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중의 인생에 따르는 서프라이즈
때는 2014년 7월이었다.
디바 중의 디바 인순이 님이 MBC FM <여성시대> 스페셜 MC로 참여하고 계셨다.
나는 여성시대 사연 게시판에 들어가 인순이 선생님과의 고마운 인연을 글로 남겼다.
제목: 인순이 님께 꼭 드리고 싶은 사연
저는 <어머니는 소풍 중>이란 책을 쓴 에세이 작가입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인 1997년 겨울 어머님이 일하시던 동대문 광장시장에서 갑자기 뇌출혈로 움직이지 못하시는 중환자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18년째 식물인간 상태의 어머니를 돌보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사연만으로 인순이 님이 저를 기억해 주실 것 같아요.
제가 서른다섯 총각 때인 2004년 11월 초에 어느 아침 방송을 통해 인순이 님 어머니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희 어머니와 같은 와상환자의 모습으로 중환자실에 계신 모습을요. 연예인 홈페이지 찾아 글을 남기지 않는 저는, 참 이상하게 마음이 끌려 인순이 님 공식 홈페이지에 위로의 글을 남겼습니다.
제 글을 보실까, 하면서요.
바로 다음 날 아침 제 개인 홈페이지 방명록에 어떤 분이 글을 남겨 주셨습니다.
"김인순"이라는 분이었죠.
저는 이 김인순 님이 최고의 가창력 가수 인순이 님인 줄 전혀 모르고 글을 열어봤습니다.
이렇게 적혀 있었죠.
"저는 노래하는 인순이예요. 제 홈피에 글을 남기셨죠?
저, 사실은 미리 알고 있었어요.
7월 달력에 메모해 뒀었어요.
참, 대단하시다고 생각해요.
울 엄마도 의식 없이 누워계시는데,
잘해 드려야지 하면서도 쉽지 않던데...
의식 없는 것 같은데 내 말소리를 들으실 수 있을까요?
아직 여기 계실까요? 아니면 쓰러지신 날 가신 걸까요?
의사들은 더 이상 할 것이 없다 하고, 우린 자그마한 움직임에도 감사하고...
엄마가 뭘 생각하는지, 할 말이 분명 있을 것 같은데...
답답하고, 가끔은 조급해지기도 하네요.
담에 또 들를게요"
저는 다음의 내용으로 답글을 올렸습니다.
"안녕하세요? 공인인 유명 가수를 이렇게 글로 가까이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 연예인 홈페이지 찾아가거나 하진 않는데,
어제 아침 방송 보고 인순이 님 어머님 편찮으신 현실의 무게감이 그대로 전해져서,
방송에서 아픈 사연이 비중 있게 나오는 동안 계속 여운이 남아 마음을 울렸습니다.
인순이 님 공식 홈페이지를 검색해서 글 남겨두었는데,
여기 제 홈페이지에 직접 와 주셔서 반갑고요.
우리 엄마도 무대에서의 인순이 선생님 열창하시는 모습 많이 좋아하셨어요.
지난 7월 말에 제 사연이 방송을 탔을 때,
(2004년 여름 나는 KBS <아침마당> 생방송에 25분가량 출연했었다.)
그때 이미 아시고 메모까지 해두셨다니,
요즘 힘든 제 마음에 적잖은 위로가 되네요.
의사 선생님이 의식이 없다고 한 것은 의사소통이 안 되고
자력으로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전신마비의 상태를 말하죠.
청력은 마지막까지 남아 계시니 자주 많은 얘기를 들려드리는 게 중요해요.
물론 어머님이 여기 계신 것이 분명하고요.
말씀은 못 하시지만, 갓 태어난 아픈 딸과 같은 모습입니다.
인순이 선생님 어머님 연세가 많으셔서 자그마한 움직임을 잘 살펴야 한답니다.
눈을 뜨고 계실 때 오늘 날짜, 시간, 있었던 일 등 꼭 말씀드리세요.
곁에서 면회하시는 친구 분들께도 어머니 손잡고 수다를 많이 떨어달라고 요청하시고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몰라도, 무얼 원하시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매일 기도하고 염려하는 그 사랑으로요.
