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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Dec 31. 2017

일기55_소진

올해라는 이름의 시간





마지막 날 이라고 해서 특별하지 않기를 바랐다. 매년 맞는 이 시기를 마주하는 내 마음이 늘 그랬다. 그러나 더 이상 넘어갈 페이지가 없는 달력을 보고있자니 올해라는 이름으로 주어진 시간이 완전하게 소진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무겁게 와 닿는다.


나를 간단명료하게 표현하기 급급한 시절이 있었다. 짧은 단어 몇가지로 스스로를 정의짓고나면 누구보다 시크하고 군더더기없는 투명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해를 거듭할 수록 나를 표현하는 단어를 찾는 일이 힘들어진다. A라고 하기엔 B의 기질도 있고 때때로 C적인 면도 있는 나는 더 이상 간결하지도 명료하지도 않은 애매한 사람이다.






한 해가 무섭게 지나간다. 어떤해는 이룬게 없어서 또 어떤해는 이루어낸게 많아서 저무는 속도는 매번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정해진 이별과 새로운 만남의 겨울은 내게 언제나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몸을 잔뜩 웅크린 나는 숨죽여 봄을 기다릴 뿐이다.


봄이 오면 새로운 해를 기쁘게 맞이할 것이다. 차갑게 들떠있던 공기는 차분해지고 따뜻한 바람 사이로 설램이 불어오면 그제야 웅크린 몸을 펼 수 있겠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끝도 시작도 강요받지 않기를. 나는 아직 보낼 준비도 맞이할 준비도 되어있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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