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건 끝까지 버텨낸다는 것
2012년 10월 6일 어머니 결핵 재발 세 번째
0.
어머니 결핵이 재발됐다는 통보 전화를 받았다.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집 청소를 하다가 병원으로부터 받은 전화에 정신이 멍해지며 탄식만 나왔다.
그리고 또 이 싸움을 어찌 치를 건가에 대한 긴장감으로 온몸이 땀범벅이 됐다.
앞이 캄캄하다.
1.
낙심, 또 처절한 바닥...
2.
낙심 중에 순천향병원 김태형 교수님께
전화드려 급히 병원을 옮길 수 있었다.
앰뷸런스 뒤를 드레프트하듯 쫓아가
주말 막힌 도로를 뚫고 한남동 도착.
우리 모자 계속 고생이지만
월요일까지 무방비로 기다리지 않아 감사하다.
간병센터에 전화 걸어 2주 동안
돌봐주실 분의 연락을 기다리는 중인데
부디 좋은 분이 오시기를..
고단한 세상살이. 결핵 재발이 세 번째.
두 아이 기르며 계속되는 이런 일상에 지치지 않는다면 인간이 아닐 것이다.
기도도 안 나오고...
난 너무 약자란 정체성 앞에 엎드리고만 있다.
3.
한남동 격리병동(1)
천둥소리가 들린다.
내 마음 오늘 너무 지쳐 하늘이 위로해 주려 비가 나리나?
아니다.
여의도 한강변의 세계불꽃축제란다.
쿵쿵 소리에 마음이 어지럽다.
갑자기 어머니 앰뷸런스에 태워 순천향병원 격리병동에 달려와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불꽃축제라구?!
석션, 체위변경, 투약 이것저것 해야 하는 내게 반복되는 고통과는 다른 세상의 야속한 풍경.
이봐! 당장 그만둬! 뭐라? 불꽃쇼? 나 괴로운 거 안 보이니?
갑자기 밤새워 간호하게 될 줄 예상 못했다.
앰뷸런스 수송비, 기저귀, 칫솔 세트, 핸드폰 충전기, 빵 등을 사느라 15만 원은 지출했는데
이것저것 가슴이 쓰리다.
무엇보다도 아내를 제외한 가족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고독감이 더 고립시켜 외롭게 만든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나 때문에 고통받는 거라고 대놓고 막말하는 분이라
큰 병원에 옮겼다고 전화드리면 내가 심각한 상처받을 게 뻔하다.
여동생은 신앙 없이 세 아이 키우며 사는데 넘 힘들어할까 봐 걱정 얹어주고 싶지 않다.
불꽃쇼 소리가 그쳤다.
그래, 내게도 고통이 그칠 날이 오겠지.
문득 고통이 그치면 지금 나처럼 세상 한 곳에서 마스크 쓰고 견디는 누군가에게 달려가
꼭 끌어안아 줘야지. 꼭 기억해야지.
방금 주치의인 김태형 선생님께서 갑자기 병실에 불쑥 찾아오셔서 허깅을 해주셨다.
이 감동 때문에 모든 게 희망적으로 해석된다.
핸드폰으로 페북팅할 수 있는 게 오늘 밤 내 유일산 숨구멍이다.
4.
한남동 격리병동(2)
부산에 출장 중인 김태형 선생님이 홍길동처럼 나타나셨다.
악수가 아닌 허깅으로 반가워해 주셨다.
어머니 안 좋아 입원해 만났는데 반갑단 인사가 미안하다고 하시며.
어머니 현재 상태가 2009년 6월 처음 순천향병원 격리병동 입원해 결핵 치료할 때보다 양호하다고,
이번에 꼭 완치시키겠다고 힘을 주신다.
그동안 잘 지냈냐며 엄마 이상으로 내 안위를 걱정해 주신다.
이일 저일에 시달리다가 선생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으니 황량했던 마음에 꽃이 핀다.
