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의 힘은 때로는 대단하다
사고가 일어난 원인이 나라고 생각했다.
책임이 내게 있다고 생각하니 나 때문에 하늘나라로 갔다고 생각했다.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잘 살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내가 겪고 있는 모든 죄책감을 상담선생님에게 털어놓았다.
상담전화를 할 때마다 죄책감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보며 상담 선생님은 내게 이런 제안을 했다.
”오늘 제가 숙제를 줄 거예요, 오늘은 아이비가 처한 상황과 반대로 생각해 볼 거예요.
만약에 이 사고로 케니가 생존했고 아이비씨가 하늘나라로 가게 됐다고 가정해 봐요.
아이비를 잃은 케니의 입장에서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
케니가 하늘나라로 간 아이비를 어떻게 떠올리고 어떤 마음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상상을 해보는 거예요."
내가 관속에 누워있고 케니가 옆에서 울고 있는 모습이 그려지니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케니를 잃고 지금까지 말해왔던 것을 실제로 상상해 보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했다.
펑펑 울고 있는 케니의 모습이 먼저 그려졌다.
나보다 눈물이 더 많은 남자다.
서럽게 울고 있는 케니 옆에 우리 가족도 울고 있다.
케니도 내 사진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내게 말을 끊임없이 걸 것이다.
토론토 모든 곳이 나와 함께 한 추억이 묻어나서 나갔을 때 내 생각이 너무 많이 날까 봐 집에서 나가지 않을 것이다.
너무 슬플 때는 현실을 잊기 위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케니의 취미인 게임을 할 것이다.
사촌들도 슬픈 케니를 위로하려고 케니와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대가족을 가진 케니에게 사촌들과 친척들이 매일 방문해 케니와 같이 기도를 할 것이다.
아마 케니는 몇 달 동안 밥도 잘 안 먹고 사촌들과 게임을 하면서 고통을 잊으려고 하지 않을까?
자신이 차가 오는 것을 잘 못 보고 도로에 진입해 사고가 난 것이어서 많은 자책을 하고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런 케니를 보면서 나는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 죄책감을 가지지 말고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살라고 말해주고 싶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자연, 운동, 야외활동을 했을 때 내 생각이 날 까봐 집에서만 계속 있을 것이다.
초콜릿 시리얼, 각종 야채들, 해산물을 먹을 때면 내가 먹는 모습이 생각나 먹지 못하거나 눈물로 삼킬 것이다.
나를 상실한 허망함과 허무함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임을 할 것이다.
1년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고 너무 게임만 해서 케니 어머니께서 아들을 걱정하실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우연히 만나기라도 하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눈물을 흘릴 것이다.
나의 웃는 모습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계속 떠올라 보고 싶어 눈시울이 붉어질 것이다.
나는 괴로워하는 케니를 보면서 그가 나를 마음속에 간직한 채 앞으로 한 발자국씩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내가 현재 괴로워하는 것처럼 그도 고통스러워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9년 동안 내 곁에서 항상 행복하게 해 줘서 감사했고, 내가 타국에서 학교 다니고 폭식증을 겪을 때도 항상 내게 최선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해줘서 감사했다고 말해주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사고가 일어난 것은 케니의 탓이 아니라고 꼭 말할 것이다.
"케니 너의 잘못이 아니야. 사고가 일어날 거라고 우리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고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어.
우리 차를 박은 그 미친놈이 법을 어기고 스피드 하게 달린 잘못이 큰 거야.
우리는 운이 안 좋게도 그 타이밍에 거기에 있었을 뿐이야.
절대 너의 잘못이 아니니 죄책감도 갖지 말고 자책도 하지 마.
시간이 걸리겠지만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사람들을 긍정적이고 웃음을 지닐 수 있게 하는 사람으로 잘 살았으면 좋겠어.
너의 항상 밝고 긍정적인 모습에 내가 힘을 얻었고 자신감도 길렀으니까.
아이를 좋아하는 너한테 아이를 선물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너의 진가를 알아봐 주고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여성분을 만나 다시 사랑에 빠져 너 닮은 아이를 가지는 경험을 꼭 했으면 좋겠어.
물론 지금 당장은 질투가 나지만 내가 너의 옆에 가지 못한다고 너의 행복을 내가 막을 수 없는 거 잘 알아.
나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응원해."라고 말할 것이다.
여기까지 쓰면서 나는 깨달았다.
케니도 나처럼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혼자 살아남은 나를 원망하지 않고 내가 앞으로 남은 삶을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을까?
자신이 지금 내 곁에 올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내가 인생을 살면서 해보고 싶었던 경험들을 마음껏 누리고 행복한 매일을 살다가 우리가 다시 만나기를 누구보다 바라지 않을까?
케니는 자신이 내 옆에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할 것인데 내가 우울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으면 그가 더 슬퍼하지 않을까?
내가 몸이 아프고 힘들어하면 그가 하늘나라에서 마음이 편하지 않은 채로 나를 지켜보며 힘들어하지 않을까?
내가 지상에서 어떻게 하면 케니의 마음을 편하고 기쁘게 해 줄 수 있을지 생각하고 고민했다.
케니처럼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는 항상 유쾌했고, 유머를 항상 가졌고,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줬다.
선량했고,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 알았고, 차분했고, 화가 없었고 항상 미소를 지었다.
그처럼 살면서 나답게 살고 싶었다.
여기까지 적으면서 케니도 나와 똑같은 마음을 가졌겠구나라고 확신했다.
나는 그를 이 세상에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니까.
고통을 잊기 위해 각자 저마다 취하는 방식은 다르다.
어떤 방법으로 슬픔을 대처해야 하는 법칙 따위는 없다.
전보다 사고 속도가 느려진 뇌로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글자는 읽는데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가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과정을 글로 풀어내는 것은 도전이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 이유는 케니에 대한 마음을 끊임없이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모르니까. 말이 되던 안되던 끊임없이 표현하면 조각조각 흩어져있던 말들이 한 문장이 되어 케니에게 마음속 깊이 전달될 것이라고 믿는다.
내 곁에 있을 때나 없어도 내가 항상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 줘서 감사해.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당신처럼 살 수 있도록 내 옆에서 안전하게 나를 이끌어주고 보살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