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인간 중환자 어머니의 고통을 같이한 20년
《어머니는 소풍 중》을 쓴 지 13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1997년 11월 27일 중환자실에서 그리고 이듬해 6월부터는 집에서 사망 선고나 다름없는 가망 없음의 판정을 받고 식물인간이란 어마어마한 표현의 환자가 된 어머니를 8년 동안 간호해야 했습니다. 취직도 결혼도 못하고 사회 부적응자가 될 거란 주변의 우려 속에서 24시간 깨어서 집중하며 사랑하는 엄마의 생명을 책임지고 감당해 왔습니다. 어어니는 지금도 소풍 중이십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저는 예쁜 아내와 건강한 두 아들의 아빠입니다. 저자, 출판 편집자, 강연가로 살며 어엿한 사회 구성원이 되기까지 의식은 없지만 마음으로는 늘 아들을 위해 기도해 주신 어머니의 사랑이 있어 왔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는 이제 만 20년을 채우며 누워 계십니다. 아니 견뎌오고 계신다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세 차례 결핵균에 감염돼 격리실에서 모진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작은 욕창이 생겼다가 낫기도 했지만 맑은 얼굴로 잘 견디고 계십니다. 제가 신경 써서 잘 돌봐드리고 있기 때문이 아니고 원래 건강한 분이어서도 아닙니다. 저는 이 현실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이 낫는 기적은 없었습니다. 깊은 병중에 있지만, 기계호흡장치 없이 하루하루 숨을 쉬며 아들인 저와 눈빛으로 대화하고 손을 맞잡고 살아온 20년. 앞으로 언제가 끝인지 모를 세월에 대해 ‘견뎌 내겠다는 의지’가 주어진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현재 겪는 고통에서 자유해지는 회복을 기적이라고 여기지만, 이렇게 살아가고 감당해 가는 것이 저는 더 어려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기적은 삶의 고통스러운 환경이 변하는 것이기보다 상황은 점점 안 좋아져도 그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 삶의 관점이 변하는 것이기에 우리 모자는 기적의 주인공입니다.
대학 졸업 시점부터 어머니 병간호만 해 온 백수 아들이 8년이란 세월을 보내며 쓴 글로 유명 출판사에서 책이 출간되고, 방송에서 삶을 나누고, 책을 읽으신 사장님 특채로 기업에 취직이 되고, 어머니 간호를 돕고 싶다는 따듯한 마음의 배우자를 만나 함께 병간호하며 사랑을 싹 틔워 결혼도 했습니다. 두 아들을 낳고 가장으로서 어머니를 계속 돌봐드리며 살아온 시간이 참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누구에게는 평범한 일상인 삶이 저에게는 특별한 일이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다시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처음 8년까지의 삶을 소개한 첫 책에 다 쓰지 못한 이야기와 그 이후의 12년의 예기치 않은 기쁨 그리고 끝나지 않는 아픔들을 모두 담아 보려 합니다.
앞으로 쓸 글은 조금 독특한 이야기입니다. 갓 태어난 아픈 딸과 같은 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조용한 이야기이면서 쉽지는 않은 고통의 이야기이며 아주 특별한 인도하심으로 유쾌하게 견뎌내 온 사연들도 소개할 것입니다.
2004년 여름 《어머니는 소풍 중》을 출간해 주신 김영사에 감사드립니다. 그 에세이는 지난 13년간 제가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토대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지금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하나님이 새롭게 주신 감각을 쏟아부을 수 있는 것은 큰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제게 먼저 다가와 주시고 아픔에 공감해 주신 많은 분께 감사합니다.
삶의 버팀목이 되는 지혜를 주신 김서택 목사님, 화종부 목사님, 문태언 목사님, IVF의 김종호 간사님, 해와달 최용덕 간사님께 고마운 마음 올립니다. 모자라는 저를 남편과 아빠로 바라봐 주는 아내 남존희, 아들 영승이와 예승이에게 좋은 가장이 되는 것이 큰 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