선생님은 병실 나가시며 꼼꼼하게 마스크 쓰란 얘기로 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애정을 흘려 놓으셨다.
5.
한남동 격리병동(3)
목이 마르다.
누구처럼 성공과 우승을 향한 목마름이 아니라
갇힌 자, 가난한 자로서의 절박한 목마름이다.
오늘 처가에 있는 아이들과 아내를 1주일 만에 만나 데려오려 한 계획은 물거품이 됐고,
늘 그렇듯 숨 좀 돌리려면 바짝 긴장해야 하는 일이 또 덮쳐왔다.
생경한 일이 아니어서 현실 파악이 빨리 돼 다행이기도 하고,
반복의 과정이 보이기에 더 고통스럽기도 하다.
가은병원 주치의께서 결핵 환자는 병원에 있을 수 없다는 얘길 너무 조심스럽게 건네주셨다.
난 이미 예상한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던 중이어서,
보호자 마음을 그렇게 신경 쓰시는 주치의께 감사했다.
대책이 없단 걸 알고 월요일까지 병원을 찾아보겠단 말씀에
별 질문 없이 어머니 계신 구석 병실로 걸어갔다.
터벅터벅 다리에 힘은 풀리고 어깨는 푹 처진 걸 병동 수간호사님이 보시고
왜 그리 낙심하냐고 위로해 주셨다.
그리고 바로 감염내과 교수님인 김태형 선생님께 페북 메시지로 연락드리고 일사천리로 한남동에 왔다.
고요하다.
앰뷸런스 뒤에서 액셀을 마구 밟으며 달려오던 때와 다르고,
아침에 잠깐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사 한 방은 없을까 하는 발칙한 생각을 할 만큼
영혼이 어두워지려 한 순간을 넘어온 뒤의 적막.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핸드폰으로 쓰는 중에 석션을 했다)
순천향병원 입원 후 당직의와 간호사께 그간의 병력을 설명하는데 구구단 외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렇게 오래 견뎌온 히스토리란 억양도 세우지 않고
환자 간호 아주 잘 하는 사람이라는 티 한 점 내지 않고
질문에만 간단명료한 대답을 드렸다.
지금 난 낮아질 대로 낮아져 톤도 없고 색깔도 없다.
주님의 긍휼과 살아계심을 맛보고 싶다.
6.
한남동 격리병동(4)
새벽 내내 석션, 기저귀 갈기.
체력이 바닥나고 있다.
회사 출근도 새벽, 주말과 주일도 밤샘.
갑자기 생의 모든 것이 극기훈련장으로만 보인다.
7.
한남동 격리병동(5)
간만에 24시간 붙어 간호해드리는 동안
인간의 한계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오늘 간병인을 구하지 못하면 체력이 바닥날 것 같다.
다행히 1시에 오시겠다는 분과 연락이 닿았는데
좋은 분이 오셔야 할 텐데.
솔직히 일당 7만 원을 드리고 병실을 나갈 때 마음이 복잡하다.
비용도 그렇지만, 여러모로 우울감이 압박해온다.
현재로서는 출근도 힘들 만큼 소진된 상태다.
주일 오전 예배도 못 가고.
어머니 살아계신 동안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하고 견뎌왔건만,
지금은 서로의 고통 앞에 침묵만 흐른다.
엄밀히 말하면 완치도 없고, 호전은 고통의 연장인 상황이다.
그 연장의 길목에서 내 역할이 무슨 의미인지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의아스럽다.
배에 가스가 많이 차서 아침 이후 금식 오더를 받았다.
최근 어머니 배가 불룩해보여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매주 뵈어도 신경쓰지 못한 부분이 참 많다.
다 안다해도 해결책을 다 투입할 순 없는 상황.
적절한 조절이 최선이고, 올인이 최악일 수 있는
이 묘한 지대에서
에어매트 공기 순환 소리,
어머니 거친 숨 소리만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