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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Aug 18. 2018

[몽상] Au Revoir, 언니네 이발관 (1)

자그마치 2008년부터 10년이나 들었다. 언니네 이발관 말이다. 그리고 들은 지 딱 10년 째 되던 해에 그들은 해체했다. 마치 어쩔 수 없는 척력에 지쳐 나가떨어지듯이.

언니네 이발관. 왼쪽부터 이석원(보컬), 이능룡(기타), 전대정(드럼).


사실 나는 그들의 광팬이었다. 내 인터넷 즐겨찾기에는 언니네이발관 홈페이지(shakeyourbodymoveyourbody.com)가 추가된 지 오래되었고 거기에 종종 올라오는 이석원의 일기를 읽는 것은 나의 오랜 습관이었다. 때로는 단독 콘서트에서, 혹은 페스티벌에서, 같이 노래부르며 호흡하기도 했다. 올림픽공원 수변무대 노천극장에서 다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우비를 입고 춤추던 기억이 난다. 그들의 디스코그래피를 외웠고, 지금도 5집은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그 순서를 읊을 수 있다. 5집은 그들이 늘상 당부하였듯이, 반드시 가장 음질이 좋은 환경에서 들어야 한다는 것도.

그렇기에 그들이 해체하였다는 것은 그들의 역사가 이제 끝나버렸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내 역사의 일부 역시 영원히 과거에 머물게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떠날 수밖에 없음을 안다. 때문에 삶의 소중한 부분을 떠나보내며, 그들을 위한 헌사를 쓰고자 한다. 왜 그들의 음악이 특별한지, 그들은 20년간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그들은 왜 떠나야 하는지. 그리고 왜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음악을 듣고, 그들을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그들의 디스코그래피
*디스코그래피(discography): 작곡가별, 연주가별, 장르별 따위 특정한 목적 아래 그것에 관한 음반을 망라하고, 여러 가지 데이터를 수록한 목록.
쉽게 말하자면, 언니네 이발관은 '뻥'으로 시작한 밴드였다. 언니네 이발관은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인 이석원이 고등학교 시절 봤던 일본 성인영화의 제목이다. 그는 1994년의 어느날 라디오 방송에 나가 본인을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의 리더라고 소개했고, 스스로를 그렇게 믿는 지경에 이른다. 그 한 번의 '뻥'으로부터 언니네 이발관의 20년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

언니네 이발관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 앨범 커버.


1995년에 있었던 클럽 드럭에서의 데뷔 공연에서 언니네 이발관은 셋리스트를 모두 자작곡으로 채우게 된다. 이것은 한국 인디 밴드 역사상 거의 최초의 일인데, 당시 우리나라 밴드들의 경향은 카피곡을 연주하고 공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이들은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발매하고, 이 앨범은 한겨레신문에서 그해의 앨범 10선에 꼽히게 된다. 이때의 밴드 멤버는 이석원을 비롯해 정대욱, 유철상 등이 있었다.

1집 추천곡
<쥐는 너야>
"둘이 같은 나이에 다른 생각을 하고 둘이 같은 머리에 다른 가슴에. 시간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만남이란 다 그래." 언니네 이발관의 젊은 노래.
<생일 기분>
왠지 염세적이고 까칠한 스무 살의 생일 기분을 담았다. "난 정말 이런날 이런 기분 정말 싫어"라는 가사가 개인적으로는 참 이석원답다고 느껴진다. 스무 살 생일 아침을 이 노래로 시작한다면 정말 특별한 경험으로 남진 않을까.

2집 <후일담>

언니네 이발관 2집 <후일담> 앨범 커버.


노이즈가든의 멤버였던 이상문이 베이스로 합류한 2집. 그러나 1998년에 발매된 이 앨범에 대한 당시 평단과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고, 이를 계기로 밴드는 긴 휴식기에 들어가게 된다. 개인적으로 다른 앨범들에 비해선 덜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곡들이 꽤 많은 앨범이다.

2집 추천곡
<어제 만난 슈팅스타>
신나게 끝없이 달리고 싶을 때, 아주 긴 터널을 시속 200km/h로 달려나가고 싶을 때, 한없이 어린애이고 싶을 때, 기분을 정말 좋게 만들어줄 노래다.

