… 그때 알았어…. 연우는 잘못한 학생처럼 말했다. 나는 뒤늦게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연우도 윤재도 알아버린 눈치였다. 그래서 나는 조금 불안했는데, 그 불안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덮어졌다. 연우와 윤재 사이에 아기가 생기면서. 고등학교 3학년이 거의 끝나갈 때.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막 스무 살로 향해갈 때. 윤재는 학교를 안 나왔는데, 나는 그게 어차피 수능도 끝난 마당에 윤재는 음악을 하니까 나오지 않는 거라고 짐작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윤재는 막노동을 뛰고 있었다. 연우는 아르바이트를 닥치는 대로 한다고 했다. 그 사실은 최재에게 들었다. 


- 몰랐어? 쟤네 돈 필요하잖아

- 왜?

- 애 생겨서


최재는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애가 생길 걸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그런 최재를 보면서 무서웠다. 내 마음이 더 커질까 봐. 최재를 더 많이 좋아하게 되면 저런 무심한 말투에 받을 상처가 무서웠고, 그 아픔이 가늠되지 않았다. 키우는 건 아니지?라고 머뭇거리며 물으니 당연한 거 아니냐 걔네가 어떻게 키워,라고 대답했다. 최재는 윤재와 연우를 생각 없는 철부지 커플로 취급하며, 조금은 무시하는 말투로 말했다. 그날 나는 최재에게 절대로 내 마음을 고백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


연우는 아이를 지웠고, 대학에 갔다. 연우의 얼굴은 그간 많이 상했는데 가끔씩 예전 얼굴이 스칠 때면 마음이 조금 아팠다. 윤재는 음악은 접어두고 그냥 돈을 벌고 싶다며 중간에 자퇴를 하고 공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만한 게 둘이 아이를 지울 때 결국엔 윤재의 아버지가 전체 금액의 8할 정도를 빌려줬고, 윤재는 그걸 갚아야 했다. 윤재는 아버지에게 많은 책망을 들었다. 그중엔 우리도 있었다. ‘어디서 멍청한 애들만 골라 사귀어가지고’라는 말. 윤재는 이것도 어쩌다, 술을 마시고 내뱉어버렸다. 최재는 그 나이대 남자들이 그렇듯 군대에 갔다. 혼자 남은 나는 윤재를 만나지도, 연우를 만나지도 못했다. 가끔가다 연우에게 연락이 올 때가 있었는데, 윤재의 행방을 묻는 연락이었다. 그건 주로 늦은 밤이었다. 그러면 나는 윤재한테 연락해 보았고, 한 번도 연결된 적은 없었다. 최재에게선 가끔씩 연락이 왔다. 알 수 없는 조합의 숫자가 너무 반가웠다. 최재의 목소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좋아지는 것 같았다. 아닌가, 내가 최재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져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최재는 이런저런 안부를 묻다가 자신이 일과를 이야기했다. 나는 최재가 자신의 일상을 말하는 게 무척이나 듣기 좋았다. 자신의 하루를 누군가에게 투정 부리듯 이야기한다는 거. 보통 연인들이 그렇게 하니까. 


최재가 첫 휴가를 나왔다. 첫날엔 가족들을 만나고, 둘째 날에 나를 만났다. 최재는 더 까무잡잡해지고 몸이 더 커져있었다. 최재는 칼국수가 먹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언젠가 함께 가봤던 호수 근처 포장마차에 갔다. 칼국수랑 제육볶음, 맥주 한 병을 시켰다.


- 윤재랑 연우 사이가 좀 안 좋은가 봐. 연우가 가끔씩 전화해서 윤재가 어딨냐고 물어봐.

- 걔네들이 그렇지. 윤재 그 새끼 여자 만나러 갔겠지 뭐.

- 여자? 무슨 여자?


