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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비리그 Oct 27. 2024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내 곁에 아무도 없다고 느껴질 때

한국의 여정을 마치고 토론토에 도착했다.

토론토 공항에 도착하면 케니가 항상 마중 나왔는 게 이번엔 처음으로 그가 없을거라는 생각에 울컥했다.

내 애칭인 '멍키'를 부면서 토론토에 도착한 나를 항상 따뜻하게 안아줬었다.

메마른 줄 알았던 내 감정이 다시 롤러코스터를 탔다.

공간이 주는 힘은 충격적으로 강력했다.

케니와 함께했던 모든 것이 몸으로 느껴질 때면 나의 마음은 울컥했다.

한국에서는 케니와 했던 기억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괜찮았던 것 같았다.

토론토에 도착하자 돌덩이었던 내 감정은 부서져 녹고 다시 말캉말캉해져 곧 터질 것만 같았다.


케니가 아닌 아빠 친구분께서 나를 마중 나오셨고 나는 혼자 케니와 나와 살았던 집으로 가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야기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시차 적응도 되지 않아 어떻게 밤을 지새울지에 대한 걱정으로 안절부절했다.

어느새 집에 도착했고 아빠 친구분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 라는 말을 남긴채 떠나셨다.

고요한 적막이 흐르자 강철처럼 단단했던 멘털이 유리처럼 와장창 깨졌다.

그렇게 걱정했던 혼자가 되었다.

사고 후 6개월 동안 나를 지켜줬던 엄마와의 시간들이 떠올라 더 슬펐다.

엄마와 통화를 하고 케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밤을 새웠다.


다행히 친구가 혼자인 나를 위해 집에 초대를 해줘서 며칠 동안은 슬픔을 그 친구와 나눌 수 있었다. 

며칠 후 새 공간으로 이사를 했어야 해서 이사하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 금방 이사 날이 왔다.

이사를 도와주는 업체가 한국분이어서 다행히 수월하게 말이 통했고 일도 잘하셨다.

새 집에 들어섰는데 순간 케니가 진짜 내 곁에 없구나라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이사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멍했었다.

다행히 케니 친구가 와서 도와줬다.

짐을 다 옮기고 나는 정리할 힘이 없었다.

이사를 실제로 하고 나니 케니의 죽음을 받아들인 것 같아 가슴이 먹먹했고 새로운 환경에 낯설었고 외로웠다.

친구들에게 이사 잘했냐고 연락이 왔지만 답장할 힘조차 없었다.

사고에 대한 기억으로 토론토에서 이렇게 힘들 바에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머리가 복잡했다.

하지만 케니로부터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 가게 되면 케니가 나를 못 찾을 것 같았다.

케니가 내게 실망할 것 같았다.

짐정리 잘 돼 가냐는 물음이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딸 걱정에 매일 전화 오는 부모님한테는 괜찮다고 짐정리하고 있다고 거짓말한 채 일주일이 지났다.

먼지 구덩이에 머리가 아파 집정리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그래 서둘지 말자 내가 할 수 있을 때 조금씩 하는 거야.

이제 나는 혼자니까 나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어.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거야.

혼자인 삶이 익숙해지겠지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전에 엄마와 함께 있었을 때 느꼈던 감정이랑은 완전히 달랐다.

지금은 혼자라는 생각에, 아무도 내 곁에 없다는 생각에 더 슬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누구도 나를 신경 써주지 않는 것 같았다.

나를 누구보다 궁금해하고 관심 가져줬던 케니가 더 그리웠다.


하루는 공허해서 맛있는 음식으로 이 공허함을 채우고 싶었다.

초밥을 주문했고 바로 앞에 있는 마트에서 좋아하는 빵과 과자를 잔뜩 사 왔다.

좋아하는 TV프로를 틀어놓고 먹기 시작했다.

배가 불렀지만 음식을 공허한 마음에 쑤셔 넣었다. 

나는 다시 공허해지지 않으려고 채워 넣었다.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넣을 공간이 없는데도 먹고 싶었다.

갑자기 아차 싶었다.

폭식증을 겪을 때 했던 행동들을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어렵게 고쳤던 폭식증인데 다시 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절망감을 느꼈다.

폭식증 때문에 케니한테 짜증을 내고 상처를 줬던 과거가 떠올랐다.

케니한테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었는데 나는 다시 케니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이렇게 다시 폭식하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폭식증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 스스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정신 차려, 폭식증 때문에 케니랑 얼마나 고생했었는데, 그 당시에 케니한테 상처 주는 말을 많이 한 거 기억 안 나? 또 반복하고 싶어.?'

나한테 채찍질을 하려다가 태도를 바꿨다.

케니가 나한테 했던 것처럼 나 자신을 보듬어줬다.


'마음이 많이 공허하구나. 내가 너의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해, 나는 너를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해. 

항상 있었던 케니가 곁에 없어 힘든 게 당연한 거야. 하지만 너한테는 친구들도 있어. 

친구들은 지금 각자 상황들 때문에 바빠서 네가 말하지 않으면 너의 상태, 감정을 모를 거야.

네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친구들한테 말하는 건 어때?

부탁하는 게 힘들더라도 용기를 내보는 거야.'


나는 용기를 냈다.


육아하느라, 일하느라 바빴던 친구들은 나의 용기에 시간을 내서 내게 왔다. 

감사했다.

그래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서 눈물을 나누고 얘기하다 보면은 공허함이 사랑으로 조금씩 채워질 거야.


덕분에 새로운 인연도 만났다.

재활 병원에서 만났던 간호사 언니였다.

언니는 마음이 따뜻했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을 잘해줘서 나의 마음의 일부가 채워졌다.


항상 케니와 시간을 보내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친구들도 한 명씩 만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따뜻하게 나를 맞아줬고 내 얘기를 잘 들어줬다.

그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들과 헤어져 혼자 있을 때는 케니 생각이 여전히 가득했지만 폭식을 더 이상 하지 않을 정도의 허전함은 채워지고 있었다.


케니가 사람들한테 항상 배려, 선함, 긍정, 웃음, 유머를 지니고 사람을 대했던 것이 생각나 나도 그처럼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 케니가 이승에서 못하고 간 삶의 태도를 취하고 나답게 살아보는 거야. 

케니가 하늘나라에서 나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하나하나씩 천천히 해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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