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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May 20. 2022

아빠한테 물어봐

Day-off fiction 1



“아빠한테 물어봐”


엄마는 항상 그렇게 말했다. 아빠한테 물어봐. 아빠가 똑똑하잖아. 엄마는 잘 모르잖아. 엄마는 중학교까지 밖에 안 나왔잖아. 아빠가 제대로 배웠잖아. 아빠한테 물어봐. 그러면 선이는 아빠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아빠를 쳐다보고, 핸드폰을 꺼내 검색해 보거나,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엄마는 아빠에게 물어봤다. “여보, 이번 선거 때는 누구 찍어야 돼요?” 아빠는 신문을 탁탁 펼치며 말했다. 1번. 그럼 엄마는 알았다고 했다. 선이는 물었다. “1번이 누군지는 알아?” 그럼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선이 너도 나중에 크면 1번 찍어라”


집안에 수도관이 막히거나, 새로운 물건을 샀는데 조립을 해야 하거나, 커튼을 달아야 되거나, 전등이 고장 났거나 하면 엄마는 늘 미안한듯한 웃음을 지으며 지으며 아빠에게 부탁했다. 아빠는 엄마를 약간 한심하게 바라봤고 귀찮음을 팍팍 티 내며 일들을 해결해 줬다. 선이는 옆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바라봤다. 그리곤 핸드폰을 꺼냈다. 수도관 뚫는 법. 커튼 쉽게 다는 법. 조립하는 법. 전등 가는 법 등등. 영상들의 공통점은 제목에 ‘혼자서’라는 단어가 붙어있었다. ‘혼자서’수도관 해결하는 법, ‘혼자서’커튼 다는 법, ‘혼자서’조립하는 법, ‘혼자서’전등 가는 법. 세상엔 ‘혼자서’살 수 있는 방법이 충분히 많이 나와있었다.


그래서 의아했다. 기를 쓰고 악을 쓰고 추한 꼴을 보여서라도 ‘같이’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같이 살까.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유튜브에 이렇게 널려있는데. 물론 그중에서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건 엄마였다. 엄마는 왜 아빠랑 같이 살까. 내가 새 학년이 되면 같이 다닐 친구를 찾는 것과 같은 건가. 선이에게 엄마는 알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무더운 여름날, 학교가 끝나고 정윤과 들뜬 마음으로 빙수를 먹으러 가고 있었다. 정윤에게 전화가 왔다. 정윤은 전화를 받고 ‘…’, ‘갈게요…’같은 말들을 했다. 정윤이 한숨을  쉬었다. 선아 우리 빙수 내일 먹자. ?


“나 아빠 밥 차려줘야 돼”


“네가 아빠 밥을 왜 차려줘?”


“오늘 엄마 안 계시거든”


“엄마가 안 계시면… 아빠가 널 챙겨줘야 되는 거 아냐?”


“…방금 전화 친할머니인데, 아빠 밥 차리라고 한다. 우리 집 원래 이래”


선이는 무슨 말을 더 해야 될지 모르겠어 별말을 하지 않고 잘 가보라고, 정윤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빙수를 못 먹는 아쉬움과 정윤의 쳐진 뒷모습이 여러 가지 생각을 만들었다. 왜지. 정윤이네 아빠 밥을 왜 정윤이가 차려야 되지. 선이는 터덜터덜 집에 걸어갔다. 엄마는 밥을 준비하고 있었고, 아빠는 가만히 TV를 보고 있었다. 엄마는 여러 가지 반찬을 식탁 가득 늘어놨고, 아빠는 식탁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다 먹지도 못할 거 왜 이렇게 많이 차려.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살랑살랑 웃으며 골고루 먹어야 좋죠,라고 말했다. 반찬통 뚜껑 하나 열지 않고, 본인의 숟가락 젓가락 하나 챙기지 않고, 물도 떠다 마시지 않는 아빠는 왜 엄마가 준비하는 밥상을 쉽게 평가하는 걸까. 선이는 의문이 들었다.


가만 보니 아빠는 평가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같았다. 세상을 평가하고, TV 속 연예인들을 평가하고, 엄마를 평가하고, 친척들을 평가하고, 선이를 평가하고, 결혼 안 한 남자들을 평가하고 그랬다. 그 평가는 보통 ‘폄하’에 가까웠는데, 선이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이 울렁거려 방으로 도망쳤다. 선이는 어느 순간부터 아빠와 식사하지 않았다. 아빠가 폄하에 가까운 평가를 늘어놓는 것도 듣고 싶지 않았고, 아빠의 쩝쩝 거리는 소리가 듣고 싶지 않았고, 아빠의 숟가락 젓가락을 설거지통에 옮기는 일 따위도 하고 싶지 않았다. 설거지통을 바라보며 선이는 생각했다. 선이가 마음속에 늘 ‘간호사’라고 적혀있던 선이의 꿈. 거기엔 이제 ‘혼자 살기’라는 아주 직관적이고도 강렬한 꿈이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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