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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Nov 02. 2020

[읽은 책]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황수진 저)

25년 만에 통화한 그녀, 작가와 신학자로 열심히 살아온 삶에 박수를

최근에 일이 있어 양재 쪽으로 갔다가 부근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홍원표 목사(더하트하우스교회)를 만났다. 오랜만에 같은 또래 친구 홍 목사님과 점심을 먹고 대화 나누다 장신대 조직신학 얘길 했고, 내가 대학부 시절 같은 그룹에서 만난 후배 황수진이 생각났다. 


수진이는 나와 이름 한끝만 차이나는 5살 동생으로, 태어났을 때 시신경이 자라지 않아 앞을 못 볼 거란 진단을 받고 부모님의 기도에 기적적으로 한쪽 눈의 시신경이 살짝 회복돼 약시로 일반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해 왔다.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영문과 학생이었는데 장신대 신대원을 준비해 입학했다. 내가 만난 시기는 수진이가 3학년이었을 때다. 그 후 나는 그 대형 교회에서 작은 교회로 옮기고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간호하다가 기도하러 장신대에 가면 두어 번 만날 수 있었다. 수진이는 조직신학을 계속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 목사와 대화 나누다가 수진이가 기억나 연락처를 물었다. 카톡 연락처를 받아 그날 저녁 25년 만에 연락을 했다. 문경에서 거의 담임목사에 가까운 목회를 하는 여성 신학자였지만, 갑자기 우리 둘은 대학부 시절로 돌아가 격의 없는 얘길 나누었다. 전화 끝에 자신은 자연에 파묻혀 글말 쓰며 살고 싶다면서 책 두 권을 내게 보내주겠다고 주소를 물었다. 그래서 배송받은 수진이의 책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2015년 간)와 <날마다 힘드신 당신께>(2019년 간) 두 권 중  먼저 쓴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를 어제 읽었다. 


태어나 바로 실명할 거란 의사 진단을 받고 주변 환경에 적응하고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 자신의 장애를 해석하며 살아온 수진이. 넘 일찍 어른이 돼 있었다. 공부를 계속하며 우울증, 공황장애 등도 겪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깊은 묵상이 이뤄졌고 그 메시지에는 눈물과 박수와 공감이 일어났다. 방금 저자 황수진 작가님께 카톡으로 보낸 후기다.  지금 문경의 작은 교회에서 아버지를 도와 목회하며 장신대에서 조교도 하고 있다. 문경과 서울을 오가며 열심히 사는 귀한 사역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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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 목사님, 최근에 바쁜 일들 좀 정리하고 어제 하루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붙잡고 다 읽었어. 

음...


한마디로 최근에 읽은 에세이, 지난 몇 년간 읽은 에세이 중에 최고의 책이었어. 중간에 몇 번 울컥해서 눈물도 날 만큼 이야기 구성과 메시지까지 넘 가슴에 와 닿았네. 특히 무섭게만 생각한 조직신학 교수님이 수진이 눈을 더 치료할 수 있는지 도와주시려 했을 때는 그 깊은 감동과 하나님의 사랑에 눈물이 많이 났어. 


부모님이 수진이에게 "박사 논문 못 써도 괜찮아. 네가 더 소중해."라고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의 부모 세대는 끝까지 노력해서 뭔가 이뤄내도록 이끌어야만 자식을 사랑하는 거라고 생각하셔서 안타까웠어. 이렇게 피투성이라도 살려고, 말씀에 적힌 대로 믿고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딸의 마음을 좀 더 공감해 주셨으면...


그래도 조직신학 책은 한 줄도 읽기 어려운 정신적 부담을 이겨내고 하나님이 주신 아이디어로 박사 논문을 완성해 낸 데 박수를 보내.


한편으로는 그 가운데 자신을 성찰하고 다독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공급을 사모하며 애써나간 수진이 삶에 큰 감동을 받았어.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구나, 고개 끄덕이면서 그리고 나와 겹치는 기간의 대학부 시절 이야기에는 귀 쫑긋하며 집중하면서 읽었네. 


덕분에 금요일 하루가 참 풍성했어. 


이런 말이 있지. 기술은 잘하고 못하는 게 있어도 예술은 잘하고 못하는 게 없다고. 누군가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주면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이란 거지. 난 수진이 에세이가 예술이라고 생각해. 글재주 같은 건 소용없어. 수진이 마음이 이렇게 잘 전달되는데 뭘. 그 자체로 충분한 문학이고 괴테처럼 훌륭한 작가야. 게다가 몸이 100이라면 눈이 99라는 그 중요한 눈의 장애를 이기며 공부하고 글을 썼잖아. 넘 참 귀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해.


한편으로는 명성교회 대학부 시절 더 많이 얘기 나누고 더 소상히 이해해 주지 못해 미안하더라. 내가 1996년 여름에 삼익가든아파트 살다가 강변역 우성아파트로 이사했지. 하남의 집으로 버스를 타는 수진이와 늘 가까이 있었는데 말야.


레아에 대한 성찰도 훌륭한 메시지였어. 우린 모두 레아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말야. 모두가 아픔과 결핍을 붙잡고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 하나님께 털어놓으며 터벅터벅 걸어가며 살아가는... 가족이 위로가 될 때도 있고 가장 아픈 가시가 될 때도 있고. 


문경에서 적응해 나가며 사택에 수세식 화장실 설치했을 때는 박수까지 치며 읽었어. 내가 건축을 전공했잖아. 어떤 공간에 살든 마음이 중요하다고 일반 철학에서는 얘기하지만 건축 철학에서는 공간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말하지. 숱한 어려움 뚫고 여기까지 온 수진이를 정말 축복해. 


그리고 이제 교회 사역 문제를 비롯해 또 여러 산적한 현실적 문제가 있지만, 내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은, 넘 걱정하지 말고 누려.. 무조건 누리고 마음 편하게 먹고 다 잘 될 거라 생각하고, 안 되면 내려놔. 앞으로는 박사학위 논문 때처럼 괴로운 과업과 책임이 밀려오면 그냥 내려놔.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거야.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를 넘 감명 깊게 읽어서 또 한 권의 책 <날마다 힘드신 당신께>도 넘 기대가 된다. 오늘부터 읽으려고. 


그리고 더 기대가 되는 건, 앞으로 수진이가 써갈 많은 좋은 책들이야. 너의 미래를 축복해. 훌륭한 작가님이 될 거야. 난 믿고 확신해.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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