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뻑이 필요해

살림을 즐거워하는 능력

by 황교진
며칠 전 비가 온 뒤의 하늘이 멋져서 찍었다. 이런 명장면을. 머리 위에 두고도 놓치고 산다.


아내가 피부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어 병원에서 검사해 보니 집먼지진드기가 원인이라고 한다. 결혼할 때 장만한 천 소재의 소파가 진드기들의 서식처가 아닐까 하여 오늘 난 외출하지 않고 대청소하고 소파를 폐기물 처리하기로 했다.

백수 기간 중에 최고의 선물은 아내를 쉬게 해주는 거란 목표 하에 영승맘에게 신용카드를 주고 외출시켰다. 집에서 가깝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이케아에 가서 마음껏 구경하며 커피도 한잔하고 쉬고 오라 했다. 거실의 소파 자리에 꾸미고 싶은 가구 한두 점도 사라고 하니 환한 얼굴로 차 키를 들고 사라졌다. 하교한 영승이와 예승이 식사와 간식 챙기기, 방과 후 지도 등의 낯설고 무거운 숙제는 내 차지가 됐다.

흐린 날씨지만 창문을 열고 소파를 분리해서 일단 현관 앞 계단에 내놓았다. 비가 그치면 폐기물 스티커를 사서 쓰레기 분리장에 내놓을 것이다. 스팀청소기를 꺼내 집안 구석구석 싹싹 청소했다. 우리 집 청소기 무게가 장난이 아니라서 물걸레 달고 밀면 거의 헬스장 역기 드는 무게감이 전달된다. 아이들은 안방에 핸드폰 게임으로 포박시켜 놓게 청소를 마쳤다. 온몸이 사우나를 한 듯 땀범벅인 몸을 샤워하고 아이들에게 짜파게티를 짜윤스럽게 끓여주고 설거지까지 해두었다. 영승이는 좋아하는 바둑학원에 보내고 영승맘에게 전화하니 혼자 나오길 잘했다고 한다. 부부가 같이 이케아에 와서 서로 마음이 안 맞아 여러 커플이 싸우고 있더라는...

아이들과 공부하는 거실로 만들기로 하고 거실에 TV 놓지 않고 서재로 꾸미고 살고 있다. 안방에 둔 TV도 얼마 전에 처분했다. 그러나 정작 책 만드는 일을 하는 나는 거실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둘러앉아 책을 읽은 적이 없다. 오늘부터 책 만들며 고단한 아빠가 아니라 책 읽어주는 아빠, 책 읽는 모습의 아빠를 아이들에게 선물하련다.

청소와 설거지 잘하고, 아이들 잘 보고, 아내 편히 외출시키는 난 능력 있는 남자다. 이렇게라도 자뻑을 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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