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off fiction 2
혼자 산다는 건 단순히 가족과 따로 산다는 걸 의미하진 않았다. 혼자 산다는 건,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돌아오면 차갑게 식은 방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 날 기다린 것인지도 의아했으며 먹고 싶은 식당 혹은 가보고 싶은 카페 등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을 때도 혼자 해야 됐다. 친구들에게 연락하면 친구들은 본인의 삶, 애인과의 약속으로 인해 다다다다음 주에나 만나는 게 가능했다. 음식도 청소도 하기 귀찮은데, 나 대신해주는 사람은 없었고 사람답게 살려면 졸음이 쏟아져도 빨래를 널고 자야 했다. 선이는 생각했다. 이걸 그동안 엄마 혼자 다했다고? 이어서 생각했다. 이걸 그동안 엄마 혼자 하도록 내버려 뒀다고?
아빠는 늘 설거지거리를 하염없이 쌓아놓고 못 본 척했다. 엄마는 자연스럽게 부엌에 들어가 그 그릇들을 설거지했다. 엄마가 아무리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날도, 엄마는 한 입도 먹지 않은 음식이 담겼던 그릇도 엄마가 설거지를 했다. 아빠는 상이 차려지면 나와서 밥을 먹고, 밥을 다 먹으면 이쑤시개로 이를 정리하면서 뉴스를 봤다. 아빠는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손에 물이 묻는 게 싫어서. 고무장갑이 뻔히 걸려있음에도 아빠는 본인이 타당한 이유를 말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루는 엄마가 슬쩍 말했다. 요즘은 남자들이 설거지도 하고 그런다는데. 당신 이렇게 숟가락 하나 쓰고 설거지통에 쏙 집어넣고 이러는 거 얼마나 얄미운지 알아?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나보고 설거지하라고 안 했잖아”
그렇다. 엄마는 아빠에게 설거지를 하라고 한 적이 없다. 하염없이 쌓아놓은 설거지가 다 본인 것이었어도, 엄마가 아빠에게 정확하게 “당신이 먹었으니까 당신이 설거지해요”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신은 그렇게 하라고 해야 하냐고, 알아서 해야 되지 않느냐고 말을 하는 엄마에게 아빠는 정색을 하고 나무랐다. “얘기를 했으면 됐잖아”그 말을 듣는 순간 선이는 예전에 만났던 정우가 떠올랐다. 왜 연락을 안 했냐고 말하면 “네가 연락하라고 안 했잖아”라고 하고, 도대체 왜 이렇게 서운하게 만드냐고 물으면 “네가 이런 거 가지고 서운해할 줄 몰랐지. 애초에 얘기를 하지 그랬어”라며 시치미를 뚝 떼던 모습. 정우는 아무래도 무언갈 소중하게 여기는 법을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그건, 아빠와도 정확하게 겹쳐졌다.
그럼에도 선이는 정우와 한동안 헤어지지 못했다. 당시엔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건 그저 헤어짐이라는 것에 학습된 거부감에 가까웠다. 왠지 삶의 방식에선 반드시 사랑하고 사는 게 맞는 것 같았고, 그게 인간적인 것 같았지만 정우와는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해방감을 느꼈다. 선이는 정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정윤은 간단하게 말했다. “그건 사랑이 아닌 거지”선이는 정윤의 말에 왠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사랑이 아닌 걸 사랑으로 착각하고 홀대를 받아도 참으며 보냈던 그 시간. 부정하고 싶었던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은 타인에겐 쉽게 정리될 수 있었다. 맞아, 네 말이 맞아 정윤아. 그러나 마음속엔 잔가지처럼 아득한 고민이 뻗어 나왔다. 정우와는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아빠는? 아빠와는 어떻게 헤어지지? 선이는 정윤의 품에서 울었다. 그것만큼은 고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