최재가 술을 음료수처럼 꿀꺽 넘겨내고 술잔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돈 주고 만나는 여자.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우리와 함께 동네를 걸어 다니고 꽃 앞에서 사진을 찍고 좋은 노래에 대해서 얘기하고 미래를 고민하던 윤재가? 윤재가 돈 주고 여자를 만난다고? 심지어 연우 몰래? 애를 지우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연우를 두고 여자를 만나러 간다고? 근데 최재는 왜 이걸 알고만 있지? 뭐라고 안 하나? 혹시 알고 있었어? 최재는 벌건 제육볶음을 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넌 뭐라고 안 했어?

- 뭘 뭐라고 해. 그 새끼 원래 그런 걸

- 무슨 윤재가 원래 그래


최재는 나를 철부지 어린애 보듯 보더니 옛날 얘기를 꺼냈다. 예전에 우리 집에서 잘 때, 그렇게 하루 종일 여자 얘기만 했었다고. 얘 이쁘지 않냐, 얘랑 연락하고 있다, 얘는 부르면 온다, 같은 얘기들. 최재가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나는 시시각각 표정이 바뀌었다. 난 정말 몰랐어. 진짜? 진짜 윤재가 그랬어? 내가 최재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 너한테도 그랬잖아. 아냐?


나한테? 윤재가 나한테? 순간… 떠오르는 몇몇 순간들이 있었다. 최재가 오늘은 집 분위기가 좋지 않아 윤재를 재울 수 없다고 말했을 때 윤재는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수인아 너네 집은? 안 되겠지? 기타를 배워보지 않겠냐며 손 몇 가락을 부딪히듯 마주쳤던 것… 술에 취해있을 때였지만, 내 목에 가까이 얼굴을 대며 향수를 뿌렸냐고, 좋은 향기가 난다고 약간 늘어지는 말투로 말하던 게 기억이 났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저 최재가 오해할까 봐 걱정을 했었는데… 최재가 알고 있었다니. 그걸 왜 지금에서야 말할까. 최재한테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걸까.


*


얼마 뒤, 연우에게서 연락이 왔다. 처음으로 낮에 걸려온 전화였다. 조심스럽고 상냥한 말투로 어떻게 지냈냐고 묻더니 밥이나 한 번 먹자고 말했다. 언제? 지금. 지금은 안된다 말하니 연우는 그러면 언제 되냐고 물으며 내가 정확한 날짜를 말하길 요구했다. 나는 주말에 된다고 했고, 어디서 보냐 물으니 자신이 우리 동네에 오겠다고 말했다. 


주말에 연우는 우리 동네에 왔다. 그것도 30분이나 일찍. 천천히 오라는 연락을 받고 나는 조금 빠른 속도로 마무리를 하고 나갔다. 베이지색 보헤미안 스타일의 원피스를 입은 연우가 카페에서 햇빛을 받으며 앉아있었다. 요즘 또 술을 자주 마셨는지 어쨌는지 조금 부은 얼굴이었다. 연우는 나에게 뭘 마실 거냐고 물었다. 그냥 커피 마시려고. 연우가 아이스?라고 묻더니 잽싸게 카운터로 가 결제를 했다. 쇼케이스에 있는 디저트를 가리키며 뭐 먹고 싶은 건 없냐고 시키고 싶으면 시켜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지갑을 들고 있다가 네가 왜 사,라고 말했는데 연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예전의 웃음과는 달리 부자연스러웠다. 분명히 약간 이상한 공기가 서리고 있었다. 내 커피가 나오고, 시키지도 않은 디저트가 나왔다. 연우는 내가 아니라 테이블만 보고 있었다. 


- 연우야 너 무슨 일 있어?


연우가 왈칵 울기 시작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손바닥이 축축해지는 게 보일 정도로 울었다. 당황한 나는 연우의 옷과 비슷한 색의 티슈 여러 장을 뭉텅 집어 연우에게 건넸다.


- 수인아, 진짜 미안한데… 돈 좀 빌려주면 안 될까?


