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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비리그 Oct 27. 2024

모든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

우리 모두는 예비 사별자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생각에 케니의 목숨이 너무 아까웠다.

앞으로 같이 함께할 날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큰 착각이었다.

같이 했을 수많은 경험을 하지 못하고 간 케니가 안타까워서 나는 어딜 갈 때면 케니 사진을 챙기거나 케니가 준 반지를 꼭 끼고 갔다. 

케니와 함께 있음을 느끼고 싶어 그가 자주 입는 옷을 하루종일 입고 있곤 했다.

미니멀 라이프를 살았던 우리는 많은 옷이 없었다. 그래서 자주 같은 옷을 입을 날 들이 많았다.

몇 개 없는 케니의 옷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짠해졌고 케니와 나와 함께 했던 9년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래서 몇몇 옷들은 절대 남을 주거나 버릴 수가 없었다. 

그 옷을 입고 행동했던 그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기억났기 때문에 그 옷들을 정리한다는 것은 케니와의 기억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고인이 된 사람의 물건은 반드시 누군가가 정리해야 한다.

그의 물건을 정리하면은 그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하기 싫었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싶었다.

내게 7월 말이라는 데드라인이 있어서 그전에는 무조건 정리를 해야만 했다.

엄마는 내게 도와줄까라고 물어봤지만 엄마가 도와주는 건 싫었다.

힘들지만 케니 물품들과 옷들은 나 스스로 추억을 곱씹으면서 정리하고 싶었다.


케니는 평소에 사람들과 나누고 베푸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성품에 맞게 그의 물품들을 그의 사촌들에게 나눠주기로 했고 기부센터에 기부하기로 했다.


'그래 차라리 데드라인이 있는 것이 좋은 거야. 

아니었으면 나는 절대 정리할 수 없었을 거야.'


옷장을 열자마자 그 옷들을 입었던 그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눈물이 앞을 가려 도저히 옷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케니가 방문을 열고 나와 그 옷들을 입을 것 같아서 옷들을 부둥켜안고 눈물만 흘렸다.

혹시 그의 체취가 남아 있을까 해서 옷을 코에 대고 킁킁댔다.

내 옆에 있었을 때 더 좋은 옷들 많이 사줄걸..


이 티셔츠는 케니랑 나와 드라마를 볼 때 입던 것이어서 간직해야 하고, 

이 패딩은 나랑 겨울에 놀러 갈 때마다 입었던 소중한 추억을 가진 옷이니까 간직해야 하고,

이 바지는 케니가 회사 갈 때 자주 입던 것이어서 간직해야 하고,

이 스웨터는 나랑 데이트 갈 때 멋지게 입던 것이어서 가지고 가야 하고,

이 잠옷을 입고 나를 많이 안아주고 사랑하고 따스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어.  

매일 나와 잘 때 입던 것이어서 가져가야 해.


기쁜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서로의 엉덩이를 흔들며 깔깔 웃으며 춤을 췄던 기억이 스쳐가는 동시에 그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게임이 취미였던 그는 게임을 하면서 사촌들이랑 대화하던 장면도 머릿속에 스쳐갔다. 

'좀 더 그가 하는 게임을 좀 더 좋아해 주고 인정해 줄걸.'라는 후회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젖은 내 머리를 말려주고 일에 지쳐서 누워있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던 그의 손길이 그리웠다.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을 때면 서로 엄지를 치켜세우고 맛있다고 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많이 해줬을 텐데.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나한테 다가오는 그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케니와 나와 모든 추억이 묻은 옷을 남한테 주는 것이 나와 그의 추억을 망치는 것 같아 싫었다.

내 옷을 버리더라도 추억이 듬뿍 담겨있는 케니 옷을 간직하고 싶었다.

일단 지금은 간직하고 나중에 시간이 지났을 때 정리해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면 정리하자라고 결론을 내렸다.


케니가 소중히 다뤘던 게임기들, 그가 모았던 피규어들을 볼 때면 그가 애완동물 다루듯이 소중히 다루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순수했던 그의 모습을 잊고 싶지 않아 간직하기로 했다.


정리를 하다가 그가 9년 동안 내게 남긴 편지들을 발견했다.


"사랑하는 아이비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너를 만나서 나는 참 행운이야. 

너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정말 예뻤어.

카페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기특했어.

타국에서 와서 일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긍정적이고 밝은 너의 모습이 인상 깊었어.

카페에서 일하고 학교 가서 공부도 하고 지금은 어엿한 직장인으로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네가 자랑스럽고 대견해.

