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의 스타벅스 캐나다 워홀 [9]
[9]
“엘라! 어서 와요!!
잘 지냈어요?”
엘라는 금발머리에
푸른 눈이 인상 깊은
단골손님이다.
“꿈뀨!! 너 보면 진짜 기분이 좋아진당!
나야 잘 지냈지!
꿈뀨 너야 말로 잘 지냈엉?’
엘라는 서투른 나의 모습에도
웃으며 차분히 기다려 주는
고마운 손님이었다.
“아 그럼요!
저도 오늘 엘라 봐서 행운이에요!
평소에 먹던 걸로? 톨 라떼?”
엘라는 항상 톨사이즈의 라떼를 마셨고,
나는 그런 엘라의 주문을 기억했다.
“으쩜~ 내 맘을 잘 알아?
고마워 꿈뀨!”
“당연하죠! 또 봬요!”
–
–
“케이!”
케이는 매주 일요일에
엄마와 함께 오는 고객이다.
실수투성이인 나를 보곤
내 미소가 본인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 준 고객이었다.
“꿈뀨!!”
우린 항상 웃으며
서로를 이름을 외친다
“역시나!
이번 주 일요일에도 나타났네요!”
“앜ㅋㅋ 당연하지!!!
난 너 보러 여기와!!”
“하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트렌타 망고 드래곤 레모네이드?””
케이는 두 가지 음료를 시켰는데,
그중 트렌타 망고 드래곤 레모네이드는
항상 고정으로 시키고,
나머지 한 음료는 매 번 바뀌었다.
“앜ㅋ 역시나 내가 시키는 거 기억하는구나?!
그거랑 또.. 이번에는 더우니까…
트렌타 스트로베리 코코넛으로 할게!”
“주문 넣었어요!
음료는 오른편에서 준비될 거예요!”
“고마워~ 다음 주에도 보자!”
–
–
“알렉사! 또 뵙네요?”
알렉사는
최근에 매장에 자주 나타나기 시작한 고객이다.
이름을 물어보면,
알렉사, A, L, E, X, S, A 하고
스펠링까지 말해주어서
기억에 남았다.
“어? 제 이름 기억하네요?”
“당연하죠!
지난번에 저한테 이름 알려주셨잖아요!”
“... 저 이 매장 여러 번 왔는데
제 이름 기억해 주는 사람은 꿈뀨가 처음이에요”
항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알렉사가
나에게 웃어 보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
–
실수 엄청해서
감히 음료 만드는 바 포지션은
꿈도 못 꾸던 시절.
그래서 주문받는 포지션에만 있던 시절.
한참을 주눅 들어 있다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찾아봤다.
주문 실수 없이 정확하게 받는 거 외에
뭐를 더 잘할 수 있을까?
내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몇몇의 고객들을 마주하며
나 또한 그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영수증을 모으기 시작했다.
주문받는 포지션에만
주구장창 있다 보니
자주 오는 고객들이 파악됐다.
그리고 그 들 중
주문하는 음료가
매 번 같다는 걸 알았다.
그들이 주문을 마치고 나면
영수증을 뽑아서
그 들의 이름을 적어 주머니에 넣었다.
퇴근 후, 집에 가면
모았던 영수증들을 꺼내 보며
이름을 기억하고
똑같은 메뉴 계속 시키는 고객이라면
메뉴까지 기억했다.
그리고 다음번에 만날 땐
그 고객 이름을 불러주고,
항상 시키는 메뉴를 기억해 줬다.
“기억해 줘서 고마워!”
그렇게 나는
고객과 친해져 갔다.
–
–
“꿈뀨! 일하는 거 어때?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이사벨과 중간 점검 기간이 왔다.
“처음에 비해 실수가 많이 줄었어요,
그래도.. 아직도 실수하면
기가 많이 죽긴 해요..
고객들이랑 같이 일하는 팀원들에게
폐 끼치는 것 같아서요..”
이사벨이 웃으며 쳐다봤다.
“그래? 누구나 다 실수해.
처음인데 당연한 거야.
로버트 기억나지?”
로버트…?
그 볼드커피남?
하..
그 이상한 사람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
–
로버트와 곤혹스러운 첫 만남 이후로
그를 매장에서 다시 만난 적이 있다.
다신 마주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쩌다 로버트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하.. 또 인상 찡그리겠지..
싶었는데
이 사람…
살짝 눈웃음 지어 보이면서
나한테 손을 흔드는 게 아닌가.
뭐야..?
지난번까지만 해도 되게 버릇없지 않았나?
당황스러웠지만,
그냥 웃으며
나 또한 손을 흔들어 줬다.
–
–
“아 이사벨,
그 사람 참 이상한 사람이에요.
처음에 저한테 그렇게 예의 없게 행동하더니,
지난번에 마주쳤을 땐
세상 아무 일 없단 듯이
웃으며 손 흔들더라고요…”
“그래??ㅋㅋㅋ”
이사벨이 웃었다.
뭐지..?
“.. 왜요… 뭔데요..”
“그날 로버트가 예의 없이 군 날,
내가 가서 말했거든.
신입이 로버트 당신이 단골 고객이고,
항상 시키는 메뉴를 모르는 건 당연한 건데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앞으로 누가 로버트 당신을 상대하고 싶겠냐고…”
이사벨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로버트한테
직접 가서 저렇게 말했다고..?
