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거스르는 가치를 만들려면
4년 전 여름, 마이크임팩트라는 스타트업 기업에서 일할 때다.
퇴근 후 신촌서당이라는 곳에서 아주 특별한 토크콘서트를 경험했다.
나는 친하다고 생각하는, 그러나 본인은 안 친하다고 말하는 가수 이길승 씨가 초대해 주셨다.
인맥후크쇼라는 개념의 이 극소규모 콘서트는, 주최자 조원영 선생님이 연결시키고픈 사람들을 초청해 시너지를 일으키고 감동의 교제를 매개하는 강연회라 할 수 있다.
그날 가수 두 분과 10명의 관객만 초청되는 자리인데 실제로는 10명이 훌쩍 넘게 오셨다.
피터 님과 이길승 님의 포크 음악과 토크에 웃고 느끼고 공감하는 1부가 끝나고 조원영 선생님의 유머러스한 진행으로 모든 사람이 공통된 질문에 자신의 얘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길승 씨가 뽑은 쓰레기봉투에 들어 있는 쪽지에 다음 질문이 적혀 있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면서 쓸모없는 행동은?
길승 씨는 첫 번째로 이야기해 볼 사람으로 나를 지목했다. 이길승 씨와 조원영 선생님은 내가 유명인도 아닌데 너무 거창한 존재로 소개하셔서 민망함을 유머로 극복하려고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 질문의 문장은 너무 허술합니다. 이런 잘못된 문장을 잘 전달하기 위한 편집의 고통을 견디며 살고 있어요" 했더니 다들 웃어주셨다.
나는 "외로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외로워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 외로움 때문에 글을 쓰고 가족을 생각하니 사실은 쓸모없지는 않다고 말했다. 웃기고 싶었는데 숙연해져 버렸다.
다른 분들은 나름의 쓸모없는 습관을 말씀하셨는데 멋진 웃음 유발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지목된 참석자들이 답을 말하기 전에 사회자가 소개해 주셨는데 모두 사회 곳곳에서 약자들을 섬기고 가치 있는 곳에 자기 삶을 던지는 분들이었다. 이렇게 선한 분들이 활동하고 계시니 우리 사회가 지탱되는 거란 생각이 들 만큼 자신만의 크리에이티브한 생각들을 삶으로 실천하고 계셨다.
그러다 대학생 한 명이 지목당하여 거의 내게 시선을 맞추고 말했다.
"이 질문은 제가 만들었어요. 사실 저도 어떤 답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드는 질문이고 사람들의 답을 듣고 싶었어요. 저는 미래에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을 할 때 좋아하긴 하지만 쓸모없는 것 같아요."
그 여학생의 말을 다 듣고 질문 자체에 어깃장을 놓은 입장을 설명해야겠단 생각이 들어 손을 들고 말했다.
"제가 이 질문의 문장에 문제 있다고 했는데 방금 말씀한 대학생이 만든 질문이라고 하니 부가설명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모두 쓸모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쓸모를 지금은 알 수 없어도 좋아하는 모든 일은 가치가 있죠.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쓸모없을 거라는 생각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고 주입하는 가짜 생각이에요. 저는 그 어른 중에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청춘들과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청춘들이 미래를 걱정하면서 내가 좋아하지만 쓸모없는 일을 생각하게 만든 데 대해 책임이 있어요.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지 꼰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젊은 친구들이 스펙 쌓는 것과 상관없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정말 가치 있고 쓸모 있다고 생각하도록 세상이 바뀌어야 해요."
즐거운 분위기를 숙연하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히 다들 밝고 통쾌한 표정으로 박수를 쳐주셔서 마음이 놓였다. 안 친하다고 멘트했던 이길승 씨는 "제 친구입니다" 하고 거들어 주셨다.
내 책을 한 권 가져갔는데 그 여대생에게 사인해서 명함과 함께 선물해 주었다. 어느 순간부터 영향력 있는 분들과 관계를 맺는 것보다 후배들에게 밥 사주고 책 선물하며 이야기 나누고 퍼주는 게 더 기쁘다.
신촌서당같이 삶, 철학, 예술, 가치를 나누는 장소와 사람들 보니 어둠 중에 빛을 만난 기분이다. 전철 끊기는 시간만 아니면 밤늦도록 교제하고 싶었지만 아쉽게 먼저 나오면서 그 대학생의 말과 표정은 잊히지 않는다.
'미래를 생각하면 청년도 중년도 모두가 불안하고 지금 자신의 모습이 별 쓸모없어 보여요. 그래도 우리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며 세상을 거스르는 가치를 만들어 가요.'
속으로 되뇌며 지하철 1호선 막차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으로 폭염에 흐르는 땀을 식혔다.
다음 날 나는 그 대학생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를 받았다.
"뜬금없이 문자를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선생님께서 페이스북에 남기신 글을 보고 참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듣고 싶어 하던 말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선생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그 마음이 진실되게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아! 그리고 선생님께서 주신 책도 잘 읽고 있답니다.^^
혹시 제가 블로그에 리뷰를 쓰는데 선생님께서 쓰신 글 중 일부분을 올려도 될까 하고
이렇게 문자를 드립니다.
나중에 시간 되시면 봐주시고 조언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앞으로 있는 강의 모두 리뷰를 써야 되는데 글 쓰는 게 어렵네요.
선생님과의 만남과 쓰신 글은 두고두고 기억하겠습니다.^^
더운 여름 건강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