애가 또 생겼다고 했다. 나는 숨기지 못하고 한숨을 크게 쉬며 약간 큰 소리로 말했다. 너네 진짜 미쳤냐. 정말 미안하다고 연우는 손바닥을 삭삭 비비며 말했다. 그 고사리 같은 손에서 나는 삭삭 소리가 너무 소름 끼쳤다. 윤재가 어디로 간지 모르겠다고 제발 부탁이라고 말했다. 나는 윤재에게 연락했다. 여전히 윤재는 받지 않았다. 나는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았던 여윳돈 얼마를 연우에게 이체했다. 날씨는 너무나 밝았고, 연우는 울음을 그치지 못한 상태로 뒤돌아 갔다. 연우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그해 겨울 또 한 번 알 수 없는 조합의 숫자가 전화기를 울렸다. 최재를 기다리던 습관대로 나도 모르게 전화를 받았다. 나는 별말 없이 수화기만 들고 있었고, 최재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러다 최재가 내뱉은 말은, 곧 이사를 간다고 했다. 저 바닥 아래서 내 마음을 누군가 끌어내리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전화기를 붙잡고 엉엉 아이처럼 울었다. 최재는 미안하다고 했다. 나 때문에 이사를 가는 게 아닌데도, 최재네 가족이 알뜰살뜰 돈을 모아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인데도 최재는 미안해했고, 나는 버림받은 기분이 들었다. 


옥색 페인트가 발린 101호의 문이 활짝 열려있고 이사센터 직원들이 빌라를 왔다 갔다 했다. 좁은 골목엔 뒷 빌라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그 차의 뒤로 최재네 집이 담기고 있었다. 최재네 부모님은 내 손을 잡고 그간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고, 최재한테 안부를 전해 듣겠다고 했다. 나는 아주머니의 설렘 가득한 얼굴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은 말하고 싶었다. 안 가시면 안 돼요? 여기서 계속 저희랑 사시면 안 돼요? 내 마음과는 달리 101호는 언제 그랬냐는 듯 텅 빈 상태가 됐다. 가끔씩 멀끔하게 차려입은 부동산 사람들이 몇몇 부부를 데리고 최재네를 찾아왔다. 언제는 신발장 앞에서 그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여기 살던 사람들이 잘 돼서 저기 신도시로 이사 갔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짧게 부러운 감탄사를 뱉었다.


연우는 나에게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처음엔 그게 돈을 갚아야 하는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이유뿐만은 아닐 것 같았고 어쩌면 아무 이유도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한 건, 최재에게서 전화가 왔던 날이었다. 나는 그때 혼자 있었고, 주변이 시끄럽지도 않았고, 만약 받았다면 삼십 분 정도는 거뜬히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서 왼쪽 오른쪽으로 몸을 비트는 핸드폰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유는 없었다. 나는 그냥,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날씨는 금세 눈을 다 녹이고, 따뜻함을 넘어서 약간 더운 날도 있었다. 바람이 가끔씩 살랑일 때가 있었는데, 그러면 집 근처 카페 문에 달린 종이 찰랑하고 청아한 소리를 냈다. 그러면 나는 그 안에서 나를 기다리던 연우가 떠올랐다. 그리고 골목을 꺾어서 안으로 들어오면 꽃 내음이 났다. 붉은 장미가 담에 흐드러지게 놓여있었다. 그 풍경을 볼 때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재호가 떠올랐다. 최재호 윤재호 모두. 물론 최재가 큰 비율을 차지했지만 윤재도 늘 따라오는 기억이었다. 101호엔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장미를 보고 이사를 결정했다고 했다. 왠지 마음이 동했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그 사람들에게 내 모든 마음을 꺼내 줄 뻔했다. 하지만 재호와 내가 101호와 103호여서, 단순히 가까워서 친해졌었다는 기억이 그 마음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붙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잠깐 폈다 지는 꽃이지만 많이 보세요. 그래도 아름다우니까요. 그들은 내 말에 웃었다. 그들의 어깨 뒤로 장미가 보였다. 붉은 장미와 담벼락이 뒤엉켜 서로를 껴안은 채 ‘장미 빌라’라는 글자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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