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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Jul 31. 2018

일기63_설렘이 지난 자리에

7월 31일







우리는 여름의 정중앙을 관통하고 있어. 이번 여름은 봄 언저리에 만난 우리에게 오롯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보내는 첫 계절 인 셈이지. 가장 뜨겁게 달아오를 8월 첫째 주를 코앞에 둔 마음을 나는 이렇게 전해.


'익숙함'이라는 게 우리와 가장 어울리는 단어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처음과 달리, 모든 게 새롭고 낯설고 설레는 날들이었어. 이제야 서서히 내가 당신의 일상에, 당신이 내 일상에 스며들어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 같아. 최근, 열두시가 넘도록 전화를 끊지 못하고 이런저런 옛날이야기를 하던 날이 떠올라 문득 새삼스럽다는 말을 당신에게 했었어. 두 손으로 얼굴을 받치고 침대에 엎드려 스피커폰 너머로 들려오는 애정 어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밤. 간간히 대화가 멈칫하는 순간마다 이제 그만 끊자 하려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어간 이야기에 하염없는 시간이 흘렀어. 지금 돌아보면, 초저녁부터 잠에 취해 비몽사몽하는 우리에게 기적 같은 시간이 아닐 수 없었지.





이제 내 손을 감싸는 당신의 손에 처음의 떨림은 없어. 포옹만으로도 터질 것 같이 뛰던 그날의 심장소리도 잠잠해졌지. 눈 앞에 선 나를 일초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분주하게 따라다니던 눈동자도 자주 졸음에 감겨. 처음 허리에 두르던 팔 안으로 어색하게 느껴지던 부피감이 어느덧 허공에서도 그려질만큼 익숙해졌어. 나는 처음의 떨림이 사라진 당신의 손과 심장소리에 덩달아 마음이 잔잔하게 가라앉아. 날 향하던 눈을 감고 잠든 당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느릿한 행복으로 채워지곤 해. 우리는 그렇게 떨리는 봄과 뜨거운 여름을 지나 조용하게 가을을 향해 걷고있어.


근래 들어 며칠, 당신은 이런 익숙함을 어떻게 느낄까 하는 걱정이 뭉게뭉게 피어올랐어. 설렘이 사라진 그 자리는 텅 비어버렸을까, 하늘 높이 치솟던 기대감이 채워지지 못한 자리는 실망으로 가득할까 하는 두려움에 마음이 조금 흐릿해졌지. 그런데, 지난 주말 당신 두 눈을 보고 알았어. 떨리고 간절해야만 사랑은 아니라는 걸. 나는 소리 내어 묻지 않았고 당신도 소리 내서 대답한 적 없지만, 나는 내 질문의 답을 얻은 것 같아. 우리는 가을에도 사랑할 거라는 걸. 그저 배경음악이 조금 달라졌을 뿐, 당신은 다른 리듬으로 여전히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는 걸.


당신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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