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교진 Apr 27. 2021

다시 인생을 연주할 수 있을까

팬텀싱어에서 느낀 우정과 가족

돌아보니 2월 2일 이후 ‘글 같은 글’은 한 편도 쓰지 못했다. 괴로웠고 우울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긴 시간 마음을 터놓기 어려웠다. 단 한 글자도 쓰기 싫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번아웃의 상태에 수시로 자책감에 시달렸다. 이렇게 숨 쉬려는 힘을 내며 뭔가를 끄적이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병원 진료가 필요한 수준이구나 싶은 우울증을 견디고 있다. 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지인 한두 명을 찾는 것도 주저했다. 지인 한 분은 내게 병원에 가보라고 했지만, 나는 모르는 의사에게 돈을 지불하고 내 마음 상태를 풀어놓는 게 너무 싫다. 이게 교만이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삶의 깊은 헛헛함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팬텀싱어 올스타전>이었다. 팝이 아닌 성악가, 뮤지컬 가수들의 남성 4중창이 안겨주는 풍부한 감동을 올스타전 2회부터 접했다. 시즌3 우승팀인 라포엠의 <한숨>이 그 시작이었다. 어려운 외국어 노래가 아닌 익숙한 종현의 노래를 카운터테너가 있는 4중창의 블렌딩으로 듣고는 깊은 위로를 받았다. 객석에서 나처럼 울면서 들은 존노를 비롯한 여러 출연자에게 관심이 지펴져 시즌3까지의 36명 개개인이 궁금했다.     


올스타전 무대와 객석을 통해 최종 세 팀에 누가 들어갔는지 결과를 아는 상태에서 팬텀싱어 시즌 3, 2, 1의 순서로 모두 감상했다. 한 시즌당 12편이니 36편의 방송으로 멋지고 아름답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클래식과 크로스오버 곡들을 감상한 것이다. 매회 차마다 큰 감동을 받았다. 카페에서 휴대폰으로 경연곡을 들으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기도 했고, 탈락자와 선택된 자들의 우정에서 깊은 슬픔을 접하기도 했다. 2016년(~2017년 초) 시즌1, 2017년 시즌2, 2020년 시즌3의 출연자 중 기억에 남는 3명씩을 꼽자면 시즌 3의 최성훈, 존노, 유채훈, 시즌 2의 김주택, 강형호, 조민규, 시즌1의 이벼리, 유슬기, 이동신이 내 감정선을 건드렸다(아, 3명씩 꼽는 것 어렵다).     


첫 방송인 시즌1이 기획될 때 중도 폐지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K-POP 이상의 관심을 받으며 작년에 3년 만에 시즌3가 방영됐다. 코로나로 무대가 사라진 해외파 성악가들이 많이 참석해 시즌1에서 뮤지컬 가수들이 많았던 것과 달라진 부분이 보였다. 팝적인 감성에 품위가 더해졌고, 무대에 대한 절실함도 더해졌다. 경연곡 중에 이태리 칸쵸네보다 익숙한 가곡과 가요, 팝의 선곡이 많아진 것도 특징이다. 뮤지컬 배우들 중에 최종 4팀에 들어간 이들도 상당수 성악과 출신이다. 역시 탄탄한 전문적 발성이 팬텀싱어 무대를 돋보이게 했고, 무대가 거듭될수록 성장하는 캐릭터들에서도 애정이 느껴졌다.      


