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바다에서 서핑

모험으로 사는 인생

by 황교진



1.
아내가 5월부터 가까운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있다.
거의 10년간 두 아들 육아에 24시간을 쏟아붓다가 둘째가 7살 되면서 시립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생긴 여유 시간에 요가 수업을 권했는데 피아노를 선택했다. 둘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싶다는 이유와 결혼 전에 열심히 치던 건반(아내가 싱글일 때 좋은 키보드를 장만해두었다)의 감을 다시 익히고 싶다는 이유와 나중에 교회에서 반주로 봉사하고 싶다는 이유로.
감사하게도 동네에 좋은 피아노 학원이 있고 월 5만 원의 저렴한 수업료에 열심히 가르치시는 원장 선생님 덕분에 아내는 고3 입시 준비생처럼 피아노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선생님도 한 십 년만 일찍 시작했으면 이 길로 나가도 될 실력과 열정이라며 부추겼다.
아내는 매일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완벽하게 익혀서 주부의 답답함을 해갈하고 있다. 아침에 등교 전쟁을 마치면 바로 키보드 앞에 앉아 헤드폰을 쓰고 연습한다. 밤에 아이들 모두 재우고 나서도 건반을 친다. 그렇게 매일 자신에게 새로운 것을 심고 목표를 향해 가는 아내의 얼굴은 밝다.
4개월째 백수인 남편에게 돈 벌어오라는 바가지를 긁지 않는다. 사실 수입이 없이 어머니 병원비까지 감당하는 내게 바가지를 긁지 않는 아내가 고마운 만큼 더 미안하다.
음악에 열중하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은 핸드폰 매장에서 보는 설현보다 아름답다.

2.
어제 판교에서 교회 벗들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나는 일찍 집을 나섰다. 판교역 교보문고에서 책을 보고 백화점 구경도 할 겸 해서다. 아이쇼핑을 하며 핫플레이스인 판교에서는 백화점이 어떤 식으로 진열하고 유통하는지 살피며 출판 기획에 접목시킬 아이디어를 찾아보았다. 출판계 주변인으로 있으면서도 회사에 적을 둔 기획자 근성이 남아 있다. 책 만드는 일을 다시 못할 것 같으면서도 지난 12년간 이 일 외에는 딱히 다른 일로 수입을 얻은 적이 없으니!
지하 2층 교보문고는 크기는 작은 편이지만 깔끔하고 쾌적했다. 주부가 아이들 데리고 와서 책 보는 공간이 잘 마련돼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독서하는 사람들도 듬성듬성 있었다. 아이들 소음 외에는 도서관처럼 조용했다.
나는 <82년생 김지영>의 못다 읽은 부분을 펼쳐 읽었다. 지영 씨의 첫 직장과 육아 부분이다. 남편은 아이 갖자는 얘기를 간단한 프로젝트 대하듯이 말하고, 지영 씨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많은 부분을 고민한다. 남편은 자신이 돕겠다고 하고, 지영 씨는 왜 같이 감당해 가야 하는 육아를 ‘돕겠다’는 표현을 하는지 의아해한다. 지영 씨는 임산부로 배려받는 것을 거부하고 지각하지 않으려고 출근하다가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하기 싫어 한 승객에게 독하게 돈 버는 여자라는 수모를 당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매일 야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독박 육아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다가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 마시러 나와서는 주변의 젊은 직장인에게 맘충 소리를 듣는다. 퇴근한 남편에게 왜 1500원짜리 커피 한 잔 사서 벤치에 앉아 있는 자신이 맘충이어야 하느냐고 하소연한다.
나는 경력단절녀가 되어 하루 종일 아기를 돌보는 고단한 일과의 지영 씨를 읽으며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 생겼다. 다른 남편들보다 집안일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자부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나는 대청소와 아이들 목욕은 쭉 내 담당이었고 빨래를 널고 설거지 가끔 한다. 그러면서 ‘돕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아내가 ‘고맙다는 표현’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야말로 나는 지영 씨 남편 수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밖에서 돈 버는 일로 고단한 나의 고충을 아내가 이해하고 집에서 잠시 동굴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해주기를 바란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내가 빠충이 아닌가 싶다. (맘충에 비견되는 말을 억지로 만들어 보았다.) 난 가사노동을 이전보다 더 많이 하는 쪽으로 바꾸고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으려고 하는 태도를 제거하자는 다짐 정도의 변화를 이뤘다. 더 바꿔야 할 것들에도 마음과 손발을 열 것이다.
아내가 피아노 공부를 즐겁게 하고 다른 새로운 배움도 누릴 수 있도록 시간과 돈을 선물하고 싶다.

