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으로 산다는 것

우리는 별로 행복하지 않다

by 황교진


어제 저녁에 한 형제가 회사에 찾아왔다.
여기서 형제는 크리스천 지우의 개념이라기보다 같은 출판인으로서 형제라 칭하련다. 그와는 3년전 내가 진행한 북콘서트에 참석해서 인사를 나눈 뒤로 처음 대면했다. 힘든 출판계에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편집장으로 일하는 형제와 회사 부근에서 저녁을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나를 찾아온 이유는 진로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마이크임팩트가 어떤 회사인지 내가 여기서 하는 일은 무엇인지, 어떻게 결이 다른 콘텐츠 회사로 옮길 수 있었는지 등을 물어서 설명해 주다가 식사를 마쳤다. 우리 스퀘어 스터디카페에서 커피를 사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SK의 행사 때문에 대관이 돼 있어 랩실을 예약하지 못하는 바람에 미생의 등장인물처럼 옥상에 갔다. 폭염에 달궈져 있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 시원한 저녁 바람이 살랑이고 있어 얘기 나누기 좋았다.

형제는 창업에 대해 의견을 물어왔다. 지금 일하는 출판사는 정시 출퇴근하며 먹고살 수는 있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않고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아, 몇 년 동안 내가 겪은 일들이 그대로 오버랩됐다. 여러 출판사를 경험해 보다가 한계와 부당함을 접하고 꿈을 펼쳐 보려고 창업에 뛰어들었다가 돌파구를 얻지 못한 채 절박했던 순간 등.

난 형제에게 선뜻 출판 창업을 조언하지 못하고 많은 어려움들에 대해서만 나열했다. 최소 생활비 확보가 되어 있지 않으면 뛰어들지 말고 현재 회사에서 견딜 수 없으면 이직이 낫다고...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잘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책임은 없다고...

옥상 건너편 종각타워에 붉은 노을이 아름답게 걸리다가 천천히 어둠에 지워져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런 아름다운 평안이 출판인으로서 내 가슴에 언제 걸렸는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얼음이 다 녹은 아이스커피를 홀짝이며 답이 잘 보이지 않는 출판의 미래에 책이라는 형태와 가치는 어떻게 변화해 갈지 조근조근 나누었다. 사실 용감하고 과감하게 해보라고 말할 수 없는 선배의 심정인 난 답답한 슬픔을 겨우 숨겨야 했다.

관리인이 옥상 공간 잠글 때가 됐다고 하실 때까지 현실의 답답함, 인생의 오후에서 얻고 싶은 우리들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다. 열심히 책 만들고 세상에 없는 주제를 펼쳐 보이고 싶은 편집기획자들 참 어렵다. 부디 오너 리스크라도 적어야 하는데 매출의 문제와 오너십의 문제가 공존해 편집자는 숨이 막힌다. 편집자만의 스피릿(곤조), 사명감으로 창업을 고민해도 허술한 시스템 안에 있는 것이 차라리 나은 결과를 접하기 십상이다.

용기와 기대를 갖자고 하면서 같이 웃는 게 우리의 위로였다. 좋은 날이 올까? 그러리라고 믿고 하루하루 살아야지. 책을 만드는 일은 얼마나 멋진가! 그런데 우리 어깨와 마음은 참 무겁다. 그래서 더 전우와 같은 형제의 우애가 전달된다.

퇴근하고 잠든 아내와 아이들 얼굴 보고 올림픽 중계뿐인 TV 앞에서 잠시 쉬는 늦은 밤에 다른 출판 형제가 페북 메시지로 신간 기획안을 보내주며 의견을 묻는다. 저자와 기획 내용 모두 탁월해 긍정적인 답변과 격려를 보냈다. 낮밤없이 우리 형제들은 이렇게 책 생각하며 산다. 열심히 설계하고 준공해도 얼마 분양되지 않는 아파트를 건축하고 있다. 적은 수의 독자라도 이 책 공간에서 안식한다면 보람 있다는 관념적 기대에 현실의 보상은 언제쯤 따라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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