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덕과 자족함을 배우는 시간
2020년!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숫자의 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생명을 잘 지켜내는 것이 고민인 심각한 현실을 살고 있다.
사람과 사람의 교류가 이렇게 어려워진 세상이라니!
디지털로 생존과 생활을 영위하다가 반년이 훅 날아가고 말았다.
편히 숨 쉬고 산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세상이 올 줄 알았을까. 누구도 경험해 보지 않은 코로나 팬데믹의 일상에서 불안을 자극하는 뉴스에 시달려 왔다. 두려움과 낙심의 소리로 시끌시끌한 가운데 여름을 맞았지만, 아무도 가까운 미래의 안전한 낭만을 논할 수 없다. 신록의 계절을 지나 여름과 낭만을 기대하기에는 공기와 얼굴이 무겁기만 하다. 덩달아 근심이란 근심은 다 덮쳐오는 기분이다. 좋은 공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마스크 없이 편한 얼굴로 스스럼없이 사람을 만나 공부하고 경제활동을 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상이 됐는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소리가 필요하다. 조용히 소나무 소리를 들으며 낙심을 파묻고 힐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생각할 수 있는 곳! 연세대학교의 견학 코스로 빠트리지 않고 소개되는 청송대(聽松臺) 말이다. 알다시피 푸를 청(靑)이 아닌 들을 청(聽)이다. 진정으로 절실한 위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청송대 뒷길을 통해 노천극장 뒷문에서 중앙광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신촌 캠퍼스의 아름다운 산책로다.
연희전문학교에서 가르쳤고, 한국 문학의 보석 같은 수필을 남긴 이양하(李敭河, 1904년~1963년) 교수는 청송대에서 모티브를 얻어 <신록예찬>(1947 이양하 수필집)과 <나무>(1964)를 썼다.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중략)
다음에 나의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 낸다.
연세대학교 청송대는 눈과 머리와 마음의 구석구석을 씻어온 숲이다. 연희전문학교 시절부터 유명한 데이트 장소로 청송대의 다람쥐를 보면 애정이 깊어진다는 속설까지 있다. 청송대 이름처럼 소나무 소리를 듣고 숲을 예찬하다 보면 문학과 철학의 싹이 튼다. 과거보다 규모가 축소돼 작은 숲으로 있지만, 높은 건물이 즐비한 도시에서 자연에 몰입할 수 있는 소나무 숲과 산책로가 곁에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가.
청송대는 6.25 당시 서울을 탈환해야 하는 국군과 인민군의 격전지이기도 했다. 전사자 시신을 이곳에 묻었고, 2008년 9월 유해 발굴 작업이 진행돼 데이트하던 학우들이 충격을 받기도 했다. 학생운동이 한창인 시절에는 학과마다 있던 풍물패 동아리의 요란한 연습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고, 동문으로 등교하는 길에 무예 동아리의 고함과 함성을 들을 수 있었다. 이따금 국악 동아리에서 신입 대금 연주자의 자세를 교정시키며 대금 소리가 처지면 어깨에 죽비가 작렬하던 곳이다. 연세대학교의 깊은 역사만큼 많은 소리를 수용한 청송대, 지금이 소나무 소리를 진정으로 깊이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코로나로 출입이 제한되고 대면 강의가 간절한 소원이 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한 캠퍼스에서 자기 성찰과 대면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무는 덕(德)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물과 흙과 태양의 아들로, 물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득박(得薄)과 불만족을 말하지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처지에 눈떠 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
(이양하의 <나무> 중에)
인간이 분수에 만족하지 않고, 숲을 사라지게 했기 때문에 코로나가 인간에게 전염돼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고 한다. 이양하의 <나무>처럼 숲을 인격적으로 대했다면, 나무의 덕을 인간이 지녔다면, 나무의 안분지족을 배웠다면 자연도 바이러스도 인간도 행복하게 공존하지 않았을까. 더불어 나도 지금의 나로 만족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고 우리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지점을 묵상하다 보면 나무의 그늘에 햇빛이 쓰윽 드리울 것이다.
도시 생활의 각박함, 진로에 대한 답답함, 내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하루하루에서 쉼을 갈망한다면 청송대에서 나무 소리, 까치 소리, 바람 소리를 들어보라. 왜 그리 무거운 마음으로 인생을 살고 있냐는 질문을 받을 것이다. 작은 하천을 보며 천천히 걷다 보면 하이델베르크와 교토에 있는 ‘철학자의 길’에서만큼이나 깊은 사색의 길을 경험할 것이다(교토의 벚나무 길은 ‘철학의 길’이다).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리고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마음을 숨 쉬게 하고 치유를 얻고 싶다. 청송대의 조용한 걸음이 최적의 진료이고 처방이 될 수 있다. 꼭 소환하고 싶은 추억을 끄집어내게 되고, 잊어야 할 수치와 두려움은 사라지게 하는 소나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내 인생의 리즈 시절을 갈망한다면 청송대에서 숲과 나무와 함께 고독해지는 시간에 들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