3.
3월부터 쉬면서 번아웃증후군을 이겨내려고 무던히 애써왔다. 마지막에 다닌 직장에서 실패하지 않으려고, 더 이상 물러서는 건 치욕이란 생각에 내가 가진 에너지를 모두 쏟아냈다. 결국 퇴사 무렵에는 간단한 서류 한 장 쓰기도 어려울 만큼 탈진하고 말았다. 2월 말에 퇴사하면서는 정신적인 한계에서 벗어나 살(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회사를 마무리하고 빚을 내어 제주도 가족여행을 2박 3일 다녀왔다. 안타깝게도 심리적 탈진은 회복되지 않았다. 큰아이 학교에 가정학습을 신청하고 아들과 단둘이 속초에 1박 2일 여행했다. 조금 좋아지는 듯했다.
그러다 어머니 장 기능 정지로 인한 체중 급감과 피부 짓무름에서 욕창이 생겼고, 적극적인 처치를 중단하는 것으로 결정한 후 급격한 우울증이 왔다. 나는 청년기 때가 그리웠다. 내가 직접 집에서 간호할 때 어머니는 편안했고 나는 고단한 일상이었지만 기뻤다. 죄 지을 시간도 없었고 죄 지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8년 동안 바쁘게 24시간을 보냈다. 자기 관리도 철저히 하여 음식을 적게 먹으면서 홈트레이닝으로 체력을 키웠다. 누굴 만나지도 못했고 잠을 자지 못했지만 자존감이 좋았고 매일 글 쓰는 기쁨이 있었다. 돈을 벌지 못했어도 교회에서 귀한 형제로 격려해 주시는 분들에게 위로를 받았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홈페이지 손님들의 격려를 받으면서 행복했다.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고 에세이 책을 쓰고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 키우면서 삶이 벅찼다. 어머니 병원비와 병원에서 하지 못하는 간호를 이어가며 회사 일을 하고 두 아이들 키우면서 내 한계를 넘어서는 탈진과 무력감과 싸워야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의 회사 일과 관계에서는 참지 못했다. 어느 정도 비겁해져야 한다는 생각은 마흔이 훌쩍 넘으면서 하게 됐다. 가장이 돈을 못 버는 것만큼 직무유기는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런 뒤 다시 겪는 실업과 어머니의 마지막 생존 시간을 함께 맞이하면서 깊은 우울감이 노크해 왔다.

4.
요즘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땀을 뻘뻘 흘리는 운동을 한다. 내 생존법의 중요한 솔루션은 운동이 차지하고 있다. 어머니 병간호하면서 작은 공간의 방바닥에서 매일 한 맨손운동으로 난 기대도 하지 않은 몸짱 소리를 듣고 울트라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청년기 때는 감옥 안의 사색과 같은 시간이었기에 몸을 관리하는 게 쉬웠다. 백수 생활을 겪으면서 그리고 과거에 1인 출판을 하며 힘들 때마다 나는 운동의 효과로 정신 안정을 유지했다. 자전거를 타고 근육운동을 하거나, 가끔 종각에 나가 7월까지 이용 가능한 피트니스 센터에서 두 시간 정도 운동하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진다.
그러고도 마음이 힘들면 서사에 빠져 있기 위해 책을 보거나 영화를 봤다. 개봉 신작 영화는 거의 본 것 같다.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있기에 영화는 좋은 도구였지만 더 좋은 건 역시 책이다. 서점에서 눈에 띄는 책들은 자존감에 관한 것들이다. 그만큼 지금 자존감 전쟁의 시대란 생각이 든다. 지난 정부 때 자존감 추락을 겪은 사람이 너무 많다는 방증이다. 세상이 비정상이고 몰상식할 때 그 구조 속에서 건강한 자존감을 유지하는 건 어렵다. 조기 퇴직과 퇴출 인생의 40대에 자신을 위로해 줄 서점에 와서 가장 먼저 손에 잡히는 책이 마음의 상흔을 위무할 책일 것이다. 나처럼.

