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한 명 더 가까이 두고픈 소망
아내는 자그마한 계란형 얼굴에 크고 맑은 눈을 가졌다.
나는 까만 대두형 얼굴에 무표정하면 조금 다가서기 힘든 얼굴이다.
아내 태중에 있는 우리 영승이, 3D 입체초음파로 본 얼굴은
감사하게도 코 위쪽은 엄마를 닮고 인중과 입은 나를 닮은 모습이다.
서양인은 입을, 동양인은 눈을 중시한다고 하여
이모티콘의 웃는 모습도 “:)”, “^^”으로 다르게 표시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엄마 눈을 닮은 우리 아들이
최종적으로 어떤 얼굴일지 무척 기대가 되면서
엄마를 더욱 닮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다.
그저께 새벽, 막바지 피 도둑질에 안간힘을 다하는 모기 한 마리의
엄청난 날갯짓 소음으로 잠이 깨어 F킬러를 뿌렸다가
아내가 냄새에 민감해져서 가스실로 만든 안방에 모기를 가두고
이불을 거실로 옮겨 펴고 누웠다.
곧바로 잠이 오지 않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가 어느 순간 꿈결에 빠졌는데
그 후 여름이 다 지난 지금, 우리 부부는 거실에서 자는 게 편해졌다.
오디오가 있는 거실에서는 조용히 음악도 들을 수 있고
확장된 공간이라서 그런지 이런저런 얘기를 더 나누다 잠들게 된다.
하루 종일 내가 퇴근할 시간만 기다리는 아내와
집에서 실제로 마주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거실을 침실로 활용하여 대화 나누는 밤 시간은
서로의 정서를 채워주는 꼭 필요한 시간이 되었다.
아내와 아기 얼굴에 관해서 내가 반복하여 나누는 얘기가 있다.
“여보, 난 우리 영승이가 엄마를 꼭 닮길 바래.”
“왜요? 당신 닮으면 뭐 어때서요?”
“내가 겪은 그 숱한 상처를 아들이 다시 겪는 걸 원치 않아.”
“난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로만 보이는데 당신은 왜 그래요?”
“…….”
아내는 정말 아들이 아빠 얼굴을 많이 닮길 바라는 눈치다.
나를 닮으면 너무너무 귀여울 것 같다는...^^*
생각해 보면 내 얼굴을 ‘남자답다’, ‘호남형이다’, ‘잘 났다^^’ 등으로
평해 주신 분은 세상에 고슴도치 울 엄마밖에 없었다.
집 밖을 나가면 온통 이상한 캐릭터로 불리곤 했는데도 말이다.
사춘기 때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베트콩, 둘리, E.T.,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시커머스, 킹콩, 혹성탈출...
아무튼 못나고 평균 이하의 독특한 별명은 모두 내 이름 대신 사용되었고,
동종의 새로운 캐릭터가 나오면 바로 따끈따끈한 새 별명으로 붙여졌다.
조금 남아 있던 자존감은 사춘기 시절 별명들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하곤 했다.
내 아들만은 이런 별명을 대물림받기보다 기왕이면 엄마를 닮아
꽃미남 소리를 듣는 게 간절한 바람일 수밖에...
하지만 아내는 자신이 제일 멋진 남자라고 생각해서 선택한 나를
아기가 꼭 닮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데,
내가 그렇게 얘기하면 자신은 뭐가 되느냐고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항의하곤 한다.
나는 아내의 그런 모습이 너무나도 포근하고 고맙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현관을 나서기 전,
만삭인 몸으로도 쪼그리고 앉아서 내 구두를 정성껏 닦아주는 아내의 모습에서
내가 더욱 의지적으로 나를 사랑하며 자신 있게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곤 한다.
세상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참으로 다양하게 평가할 수 있다.
누구는 소심해서 싫다, 부담스럽다 하여도
누구는 세심해서 정말 마음에 든다고 한다.
누구는 경솔해 보인다고 거부하지만
누구는 솔직해서 친근하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 평가에 길들여져 있는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말해주는 따뜻한 용어들이라면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고,
나의 일면만을 보고 평가하는 사람들의 용어들이라면
항상 눌려 있는 자아상에 시달릴 것이다.
아내를 만난 후 내 사진 속 얼굴은 환하게 웃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그 이전의 우울한 표정은 시니컬한 세상이 보기엔 익숙할지 몰라도
그리스도인이 된 지금의 관점에서는 영 아닌 모습들이다.
표정을 바꿔주신 하나님의 역사야말로 살아계신 그분의 명확한 증거가 아닐까?
아내는 나를 닮은 아기를 원하지만,
지금도 난 아내를 많이 닮은 아기를 원한다.
내 모습이 못 나서 그런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한 명 더 가까이 두고픈 소망 때문이다.^^*
“영승아, 아빠를 닮아도 좋고, 엄마를 닮아도 좋아.
아빠는 엄마의 사랑과 신실한 믿음을 네가 쏙 물려받았으면 좋겠어.”
2007.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