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시절의 감동 일화
제가 아내와 연애할 때 치킨스킨 모드의 일화를 하나 소개합니다.
2005년 이맘때였어요. 실화입니다. 당시 데이트할 때 사진도 찾아 올립니다.
<되찾은 지갑 이야기>
아내와 교제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채 안 됐습니다.
7월 초 제 생일이 다가왔습니다. 남자 친구의 첫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아내는 가장 필요한 선물을 궁리했습니다. 당시 제가 여름임에도 답답해 보이는 구두 한 켤레만 신고 더운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여름에도 시원해 보이는 새 구두를 생일 선물로 사주려고 은행에서 현금을 찾아두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담으려고 일부러 신권(빳빳한 새 돈)으로 20만 원을 찾아 두고, 고향의 부모님께 붙여드릴 돈 30만 원과 함께 지갑에 넣어두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돈은 다 똑같은 돈이지 신권에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냐고 막 구박을 했더랬습니다.
현금을 찾은 그날, 가정 방문 교사인 아내는 아이들 가르치러 강남의 한 동네에 차를 몰고 갔다가 갈증이 나서 편의점 앞에 잠시 정차시키고 음료수를 사러 들렀다 와보니, 아~ 글쎄!!!
그 짧은 시간에 도둑님이 잠긴 차문을 따고 아내의 핸드백을 열어 지갑을 가져갔습니다. 부모님께 붙여드릴 돈과 남자 친구 생일 선물할 신권을 모조리 들고 말이죠. 속이 많이 상한 채로 편의점 주인에게 혹시 지갑을 찾게 되면 알려달라고 연락처를 남겨 두었다고 합니다. 그날 하루 일과를 마친 후 밤에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지갑 도난 얘기를 듣고는 저는 무척 속이 상해서 아내에게 위로는 못해줄망정, 왜 구두를 현금 주고 사야 하냐고, (그리고 위에서 쓴 대로) 돈은 그냥 돈이지 뭐 하러 애써 신권을 찾아서 그렇게 잃어버렸냐고 타박을 했습니다.
저는 선물로 받은 구두 티켓이 있던 터라 세일할 때 기다렸다가 구두를 사면 된다고, 쇼핑을 그런 식으로 하는 거 아니라고 구박의 강도를 높여 갔습니다. 지갑 잃어버린 것도 속상한데, 남자 친구가 자기 마음도 몰라주고 야박하게 말하는 상황에 얼마나 더 속상했을까요. (이렇게 저는 어설펐습니다. 결혼은 기적의 선물이었죠.)
나중에 미안하다고 했지만, 저는 끝까지 많은 현금을 지갑에 넣어 둔 아내에게 한 소리 하는 몰상식 센스를 잊지 않았답니다. 얼른 카드 분실 신고하고, 신분증만이라도 잘 돌아오길 바라는 기도를 드리자고 했죠.
그러고 생각해 보니, 좋은 구두를 선물 받은 것 이상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를 많이 생각해 주고 기쁘게 해주려는 마음 자체가 얼마나 예쁜지...
갑자기 치킨스킨 모드로 변했습니다.
신권을 준비했다가 지갑 채로 잃어버린 아내를 앞으로 더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했죠.
며칠 후, 참 감사하게도 지갑을 잃어버린 편의점 근처의 한 상가에서 현금만 없어진 아내의 지갑이 청소하시는 관리인에게 발견되어 연락이 왔습니다. 비록 돈은 없어졌지만, 잃어버린 지갑을 되찾은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는 함께 명동에 가서 제 구두티켓으로 좋은 구두를 장만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흐른 뒤입니다. 아내의 핸드폰으로 지갑을 잃어버린 장소의 편의점 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뭔가 줄 게 있으니 와보라는 얘길 듣고 아내가 가 보았습니다.
얼마 전에 한 사람이 편의점 주인에게 와서 경찰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며 40만 원을 주면서 지갑 잃어버린 여자분에게 돌려드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차문을 따고 아내의 지갑을 날름한 그 도둑님이었죠!
참 이상한 일입니다.
왜 그 도둑님은 자신이 슬쩍한 돈을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편의점에 가져왔을까요?
그는 자신이 가져간 지갑 안에서 장기기증 카드를 봤다고 합니다.
아내는 자신의 몸을 이웃과 나누려고 이미 오래전에 장기기증 서약서를 쓰고 그 서약 카드를 지갑에 넣어두고 있었습니다. 장기기증 카드는 만약의 사고에 대비하여 항상 신분증 옆에 넣어둬야 합니다.
도둑은 도저히 자신의 양심상(?^^) 장기기증을 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의 돈을 몰래 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편의점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잃어버린 돈의 5분의 4를 되찾은 아내는 제게 이 얘기를 들려주면서 뭐 필요한 거 없냐고, 그때 못한 생일 선물 대신 지금 좋은 선물을 해주겠다고 하는 겁니다. 저는 너무 큰 감동을 받고 기분이 흐뭇해져서 돈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다시 얻었으니 잔치를 베풀자고 했습니다.
그 도둑님의 양심을 자극한 선한 마음의 그 사람이 지금 두 아들을 양육하느라 매일 애쓰고 있는 아내입니다. 단지 잃어버린 돈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믿음을 선물로 준 사랑의 장기기증이 정말로 사람의 양심을 일깨워 준 실화에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장기기증 서약하셨나요?
부끄럽지만, 저도 아직 못했는데 곧 하려고 합니다.
세상에 참 희한한 일 다 있다고 하지 말고, 선한 마음은 그 어떤 사람도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겠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실천하라는 교훈은 모든 사람의 양심을 움직이는 힘인 것 같습니다.
이제 두 아이를 둔 결혼 13년차, 아들 둘을 키우면 성품이 난폭해진다는데 고운 성품으로 잘 키워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