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아져 갔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제게 한마디 인사나 당부도 없이 당신이 의식을 잃고 전신마비가 되셨을 때, 아무런 예고 없이 제 곁을 떠나 먼 여행길에 오르신 줄로만 알고 참 많이 울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당신을 어떻게 돌봐드려야 할지 지혜가 쌓이면서 울지 않게 되었습니다. 힘든 고난이 끝나는 날 웃게 되는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도 웃을 수 있는 것이 어머니가 바라시는 모습이란 생각에 저는 항상 웃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주 가끔 펑펑 우는 때가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어머니와 비슷한 혹은 더 많은 연배의 어머니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자녀와 즐거운 표정으로 제 옆을 스치고 지나갈 때, TV에서 당신이 좋아한 패티김 씨가 건강한 모습으로 노래 부르실 때, 그리운 사람을 찾아 만나게 해주는 프로그램에서 긴 세월 헤어져 있던 자녀와 어머니가 만나서 얼싸 안고 울 때, 전 그리움의 눈물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내겐 불가능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겐 편안하고 별 문제 없이 가능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직장생활, 여가생활, 결혼, 육아 등이 일반은총이지만 저에게는 특별은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아들은 그런 것들로 결코 기죽거나 힘없이 지내진 않습니다. 제가 당신을 돌보는 일은 이 땅의 여느 유명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입니다. 고귀하고 섬세하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인내심이 많아야할 뿐만 아니라 힘도 장사이여만이 가능한 일들이니까요.
저는 지금 어머니를 편안하게 해드리고 깨끗하게 돌봐드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 다른 어떤 좋은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기쁘고 감사합니다.
우리 모자를 다시 만나게 해 주실 하나님이 당신을 어떻게 지키고 보호해야 할지 제게 많은 지식을 알려 주셨고, 그 방법으로 전 당신처럼 아픈 사람들을 지키고 보호하고자 하는 비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 때마다 제가 아기였을 때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하여도 제 엉덩이가 뽀송뽀송한 상태로 유지되게 하려고 잠도 못 주무시고 기저귀를 갈아주셨을 당신의 손길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당신께서 제 기저귀를 갈아 주신 숫자보다 제가 당신께 해드린 양이 더 많을지라도 제가 받은 엄마의 사랑의 양은 조금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제가 당신을 목욕시켜 드리고 안아드린 숫자가 훨씬 많아도 제 사랑은 당신의 사랑보다 클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을 씻기고 깨끗하게 해드리면서 매일매일 제 마음은 이전보다 깨끗해지고 새로운 힘이 나며 살아갈 이유를 얻고 하루하루 왕성한 의욕이 채워지는 것을 아세요?
어머니를 치료하고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 드린 후, 맑은 표정으로 주무시는 얼굴을 보면 전 얼마나 평안한지 모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바로 그 평안이 날마다 제 속에 가득 차서 제 마음은 부자가 되곤 합니다.
사람들은 긴 세월 그런 모습으로 살면서 어떻게 그리 자신감 있고 당당하냐고 저를 신기하게 보곤 하지만, 당신의 사랑을 받고 자란 제 마음은 오랜 시간 당신께 쏟아 붇고 있는 열정으로 약한 곳은 강해지고 강한 곳은 부드럽게 되어서 자신감과 당당함은 당연한 제 모습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돌보는 시간 동안 강도 높은 훈련에도 얻을 수 없는 순결한 마음을 배웠고,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아져 갔습니다.
20년이 된 저의 이런 삶을 당신은 어떻게 여기실지 궁금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의식을 잃으셨던 것처럼 갑자기 정신이 드셔서 제게 말을 건네실 수 있게 된다면, 칭찬해 주실지 야단치실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칭찬하시더라도 저는 잘 견뎌 주신 당신께 더 고마운 마음을 전할 것입니다. 혹여 야단치시면 전 그냥 웃겠습니다. 저는 어머니 음성을 짧게라도 다시 듣게 된다면 너무 좋아서, 당신의 꾸중은 제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하고 기뻐서 서로 안고 오랫동안 눈물만 흘리겠지요.
예전에 당신은 저의 가느다란 팔과 잦은 병치레를 보며 그 몸으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눈빛으로 걱정을 많이 하신 기억이 납니다. 이제 엄청 커진 아들의 팔뚝과 단단한 가슴을 보세요. 당신을 간호해 드릴 힘을 얻고 지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로 전 엄청 탄탄한 근육을 가진 울트라맨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누워계신 침대 곁의 2평 남짓한 방바닥에서 밤마다 열심히 팔굽혀펴기를 하고 장롱 밑 틈에 발을 넣고 수없이 윗몸일으키기하며 땀 흘려 체력을 기른 날들이 저를 강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버티고 감당하려고 애쓴 모든 시간은 제게 선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까지도 예전처럼 작은 어려움에 휘둘리거나 깊은 생각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일 없이 대범해졌고, 어떤 경우는 뻔뻔해 보일만큼 큰일에도 별로 걱정하지 않는 모습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어머니의 아들은 이 강건한 몸과 마음으로 환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섬기는 일을 꿈꾸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큰 꿈을 주셨고 그 꿈을 이룰 세세한 준비를 하도록 이끄신 참 고마운 분이십니다. 아마도 당신의 소원은 아들이 자신의 삶에만 만족하며 머물러 있지 않고 세상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섬기는 자리로 향하도록 자라가는 데 있었던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신 곁에서 몸도 마음도 단단해졌을 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지고 깊어졌습니다. 견디기 힘든 가난과 아픔의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고 다가가서 위로하고 보듬어 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저를 다른 어머니들처럼 손잡고 안아주진 못하여도, 대견하게 여기며 지켜보고 계실 줄 믿습니다. 말씀은 못하셔도 저는 아기의 옹알이를 알아듣는 엄마처럼 당신의 마음을 잘 느끼며 알아듣고 있습니다.
당신이 누워계신 긴 세월은 하루하루는 힘들고 고단했어도 10년, 20년은 제게 참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었고 제가 우리 집의 영적 가장이 되어 좋은 경험을 많이 쌓은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모자 둘만이 느낄 수 있는 사랑으로 제 마음은 세상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기쁨으로 채워져 왔습니다.
결혼에 대해 무감각하게 여기고 살아왔지만, 지금 저는 열한 살, 일곱 살 두 아들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결혼은 불가능하리라 여기고 내려놓고 있었는데 어머니를 간호한 지 9년이 되던 해 특별은총을 받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얼마나 제 결혼을 바라셨으면 함께 간호하고 싶다는 사람이 다가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을까요?
어머니께서 주신 선물은 결코 고통이 아닙니다. 작고 얕은 제 마음을 크고 넓은 지경으로 변화시켜 주셨고, 계산이 안 나오는 모험은 싫어하는 제 성격을 과감하고 씩씩한 성격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위험이 따르는 일이라도 작은 발걸음을 뗄 수 있는 담대한 마음을 얻었습니다. 저에게 아쉬움과 후회는 한 톨도 없습니다. 당신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고맙고 당신이 엄마여서 감사하고 당신의 웃음을 기억하고 늘 웃을 수 있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자 온전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기쁨을 주실 그날을 바라볼 수 있는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당신과 함께 지낸 많은 시간의 제 청춘이 행복한 경험으로만 여겨져서 더없이 고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날들도 지난날 이상으로 행복할 것을 기대하며 꿈꿀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