가슴이 뭉클했다.
직장생활 3년 해봤지만
예의 없는 고객에게
일침을 주는 상사는 만나본 적이 없다.
“아…
정말 고마워요, 이사벨.”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야.
난 여기에 그럴 이유로 존재하는 거야.
난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도 존재하지만,
함께 일하는 팀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 위치에 있는 거야.”
당연한 것이라도,
그 당연함을 실천하는 상사는
난 몇 명 보지 못했다.
사람을 대하는 것은 항상 어렵다.
특히 서비스 제공자가 고객을 대할 땐,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그 책임감에
본인의 인권을 잃기도 한다.
그 직업의식과 인권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차분히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이사벨은
그 용기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앞으로 나도 누군가의 상사가 될까?
상사가 된다면
이사벨의 길을 걸어야겠다.
좋은 상사를 만났기에
나 또한 좋은 상사가 될 기회를 얻었다.
–
–
그날도
바에서 일하다가
어김없이 실수를 저질렀다.
실수는 점점 줄어가지만,
한 번 실수할 때마다
기죽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꿈뀨!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너 쉬는 시간이야!
15분 쉬고 와!”
같이 일하는 슈퍼바이저들은
줄어드는 내 실수를 위로해 주었지만,
그래도 쌓이는 자괴감은
누가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한숨을 쉬며
초록색 앞치마를 벗으며
직원 휴게 공간에 들어갔다.
휴게 공간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안녕.. 하세요?”
팔에 문신이 많았고,
어깨선에 걸치는 중단발.
피부색은 구릿빛인 것이
필리핀계 여자 같았다.
“어..? 꿈뀨죠?
하이!!
난 케이트라고 해요!”
그동안 일하면서
한 번도 못 본 팀원이었다.
“ㅎㅎㅎ
이탈리아 여행을
좀 길게 다녀오느라
이제 만나요!”
내 눈에 띈 물음표를 읽었는지
그동안 본인의 공백을 설명해 줬다.
“일 해보니까 어때요?”
케이트가 담백하게 물었다.
“아.. 잘 모르겠어요..
오늘도 실수하고....
커피 만드는 게 왜 이리 힘든지..
나만 이런 건가 싶고..”
하필 실수 저지르고 돌아와서 그런지
기가 싹 죽은 채로 말했다.
본의 아니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하소연이라니..
나도 참.. 주책이다.
“헐 나도 그런데!!
나도!! 나도 신입이에요!
난 꿈뀨보다 한 달 정도
먼저 들어왔는데
일 시작하고 몇 주 안 돼서
이탈리아 여행 떠나는 바람에
지금 다 까먹어서 완전 멘붕이라니까~?”
케이트가 내 말에
격한 공감을 해주었다.
케이트는
강력한 외향적인 사람 같았다.
나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낯가림, 어색함 하나 없이
대화를 이어 나가줬다.
“스타벅스 정책이랑
레시피 외우는 것도 버겁고..”
잘 들어주는 사람 앞이라 그럴까..
내 하소연이 계속 튀어나왔다.
“맞아 맞아!!!
스타벅스에 이렇게 정책이 많을지
감히 상상도 못 했지!!”
케이트와 얘기를 들어보니
단순히 나만 헤매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첫 시작에는 헤매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약간 놓였다.
“어휴 나만 헤매는 게 아니라 다행이네!
나는 내가 바보인 줄 알았어ㅋㅋㅋㅋ”
케이트와 나는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 주었다.
“괜찮아! 이러면서 배우는 거지!
번호 교환할래?
나중에 같이 밖에서 놀자!
같이 맛있는 거 먹으면서
스타벅스에서 겪은 답답함을 날려버리는 거야!
케이트가 먼저 다가와 주는 게
너무 고마웠다.
“아유 당연하죠!”
케이트 핸드폰에
번호를 찍어줬다.
시간을 봤다.
케이트와 얘기하느라
15분이 지난 것도 모르고 있었다.
“헉!! 쉬는 시간 벌써 끝났네요!
저 다시 일하러 가봐야 해요”
벌떡 일어나
초록색 앞치마를 다시 입었다.
“그래요 그래! 파이팅!”
케이트와 나눈 대화 덕에
마음과 몸이 한 결 가벼워졌다.
덕분에 큰 실수 없이
무사히 그날 근무 마쳤다.
“이제 근무 끝난 거야? 좀 어때?”
앞치마를 벗는 나를 보고
케이트가 물어봤다.
“아까보다 훨씬 훨씬 나아요..”
드디어 내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케이트와 대화하기 전엔
울상이었다.
“그래? 넘 다행이다!
집 가서 푹 쉬어!
다음에 보쟈! (쪽~!)”
가방을 챙겨 매장을 나가는 나를 보고
케이트가 입술로 뽀뽀를 날렸다.
와.. 나랑 오늘 만난 거 아닌가?
첫날부터 뽀뽀를 날리다니..
이게 서양 스타일인가..?
케이트란 사람 자체가
사랑이 가득한 것 같다.
점점 내 곁에
좋은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고객을 기억하기 위해, 영수증을 정말 많이 모았고, 고객들과 많이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