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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Oct 27. 2020

하얀 침대의 나르시시즘

위로받기보다 위로를 만들어 가는 삶

이사하고 아이들 방 꾸며준 뒤 마지막에 조금씩 바꿔나간 것이 내 침실이다. 새벽 늦게까지 거실에서 일하다가 혼자 자는 침실이 됐는데, 계속 목과 허리가 아파서 무릎 사이에 끼우고 자는 베개와 목이 편한 베개를 샀고, 그다음 오래된 매트리스의 딱딱함이 내 몸과 맞지 않은데 바꿀 여력은 안 되어 세일하는 토퍼를 매트리스 위에 올렸다. 


이 모든 게 무조건 흰색이다. 


최근에 일교차가 커서 겨울 담요를 꺼냈는데 이마저도 살짝 아이보리 색감이 있는 화이트 계열이다. 흰색 토퍼가 때가 쉽게 탈까 봐 매트리스 커버를 하나 더 사서 그 위를 덮었다.  역시 흰색으로.


누가 보면 병원 침대냐고 할 수 있지만, 내가 흰색으로 침대를 꾸민 이유는 여행지의 호텔에서 대접받는 느낌으로 집에서 잠들고 싶어서다. 좋은 호텔에서 대접받는 기분으로 잘 때처럼 안방 침대를 흰색으로 꾸미는 이 부분은 김정운 교수의 책에 여러 번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탁하기 힘들지 않게 커버에 신경 쓰고 세탁은 내 몫이다.


집에서 주로 근무하고 갱년기의 의욕 저하와 헛헛함을 견뎌야 하는 중년이 되니, 내 가치감과 싸우는 일이 많아졌다. 쉬고 있으면 불안하고 통장에 돈이 적게 들어오는 달이면 더 불안하다. 불안으로 잠이 오지 않고, 다음 날이면 일할 의욕과 힘이 없다. 


식탁에는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기대할 수 없다. 두 아들은 햄을 좋아하고 나는 생선구이를 좋아하지만 늘 햄구이가 오른다. 내가 장 봐와서 생선을 좀 굽든지 해야지...


함께 여행 다니며 열심히 키운 아이는 방문 걸어 잠그고 친구들과 메신저 삼매경에 빠지거나 게임에 몰두한다.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사춘기 아들에게서 절실히 눈물로 배운다. 


가장의 짐을 잠시 덜고 모든 시름을 잊기 위한 최적의 시간은 잠자리다. 매일 자정 넘어까지 남의 글을 다듬거나 원고료 할당된 내 글을 쓰는 작업을 하다가 겨우 잠자리에 들 때, 나는 이곳이 여행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얀 커버의 침대에 눕는 순간, 이 침대라도 나를 대접해 주는구나, 하며... 


그래, 불쌍하다, 중년 가장. 

그래도 하루하루 이리저리 가성비 아이디어 찾으며 슬쩍슬쩍 웃는다. 

'아이디어 좋은데! 창조 경영인데!' 하며. 


바쁜 일 조금 정리하면 산책을 나간다. 호수 공원까지 걷고 오면 한 시간은 걷기 운동하며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내 가치도 저 아름다운 늦가을의 모습처럼 쓸쓸해도 빛나지 않을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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