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사랑하고 견디고

삶의 고통은 작은 신학자로 만든다

by 황교진

많이 바쁘고 힘든 하루였다. 그러나 힘든 티를 낼 수 없다. 가장이니까 책임지고 가야 하니까 심호흡 한번 하면서 다 소화해야 한다. 내 통증 신경은 무뎌야 하고 짐을 조금 벗기 전까진 어쨌든 바지런해야 한다.


허리가 아파 평소처럼 집안일을 할 수 없는 아내를 대신해 큰애 학교 보내고 둘째 어린이집 등원시켰다. 춘돌끼 있는 큰애가 학교 가기 전에 무엇이 불만인지 아픈 아내와 한바탕했다. 아내는 아이가 나간 뒤 눈물을 보였다. 나한테 다 맡기고 마음 편히 가지라고 위로한 뒤 손잡고 한의원에 같이 갔다. 요즘 아픈 아내 돌보느라 남편 지수가 쭉쭉 올라가는 중이다. 치료 마치고 집에 와서 침대에 눕히고 돌아보니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이 보인다. 밥 짓고, 빨래, 설거지, 청소, 쓰레기 비우니 점심 챙길 시간도 없이 둘째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다.
둘째 손잡고 걸어오며 오늘 뭐 배웠는지 조근조근 얘기하는데 서늘한 바람에 빗방울이 살짝 스친다. 아이 바람막이도 안 입혀 어린이집 등원시킨 실수를 반성했다.

곧 큰애가 하교했다. 어머니 간호 도구를 차에 싣고 영승이 태우고 광명아울렛에 갔다. 내일 체육시간이 있는데 운동화가 작아서 새로 사줘야 했다. 몸무게도 많이 늘고 키도 엄마 코 위까지 올라온 아들에게 "부부는 한 몸이고 엄마에게 대하는 것이 아빠를 대하는 것과 같으며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려주었다. 큰애는 오늘 아침 일을 반성하고 엄마에게 죄송하다고 하겠단다. 신품과 이월상품을 함께 전시 판매하는 아울렛 매장에서 비싼 운동화 고를까 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영승이는 50퍼센트 세일하는 이월상품을 골랐다. 마음에 들어하기에 덩달아 기뻤는데 사실 진짜 갖고 싶은 비싼 운동화가 있었는데 수입이 없는 아빠를 생각해서 골랐다고 한다. 기특해서 아이가 좋아하는 모차렐라 해시버거 세트를 사주었다.

집에 아이 내려주고 난 바로 부천의 어머니 병원에 왔다. 운전하는 동안 파업 중이라 음악만 나오는 엠비씨 라디오를 들으며 피로를 달랬다.
어머니는 오늘도 많이 힘든 얼굴로 견디고 계셨다. 기저귀도 지저분했고 얼굴 손발도 내겐 가슴 아픈 모습이다. 기온이 떨어져 가래소리도 안 좋았다. 준비해 온 간호 도구로 하나하나 해결해 갔다. 난 엄마의 얼굴을 따뜻한 물에 적신 가제수건으로 씻기고 달팽이크림을 발라드릴 때가 가장 기분 좋다. 늘 그렇듯 간호를 다 마치면 표정이 바뀌신다. 손잡고 기도하며 죄송함을 달랜다.

병원 로비에서 이 글을 쓴다. 가슴 아프고 고단한 하루를 견디고 내 이름이 아닌 예수의 이름 위해 사는 것이 신자의 삶이라 생각한다. 난 이 땅에서 멸시받아도 대수롭지 않고 칭찬받으면 더 어색하다. 그저 하루하루 사랑하고 견디고 사람 생각하고 더디 가고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산상수훈 붙잡고 살아내는 거다. 내가 묻히는 날까지 견뎌야 할 것들에는 침묵과 인내로, 가혹함에는 조용함과 차분함으로 겸비해야 함을 하루하루 묵상하고 또 배운다.


삶의 고통은 서툴지언정 작은 신학자로 만든다.

2017.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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