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사랑 흔적
어머니는 내가 대학교 3학년 때 졸업을 앞두고 정장 한 벌은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매일 동대문 광장시장에서 새벽에 옷 장사를 하시느라 마주할 시간이 없던 어머니는 1996년 가을 을지로의 백화점에서 수업을 마치고 온 나를 기다리셨다.
나는 처음 해보는 엄마와의 백화점 데이트에 신이 났다. 어머니는 넓고 다양한 신사복 매장을 여러 번 돌며 내게 맞는 정장을 골라주셨다. 새벽 내내 일하시느라 피곤하실 텐데도 가장 잘 어울리고 좋은 옷을 사주시려고 정성을 다하셨다. 나는 뭉클한 마음을 누르고 그저 어머니 곁을 따라다녔다.
그리고 몰랐다. 정장을 살 때는 와이셔츠, 넥타이 외에 구두까지 사야 한다는 것을.
1층 구두 매장에 내려와 편하고 발에 맞는 구두까지 골라 사주셨을 때 아들로서 너무 죄송했다. 건축공학 전공과 선교단체 동아리 일로 이리저리 바쁘기만 했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꽃 선물 한번 해드린 적 없었다. 그 가을 어느 날 백화점에서 정장 세트에 구두를 선물받고 외식까지 한 엄마와의 데이트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꼭 1년 뒤 내가 대학 졸업시험을 치르던 무렵에 어머니는 일하시다가 쓰러지신 뒤 뇌수술을 받고 식물인간이 되셨다. 나는 어머니께 해드리지 못한 모든 죄송함을 병간호에 열정을 쏟으며 덜어내며 살았다. 20년을 의식 없는 몸으로 지내신 어머니를 간호하며 많은 사연이 쌓여갔다.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신 지 3년이 흘렀다.
나는 어머니가 사주신 정장을 입고 여러 강연장에서 우리 모자의 사랑 이야기를 전했다. 지금 그 정장은 해어져 남아 있지 않지만, 구두는 뒷굽을 갈아가며 잘 신고 보관하고 있다. 오래 신어 더 내 발에 맞게 편하고 부드러워진 가죽은 엄마의 사랑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때 백화점 거울 앞에서 생애 첫 정장과 새 구두를 신은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웃으시던 어머니의 반달 눈웃음을 잊지 못한다.
강연 부탁을 받고 구두를 신을 때마다 가슴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에 뭉클해진다.
어느덧 중년에 들어서고 우울감과 피로감에 지칠 때마다 엄마의 사랑 흔적인 구두를 꺼내 신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