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소망한다

연명치료 중단 후 첫 간호

by 황교진


518기념식에서 자상한 아버지 모습을 보여주신 문재인 대통령 덕분에 SNS에 감동의 물결이 넘친 하루였다. 김영삼 대통령 정부 말기에 뇌출혈로 의식을 잃은 어머니를 간호해 온 동안 대통령이 다섯 번 바뀌었다. 나는 어제 하루 건너뛰고 오늘 어머니를 봬러 왔다. 욕창에 붙이는 거즈를 보충해 드려야 했고, 이틀에 한 번은 병원에 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연명치료 중단 후 임종을 못 지킬까 하는 두려움도 크고, 지옥 같은 고통의 표정을 지켜보는 데 대한 두려움도 크다.


많은 분이 위로해 주셨고 기도해 주시겠단 답글을 일일이 읽었다. 좋아요 버튼을 누르지 못하겠다. 고맙고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됐지만, 고독하고 척박한 사막 한가운데 있는 절박함은 오롯이 내 몫이며 그대로다.

고맙게도 더치커피를 보내주신 분이 계셨다. 보틀에 얼음과 함께 넣어 운전하면서 들이켰다. 겨우 운전하여 어머니 병원에 도착하면서 느꼈다. 간호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알기 전의 그 낯설고 황망했던 20대의 당황스러움과 지금 내 기분이 같다는 것을.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무기력감이 짓눌러왔다.


내가 어머니를 20년 동안 괴롭혀 드린 건 아닌지, 이제 2년 후면 어머니가 쓰러지신 나이와 겹치는 내 나이에 돌아본 어머니 인생은 너무 가혹해 가슴을 쓰렸다. 내 아이들에겐 나처럼 책임지고 부모를 돌보도록 하고 싶지 않다. 아빠가 갑자기 쓰러져 깨어나지 않으면 기관절제도 연명치료도 하지 말아라, 얘들아.

병실에서 어머니는 아프리카 기아처럼 삐쩍 마른 몸에 눈동자는 힘이 없고 얼굴은 고통을 잔뜩 머금은 표정이었다.
"엄마..." 하고 부르는 내 목소리는 떨렸고 기운이 없었다. 가혹하고 가련한 깊은 슬픔만 가득 차올랐다.
"우리 꼭 천국에서 만나자"는 말씀을 드리다가 겨우 울음을 참고 "힘들지?" 소리 한 번 하고 병실을 나왔다.

간호사도 의사 선생님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만나더라도 위로도 안 되고 내가 할 언어에 자신도 없었다.

3시간 가까이 땀 흘리며 집중적으로 간호한 그 흔했던 일정 없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통증을 참으며, 순천향병원 김태형 교수님께 전화를 드렸다. 진료 중이실까 봐 통화 가능한지 문자를 드렸는데 바로 전화가 왔다.

"교진 형제, 잘 지내요?"
"선생님, 어머니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제 체력도 많이 떨어지셨고 욕창도 크게 생긴 데다가 너무 고통스러워 하세요."
"그래요, 그동안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힘들었어요. 욕창 치료도 이제 적극적으로 하지 말도록 하고 진통제 정도 처방해달라고 하는 게 맞아요. 이제 에너지를 아내와 아이들에게만 쏟아야 해요."
"네, 잘 알고 있어요. 제가 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는 거죠?"
"병원에 맡기고 그 기간을 잘 받아들이도록 해요. 어머니 인생에서 가장 좋은 선물이 무엇인지 아실 거예요."

5년 전에 김태형 교수님은 재발한 어머니 결핵을 완치시켜 주셨고, 그때 내게 어머니 한 인생, 인격을 생각하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이 기간이 혹독한 고통인 것을 서로가 염두에 두어야 하며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가정이 하나님 나라여야 한다는 교수님 말씀이 진정으로 들려왔다. 이런 말을 해주신 분이 몇몇 계셨지만 김태형 교수님은 나를 설득할 수 있는 삶을 살고 계셨기에 마음에 새겨졌다. 김 교수님과 깊이 교제한 뒤부터 난 어머니 얼굴 모습을 공개된 곳에 올리지 않았다. 소중한 인격체를 대하는 방법에는 아픈 얼굴을 올리지 않는 것이 포함됨을 깨달았다. 병실에 카메라가 들어오는 방송도 다 거절했다.

"제 친구나 다른 분이었다면 지금 이런 얘기 나누면서 펑펑 울었을 거예요. 선생님이어서 울지 않고 말씀드렸어요."
"그래요, 교진 형제. 넘 고생 많았어요."

기운을 조금 얻어 다시 병실에 올라갔다. 오늘은 간호팀장님과 대화 나눴다. 진통제 잘 놔드리도록 말씀드리고 그동안 내가 어머니 케어한 모습과 별개로 마지막 순간을 잘 맞이하려 하니 고통의 문제를 잘 부탁드린다고...

그런데...

차로 돌아왔는데 온 몸에 기운이 없다. 최소한의 살아갈 의욕이란 게 다 빠져나갔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으로든 정신을 비우고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제 갔던 시화나래휴게소에 들러 차를 마실까,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볼까, 이리저리 액셀을 밟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덥고 지쳤다.

허겁지겁 밥을 먹고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무표정한 모습으로 소파에 쓰러졌다. 만날 친구를 찾아서 맥주 한잔 마시고 싶었다. 기운도 없고 이 나이에 번개 받아줄 대상도 찾아지지 않아 그냥 소파에 쓰러진 채로 생각했다. 오랜 세월 그 많은 과정을 겪어왔지만 돈을 벌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가족을 위해 고생만 하신 어머니가 겪는 고통을 나눌 수 없어 괴로운 심정과 곧 보내드려야 할 순간을 맞이하는 혼돈과 암흑 앞에서 난 너무 연약하구나 하는.

이 깊은 상처와 우울함을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 한다. 그런데 그 극복이라는 게 결국은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시간을 만나고 겪고 시간을 보내는 것밖에 없다. 지금 난 비참함과 절박함 사이에서 아무 의미도 못 찾지만, 훗날 하나님이 알려주실 거라는 한가닥 믿음을 붙잡고 있다.
어머니와 난 가족 중에 유일한 신앙인이다. 오늘 태어나면서 상처 입은 딸을 보듬어 준 대통령처럼 그 이상으로 하나님이 어머니와 나를 안아주시길 믿고 소망한다.

2017.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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