3집 <꿈의 팝송>

언니네 이발관 3집 <꿈의 팝송> 앨범 커버.

이석원이 아픈 강아지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시 멤버들을 꾸려 만든 3집. 이때 현재의 멤버 구성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후 언니네 이발관의 무수한 아름다운 곡들을 만들어낸 기타의 이능룡과 메탈을 연주했음에도 고운 팝터치가 인상적인 드럼의 전대정이 그들이다. 2002년 발매된 이 앨범은 인디 밴드 역사상 공전의 히트를 쳤고 언니네 이발관은 첫 콘서트를 무려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치르게 된다.

3집 추천곡
<2002년의 시간들>
할 일을 마치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거리를 걸으며" 듣기에 너무나 좋은, 정말 좋은 멜로디의 곡이다.
<언젠가 이발관>
"당신이 없는 길을 미쳤나요 내가 왜 홀로 그곳으로 가나요"
기타의 음색과 미성이 아름다운, 정말 따뜻한 노래.

4집 <순간을 믿어요>

언니네 이발관 4집 <순간을 믿어요> 앨범 커버.


2003년,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2집의 베이시스트"였던 이상문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석원의 더없이 소중한 친구였다고 한다. 2004년 여름, 언니네 이발관은 친구 이상문을 기리며 4집 <순간을 믿어요>를 발표했다. 그래서일까, '담담한 쓸쓸함'이 배어나오는 앨범이다. 나는 이때부터 언니네 이발관 음악을 사랑해 마지않게 되었다.

4집 추천곡
<꿈의 팝송>
3집에도 동명의 곡이 있는데, 두 곡의 온도차 혹은 감정의 낙차가 흥미롭다. 이 곡의 기타 솔로를 듣다 보면 수많은 감정들이 휘몰아쳐 밀려오는 것 같다. 언니네 이발관 공연에서 들으면 가장 벅차오르는 곡 중 하나였다.
<천국의 나날들>
"1993년 12월부터 2003년 8월 18일까지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이 바로 천국의 나날들이었어 이제는 태양이 되어 나를 비춰줘"
앨범의 마지막 곡이자 앨범의 주제일 곡이다.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언니네 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앨범 커버.


언니네 이발관의 스테디셀러.
평범하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어느 날, 스스로가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이석원의 자각으로부터 이 앨범은 시작되었다. 밴드의 완벽주의로 앨범은 다섯 차례의 연기 끝에 2008년 발매되었고, 2009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개인적으로는 평생 한 앨범만 들을 수 있다면 바로 선택할 정도로 아껴 마지않는 앨범이다.
<가장 보통의 존재>는 완벽하게 직조된 한 권의 연작 소설을 떠오르게 한다. 이 앨범을 들을 때 이석원이 부탁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순서대로 듣는 것이고, 또 하나는 최대한 좋은 음질의 환경에서 듣는 것이다. 그것은 앨범이 "1번곡부터 10번곡까지 순차적인 흐름을 갖는 한권의 책처럼 만들어졌"기 때문이며, 밴드가 "마음이 건조해지고 공허한 기분이 들수 있도록, 사운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들어본 결과, 정말 좋았다.

5집 추천곡: 전곡. 반드시 1번에서 10번까지 순서대로, 좋은 음질의 환경에서 들어보길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곡만 골라야 한다면...

<아름다운 것>

수백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노래가 있다. 그런 노래를 나는 클래식이라고 부르고 싶고, '아름다운 것'이 바로 클래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산들산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 인생을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감상할 수 있다면, 그 배경음악은 이 노래일 거라고.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 많은 세월 살아왔지만 아직도 부족하지 그래서 난 가네 나는 나의 길을 가 소나기 두렵지 않아 구름 위를 날아 어디든지 가 외로워도 웃음 지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싶네 그게 나의 길.

그리고, 6집

언니네 이발관 6집 <홀로 있는 사람들> 앨범 커버.

다음 편에 계속.
*내용 참고: 언니네 이발관 홈페이지(http://www.shakeyourbodymoveyourbod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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