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멈춤의 시간

커피는 달고 나는 더 소중하게 보이는...

by 황교진

명동에서 점심 미팅이 있어 나왔다.
오늘 약속이 있는 것이 내 하루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쉬는 동안 책을 내기로 약속한 분들과 미팅을 갖고 있다. 예전에 회사를 나오면서 단체 메일과 문자로 상황을 설명하며 이해를 바라고 상황이 수습된 뒤 천천히 만나서 대화 나누려 했다가, 내가 직접 찾지 않은 것을 섭섭해하신 분이 있었다. 몇 번의 이직 과정을 겪으며 중요한 대화는 만나서 해야 함을 인식하고 김보성처럼 '의리'의 마음을 굳건히 다지고 있다.

오늘은 내가 계속 매니지먼트해야 할 분을 만나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저간의 사정을 나누고 앞으로 더 좋은 길을 열어가기 위한 마음을 표현했다. 만나면 세 시간이 후딱 가는 분과 헤어지고 을지로, 청계천, 종로3가, 인사동을 걸어 경복궁 부근까지 왔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날씨와 어울리는 차분한 음악을 들었다.

인사동은 내 첫 직장이 있는 거리다.
5년을 다닌 회사의 이 거리는 입사 전에는 즐겨 찾던 산책 코스였다가, 근무 중에는 벗어나고 싶은 국적 불명의 지루한 도깨비 시장이었다가, 지금은 입사 전보다 더 그리운 추억의 거리가 되어 있다.

우비를 입고 손님을 끄는 북촌손만두 직원의 옆을 지나 점심시간에 간혹 둘러본 갤러리들을 지나 회장님 연설문 쓰다가 안 써지는 글에 괴로운 마음으로 퇴근한 뒤 혼자 거닐며 구경했던 쌈지길 가게들 풍경에 다가갔다.
수제 손수건 가게, 아로마 허브 향기 판매 가게, 예쁜 액세서리 집, 사진 찍으면 싫다고 앙증맞은 경고문 너머로 보이는 매력적인 구두 가게. 흐른 날씨로 조우한 인사동의 아기자기한 가게들은 2005년에서 2009년까지의 내 기억들을 상큼하게 꺼내 주었다.

카페에 앉아 아무 부담 없이 생각하고 글로 수다를 떨다가 서점에 들러 읽고 싶은 책들, 시장 조사가 아닌 내가 좋아서 넘겨보는 책과 벗하는 하루가 로망인 시절이 있었다. 생기디자인의 박희현 실장님이 내가 제주도에 있을 때 스벅 프라푸치노 쿠폰을 4장이나 보내주셔서 그걸 사용하기로 하고 사촌 형이 수학선생으로 근무하는 풍문여고를 지나 스벅 경복궁점에 들어왔다. 그렇게 로망을 실현해 보고 있다.

자바칩프라푸치노는 오늘따라 더 달달하다. 너무 바쁘게 무거운 짐을 이고 살다가 살짝 놓으면 커피는 달고 나는 더 소중하게 보인다. 주변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은 더 고맙고 소중하게 떠오른다. 궁금한 사람이 생각나고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고 싶어진다. 멈춰 섰기 때문에 보이는 마음과 풍경만큼 감동적인 다독임은 없는 것 같다.


언젠가 출근하게 되면 갖지 못할 이 멈춤의 시간에 멍 때림의 유익을 만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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