팬텀싱어 올스타전도 종료된 시점에서 위로와 감동의 컨텐츠를 떠나보낸 공허함이 밀려왔다. 내가 뒤늦게 팬텀싱어에 애착을 가진 이유는 외로움과 고립감 때문이다. 트리오 무대부터 서로 간의 캐미와 눈빛에서 느껴지는 우정과 감동이 깊어졌고, 무대를 마치고 격려해 주는 따뜻함에서 깊은 위로를 느꼈다. 내가 절실히 갈망하는 둥지가 그들 안에서 발견돼 울컥했다. 치열한 경쟁에서 최종 3팀의 12인이 되지 못한 이들에게 감정 이입해서 눈물이 많이 나기도 했다. 함께 무대를 준비했다가 떠나보내는 이들의 슬픔에서도 먹먹해지곤 했다. 성악가들의 눈물은 정말 애절하다. 우는 목소리 톤에도 테너, 바리톤, 베이스 성부가 나온다. 마지막 결선 무대에 오른 3팀의 삼국지 도원결의 같은 평생의 우정과 화합의 분위기는 이 어려운 코로나 시대에 짐을 나눠 지며 연대하는 버팀목의 든든함을 느끼게 해준다.      


올스타전에서 경쟁보다 축제와 기량을 발휘하는 무대 갈증이 보여서 더 감동적으로 보았다. 아무래도 시즌3 우승팀인 라포엠이 내 감성과 잘 맞았다. 다른 팀들이 뮤지컬 가수가 한두 명씩 있는 것과 달리 성악가들로만 구성돼 있지만 최성훈 씨의 카운터테너 목소리가 팝적인 모든 공간을 메우고도 남았다. 언젠가는 현장에서 이들의 노래를 듣고 싶다(티켓값을 편하게 지불할 만큼 경제력이 회복되어야 한다).     


전체 무대 중에 내가 뽑은 베스트는 최성훈, 존노, 최바울 트리오가 부른 시즌3의 <바람의 되어>다. 이 곡을 부를 당시 존노가 예일대 음악대학원 졸업을 온라인 수업으로 준비하며 치열한 경연을 하던 때라 이 무대 직전에 목소리가 안 나올 만큼 목이 상해 있었다. 당일 무대 직전에 병원에 다녀올 만큼 불안했지만, 결과적으로 심사위원 점수는 박했어도 레전드를 찍은 무대였다. <바람이 되어>를 이들을 통해 처음 듣고 내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해 산책할 때마다 듣는다. 이 곡 때문에 팬텀싱어의 뒤늦은 열성팬이 되었고, 이어서 <미스터 션샤인>을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미스터 션샤인> 후기도 언젠가 남기고 싶다.     


가요나 팝을 좋아하지만, 남성 4중창이 주는 감동의 노래는 더 좋아하게 되었다. 라포엠이 결승 무대에서 부른 베트 미들러의 <로즈>, 자우림의 <샤이닝>, 라비던스가 부른 존노의 유학시절 위로곡 들국화의 <사랑한 후에>는 팬텀싱어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으로 다시 저장되었다. 혼자 순천에 내려가서 한적한 국가정원을 거닐며 이 곡들을 들을 때의 그 추억을 잊지 못한다. 팬텀싱어들에게서 무대에 대한 목마름을 보았듯이 내 삶의 시간에 사라져 가는 열정을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처럼 느꼈다. 나는 매일 울음을 참고, 극심한 외로움을 억누르고, 절박한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툭 건들면 터질 것 같은 비애 때문에 팬텀싱어 노래들에서 특별한 위안을 얻은 것 같다. 그들처럼 혼자가 아닌 노래가 주는 감동, 가족이 되어 주는 사랑이 그립다.


베이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건물을 지을 때 기초 공사의 중요함처럼. 좋은 베이스가 있는 팀은 백퍼센트 선전한다. 바리톤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며 브릿지 역할을 잘 해낼 때 감동이 되었다. 시즌3의 박현수와 정민성은 이 부분에서 돋보였다. 테너는 정말 시원하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훌륭한 테너가 많았구나. 그 가운데 카운터테너 최성훈은 신계의 목소리로 들렸다. 그의 가성을 들으면 마음의 거칠거칠한 부분이 부드러운 솜털이 된다.


나는 브릿지 역할을 하는 바리톤 같은 삶을 살고 싶다.

이렇게 3개월 만에 다시 글을 쓰게  것이  삶의 브릿지가 되어 주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희망을 말하지 말고, 공감부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