만일 장기적으로 변화 없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집으로 모시고 오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 합니다.
가정간호사 제도와 연결하고, 집에서 깨끗하게 돌봐드리면 더 안정적으로 지내실 수 있어요."
시간이 얼마간 흘러 인순이 님 어머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 가슴이 다 떨렸습니다.
그리고 2년쯤 흐른 2006년 봄, 저는 오랜만에 인순이 선생님께 메일을 드렸습니다.
"선생님, 잘 지내시죠? 저... 결혼합니다."
그냥 인사치레 드린 메일에 인순이 선생님은 바로 답장을 주셨습니다.
미국에서 스케줄 중이라 바쁘신데도 불구하고요.
황교진 씨, 결혼을 축하합니다. 결혼 선물로 인순이의 축가를 드릴게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계속 어머니 병간호하며 수입의 대부분은 병간호비로 쓰는,
아무 내세울 것 없는 저를 남편으로 선택해 준 아내에게 큰소리쳤습니다.
"당신, 나랑 결혼하길 정말 잘했지? 자그마치 인순이 님 축가를 우리가 받을 수 있게 됐어!
나 만나길 정말 잘했지, 잘했지?"
결혼식 날, TV 브라운관에서만 뵙던 인순이 님이 피아니스트 분과 같이 식장에 와 주셨습니다.
아무 대가 없이 가난한 부부에게 축가를 선물해 주시려고요.
주례사 후 인순이 님이 마이크를 잡으시자 하객들이 술렁이다가 잠잠해졌습니다.
노래 시작하기 전에 좌중을 압도하는 멘트를 해주셨습니다.
"교진 씨와 제가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양쪽 어머님이 연결시켜 준 축복입니다.
주례하신 목사님은 부부가 서로 섬기고 이해하라고 하셨지만
저는 신부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남편은 3일 내로 휘어잡아야 해요."
저는 인순이 님 나오실 때 너무 영광스러워 울컥했다가 이 멘트에 웃음이 퍼졌습니다.
송창식의 <우리는>을 축가에 맞게 개사해서 불러주셨습니다.
그처럼 큰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나중에 MBC <나는 가수다>에 나오실 때 얼마나 기뻤는지요.
멋진 가수, 마음이 따뜻한 가수 인순이 님, 늘 응원합니다.
따님도 예쁘게 자라고 있는 소식 잘 보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제가 있는 이 자리에서 늘 힘내어 살겠습니다.
감사하단 인사 다시 한 번 올립니다.
지금 두 아들 영승, 예승이의 아빠가 된 황교진 올림.
진짜 서프라이즈
여성시대 시청자 게시판에 위의 글을 올린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MBC FM 여성시대 작가에게 전화를 받았다.
"올려주신 사연 감사합니다.
다음 주 목요일에 <여성시대> DJ인 강석우 씨가 생방송으로 황교진 씨 사연을 읽어줄 것입니다.
그때 인순이 선생님과도 함께 전화 통화로 연결될 거예요."
그러니까 사연 소개 후 전화 연결 목소리로 인순이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인순이 선생님은 감사하게도 나를 잘 기억하고 계셨다.
강석우 씨가 결혼식장이 어디냐고 물어보셔서 오륜교회였다고 하니, 잘 아는 교회라는 멘트를 해주셨다.
휴가 중이라 인순이 선생님이 자리를 채웠다고 복귀하신 양희은 선생님도 사연에 감동하며 축복해 주셨다.
내 청소년기의 꿈이 MBC FM <별이 빛나는 밤에> 별밤지기 이문세처럼 DJ가 되는 것이었는데
별밤 DJ도 꿈꿔볼까? 결혼도 축가도 이렇게 꿈이 기대 이상으로 이뤄지니 말이다.
라디오 작가나 PD 님들 만나면 백 퍼센트 듣는 말 "목소리 참 좋으시네요!"인데...
난 라디오 작가와 DJ로 살고 싶...
그냥 하던 대로 좋은 책 열심히 만들고 에세이 쓰며 살겠습니다.
방송 후 <여성시대>에서 백화점 의류상품권을 선물로 보내 주었다.
아내에게 선물했다. 다 아내 덕분이니까!
여성복 상품권이었다.^^
201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