너랑 연애하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줘서 감사해. 

우리 미래를 위해 내가 더 열심히 해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게.

미래의 베이비 아이비와 너와 함께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행복하고 앞으로가 기대가 돼.

영원히 사랑해."


너의 영원한 드래건 케니가 아름다운 멍키에게

(케니는 88년생 용띠였고 나는 92년생 원숭이띠였다)


나는 읽다가 목을 놓고 엉엉 울었다.

이기적이었고 못된 나한테 배울 게 있고 내가 케니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존재였다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나는 해준 것이 거의 없고 많이 받았다고만 생각했는데.

아직 해준 것도 없는데.. 이제 우리의 플랜을 시작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늦었다.

미루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한테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기회가 될 때 같이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와 내가 5년 넘게 사용했던 침대, 테이블, TV, 소파, 의자 등 가구들을 사용할 때 케니가 내 옆에 있는 것 같아 이사할 새 보금자리에 가져가기로 했다.


나는 아직 그를 떠나보낼 준비가 안된 건 확실하다.


이런 이유로 이 물건은 안되고, 저런 이유로 저 물건은 내 옆에 있어야 했다.


나는 케니가 없는 삶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고 이 고통을 극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없이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괴로워도 고통스러워도 그와 함께 가고 싶었다.


그의 휴대폰, 카드, 보험을 해지할 때는 잔인했다.

본인만 해지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우리가 사고가 났고 그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내 입으로 그들에게 말해야 했다.

그의 죽음을 마음으로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입 밖으로 내뱉으니까 받아들인 것 같아 짜증이 났다.

수화기 너머에 있는 사람들은 내게 "당신이 그런 일을 겪어서 정말 유감입니다 미안해요."라고 말하는데 


"진심이세요? 저도 제가 이런 일을 겪고 있는 게 비현실적이에요. 지금 제가 그의 죽음을 말하고 인정하게 해 줘서 참 고맙네요. 얼른 해지해주시고 빨리 끊었으면 좋겠어요."

라는 말이 목구멍 밖으로 거의 나왔지만 이분들이 무슨 잘못이 있나 싶어서 가만히 있었다.


코로나 후로 케니는 재택근무를 했었다. 

재택근무 할 때는 사무실 데스크로 썼고 평소에는 게임할 때 사용했던 책상은 가져가야만 했다.

그가 하루 중 8시간은 책상을 썼기 때문에 케니의 흔적이 가장 많이 묻어있었다. 

책상이 생각보다 커서 내가 새로 들어갈 곳에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케니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어떤 물품이든 들고 갈 거라는 고집이 있었다.

지금은 다른 무엇보다 시간이 흐르면서 케니의 기억이 흐려지는 것을 막는 것이 내게 제일 중요했다.

그가 내 옆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해야 했다.


나는 가장 친구이자 동반자를, 때로는 부모님 같은 존재를, 이 세상에서 나의 존재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사람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그와 함께 미래를 그려나갔고 함께 무언가를 해서 성취하는 것이 삶의 원동력이었다.

그는 더 이상 내 곁에 없었고 나는 살아가는 이유를 잃었다.

나의 안전한 장소는 더 이상 혼자 있지 못하는 불안정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최우선으로 여겨주던 사람이 사라졌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팔을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도와줬던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힘들 때 안아주고 나를 다독여줄 있는 그의 존재는 없다.

그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혼자서 잘할 수 있을까?


내가 토론토에 있어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케니였는데 여기서 살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사라졌다.

그럼 한국에 다시 돌아가는 게 맞을까?

폐허가 된 내 세상을 다시 스스로 성벽을 쌓고 내 세계를 지을 수 있을까?

나는 깜깜한 우주에서 길을 잃고 미아가 되어 혼자 떠다니고 있었다.

산소는 점점 떨어져 가고 구조가 될 거라는 희망을 잃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다시 내가 살 수 있는 행성을 찾아 구조가 될 수 있을까? 

10분의 미래를 걱정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내게 내린 결론은 지금 주어진 현실에 집중하자는 것이었다.

케니가 그리우면 그리운 채로, 마음이 아프면 마음이 아픈 채로, 

그가 보고 싶으면 울고, 그가 좋아했던 음식이 생각나면 그것을 먹고,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으면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가 내 손을 잡아주지는 못하지만 나와 그의 모든 추억을 기억해 그의 존재를 느끼기로 했다.

몇 년이 됐든 내가 만족할 만큼, 할 수 있을 만큼, 하고 싶은 만큼 그를 추억하고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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