5.
그저께 어머니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다. 간호사님이 최근에 어머니 몸에 열이 오르면서 머리에도 욕창이 생겼다고 알려주었다. 그로 인해 위험해질 수 있다고 언급해 주었다. 아, 정말 괴롭다. 하늘이 무너진 상태에서 하루하루 사는 것 같다.

6.
목표가 필요했다. 매일 피아노 연습하는 아내처럼 뭔가에 몰두하고 싶다. 두 아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 내가 10대 시절에 겪은 가난, 무력감, 상처를 물려줄까 두렵다. 기획한 8건의 출간계획서를 이어갈 만한 출판사의 편집장 구인공고를 보며 지원할까 하다가 회사와 나는 좋은 조합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고민에 빠졌다.
가장 현실적인 것은 한 달에 간증, 강의가 10회 이상 들어오는 거다. 그 정도면 생활이 충분히 될 것 같았다. 그렇지만 2004년에 낸 책으로 지금 계속 강연을 한다는 건 비현실적이다. 내 청년기의 8년 경험을 담은 <어머니는 소풍 중> 이후 12년을 모아 통합본을 출간하면 어떨까. 어쩌면 하나님이 내게 주신 독특한 콘텐츠를 내가 너무 무시하고 사는 건 아닐까. 다른 저자의 책을 만들어 오며 행복한 순간이 얼마나 있었던가. 편집자보다 내 목소리의 글을 쓰고 내 경험을 정리한 저자와 강연가로 설 때 행복하지 않았나.

7.
그래서 일단 출간계획서와 샘플원고를 만들어 출판사에 노크해 보기로 했다. 가능한 선인세도 받고 출간 일정까지 정해 줄 수 있는 곳에서 시작해 볼 작정이다. 첫 책을 출간한 2004년 여름에 수많은 언론 인터뷰와 강연 요청을 받았다. 난 매체 파워가 큰 K본부 휴먼다큐 <인간극장>과 M본부 대세 예능 <일밤>의 요청을 여러 번 거절했다. 편집자가 되고 나서야 적절히 활용하는 게 필요하단 걸 알았다. 내 가치관보다 가족에게 가져다줄 편의가 있다면 잘 활용하는 게 옳다.
인세 수입과 강연 수입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채워진다면 아이들과 국내든 해외든 좋은 여행 한 번 다녀오고 싶다. 작은 SUV 차도 한 대 사고 싶다. 이런 소망이라도 있어야 겹겹이 에워싼 고통에서 오는 우울증을 이길 수 있다.

8.
오늘 교보문고 평촌점이 오픈한다는 문자가 왔다. 집에서 가까운 안양1번가 교보점이 이전했다. 다음 주 월곡중학교에서 처음 해보는 진로 특강 강연이 잡혀 있어서 자료도 얻을 겸 서점에 나가 볼 생각이다.
인생에서 큰 모험을 할 때가 있다면 지금이 두 번째이지 않을까 싶다. 첫 번째는 대학원 입학을 앞둔 1997년에 모든 걸 내려놓고 어머니 간호에만 집중했을 때였다. 회사에 들어가는 것보다 프리랜서로 기반을 다져보기로 한 지금이 그 두 번째이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세컨드 찬스는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아이들은 하늘이 키운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그 아이들에게 하늘의 양식을 잘 전달하도록 분투할 것이다. 그 방법이 좋은 책을 많이 쓰는 작가와 강연가였으면 좋겠다.

2017.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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