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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비리그 Oct 27. 2024

무감각했던 한국의 여정

애도를 하던 중 로봇이 되다

내게 큰 사고가 일어났지만 시간은 야속하게 흘렀다.

오지 않을 것 같은 7월 말이 왔다.

엄마의 비자가 만료가 돼서 나와 엄마는 한국에 가야 했다.

집을 팔고 산다고 고생했던 내게 휴식을 주고 싶었다.

한국에서만큼은 사고를 잊고 케니의 죽음의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고 편하게 잠을 못 잤던 토론토의 생활을 잊고 싶었다.

공간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오랜만에 슬픔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케니랑 있을 때도 나 혼자 한국을 갔다 온 적이 있어서 그런지 케니가 옆에 없다는 것이 크게 허전하지 않았다.

고향에 돌아간다고 들뜬 엄마를 보고 나도 기분이 한결 괜찮아졌다.

보고 싶었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친척, 친구들을 오랜만에 볼 생각을 하니 약간의 기대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한편으로는 케니를 한국에 한 번이라도 더 데려왔었어야 하는데 하는 씁쓸하고 슬픈 마음도 있었다.


'하느님 안전하게 저와 엄마를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큰일을 당하고 회복한다고 수고했으니, 집문제를 해결한다고 고생했으니 이번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쉬고 올 수 있도록 허용해 주세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 앞에서 나 때문에 무거운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그들을 만나는데 나 때문에 그들까지 우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큰 사고를 당한 것을 아는 친구들은 나를 만나고 솔직히 당황했을 것이다.

내가 다쳐서 거동이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서 우는 나를 어떻게 달래고 위로의 말을 건넬지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 내게 암시했던 말들 때문인지 놀랍게도 눈물이 흐르지 않았고 괜찮았다.

나 스스로도 놀랬다.

케니랑 함께했던 장소가 아니어서 그의 기억이 생생하지 않아서 그런가,

친구들과 케니와 만났던 적이 없어서 그런가,

만나는 장소가 가본 적이 없던 새로운 장소여서 그런가,

케니는 토론토에 있고 나 혼자 한국에 온 게 익숙해서 그런가 괜찮았다.


내 뇌가 나의 암시를 잘 받아들이고 뇌에서 슬픔이 작동하는 것을 차단시켰는지 토론토에서는 그렇게 흐르던 눈물이었는데 눈물 수도꼭지가 잠겼다.

한국이 주는 힘이 컸다. 사고의 기억이 거의 희미해졌다.

문득 토론토를 정리하고 한국에 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토론토로 돌아가면 케니 생각이 많이 나고 슬프고 괴로울 텐데 한국에 와서 새 출발을 해야 하나 싶었다.

사고 얘기를 하면서 슬퍼하고 울 거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은 울지 않는 나를 보고 강하다고 말했다.

토론토에서 한없이 나약하고 무기력했던 나였는데 이들 앞에서는 강한 사람이 되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무감각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슬픔을 느낄 수가 없었고 크게 기쁘지도 않았다. 

무더운 여름이어서 그랬는지 덥기만 더웠다.

9년 만에 느껴보는 한국의 더위여서 더위를 먹었던 것 같았다.

나는 감각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친척들을 봐도 그토록 보고 싶었던 할머니 할아버지를 봐도 무감각이었다.

확실히 뭔가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나는 좀 더 자극을 줘서 내가 감각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야 했다.


감각이 살아있는지 확인할 차에 치질기가 있던 나는 치질 수술을 하기로 했다.

무섭지도 않았다.

사고 후 골반 수술을 해서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었는데 치질수술쯤이야라고 생각했다.

그것보다도 나의 감각을 찾고 싶었다.

수면 마취를 하고 수술이 끝났다.

놀라울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다.


'이게 뭐지? 내가 로봇이 됐나? 심장이 얼었나? 이상하다.'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지만 확실히 이상했다.

토론토에 있었을 때 눈물을 다 쏟아내서 더 이상 쏟아낼 눈물이 없는지 한국에서 한 번도 울지 않았다.

토론토에서는 케니 얘기만 나오면 울컥했는데 감정이 메마른 게 틀림없다.


'그럼 나야 좋지 안 그래도 혼자 토론토로 돌아가야 하는데 가서 혼자 잘 지낼 수 있겠다.

그래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일단 먹고 싶은 거 먹고 잘 지내보자.'


불편했던 몸도 크게 아픈 것을 느끼지 못하고 하루하루 지냈다.

지금 까지 살면서 이렇게 무감각했던 때가 있었는가 싶었다.

사고 얘기를 꺼낼 때면 울컥한 마음이 앞서 눈물을 흘렸던 나인데 친구들을 만나서 사고 얘기를 할 때는 내 얘기가 아닌 것처럼 건조하게 말하는 나를 보고 스스로 놀랬다.

뇌가 마치 나는 사고 난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감정이 없어져서 사이코 패스가 돼 가는 걸까?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의 삶에 어느새 물들어 내 마음도 쳇바퀴가 도는 공장처럼 바쁘게 돌아갔다.

생각보다 한 달이 금방 지나갔다.

토론토로 갈 날이 다가왔다.

이제 정말 혼자가 되어서 토론토로 가야 했다.

가서 혼자서 이사를 해야 하고 짐정리도 해야 했다.

토론토에서는 수만 가지의 걱정으로 뒤덮여서 '케니 없이 혼자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매일 했었는데 마음이 무감각해져 로봇이 된 나는 가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잘 된 것일 수도 있다.

로봇처럼 살면은 앞으로 케니의 사랑이 없어도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감정이 없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케니가 있을 때만 존재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한국에 있으면서 큰 착각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국에 가면 나는 누구의 사촌누나고, 친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토론토에서 살아보고 힘들면 한국에 돌아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서울 정도로 무덤덤해져서 다행이었다.

내 걱정에 눈물을 흘리시는 부모님과 달리 나는 무덤덤한 마음으로 인사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어떤 일들이 생길지 모른 채 다시 케니가 있는 토론토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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