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비리그 Oct 27. 2024

옳다고 믿었던 내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알았을 때

백날 후회해도 지나간 일을 돌이킬 수 없다

나와 케니는 7억의 대출을 받아서 집을 구매했다.

매달마다 약 400만 원이 모기지 대출값으로 빠져나간다.

한 사람의 월급을 집 갚는데 쓰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집을 살 당시에 케니는 깊게 생각하고 여러 번 계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확실히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 달에 생활비가 얼마나 빠져나갈지 여러 번 계산하지 않았다. 

집사는 것을 조금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확실히 무모했었다.


단순히 어차피 우리가 평생 살 집이니까 투자한다고 생각하고 집을 구매했다.

한 달에 400만 원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도 깊게 생각하지 않은 채 일을 저질렀다.

사고가 나도 대출은 꼬박꼬박 한 달에 400만 원이 빠져나갔다.

지금까지 모아놓은 돈이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큰일 났을 것이다.

혹시 몰라서 아빠의 도움도 받았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것은 큰돈이 나가는 만큼 인생에서 중요하고 큰 일이다. 

큰일이었던 거에 비해 나는 '우리는 아직 젊어서 돈을 벌 수 있는 길도 많고 무조건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자신감도 있었다.

사고를 당한 후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는 오만하고 거만했었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내가 원하고 목표하는 바는 열심히 해서 이뤄낸 경험이 쌓여서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높았었고 자신감이 있었다.

무조건 된다고 생각하고 밀고 나가면 된다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해 다른 것들을 보지 못했다.


케니는 똑똑하고 계산을 잘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무리한 행동을 하게 되면 케니가 말해줄 거라고 무책임하게 생각했었다. 

대출받는 것이 큰 무리가 없는지 스스로 철저하게 계산을 했어야 했는데 그 당시를 생각해 보면 그냥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욱더 이 사고의 책임은 나한테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때 조금 더 책임 있게 행동을 했었다면, 

좀 더 철저하게 계산하고 조금 더 조심스러웠다면, 

금리가 좀 더 내려갔을 때 무리하지 않게 집을 구매했었을 텐데.


나와 케니가 구매한 집이므로 어떻게든 내가 이 모든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몸상태가 일을 할 수 없는 몸이고, 

이 집이 나 혼자 살기에는 컸다.

이 집에 혼자 있으면 케니 생각이 많이 나고 사고트라우마로 과거에 계속 매여있을 것 같고, 혼자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가족과 상의 끝에 집을 팔고 혼자 살 수 있는 콘도(한국 아파트개념이 토론토에서는 콘도라고 부른다)로 이사 가기로 했다.


7월 말에는 엄마 비자가 만료돼서 같이 한국에 가야 했다.

한국 가기 전에 집을 팔고 새 보금자리를 얻어야 했다.

일단 토론토에서 생존을 하려면 집을 팔아야만 했다. 


내게는 집을 파는데 2가지 난관이 있었다.


또 내가 잘못된 판단을 해서 잘못된 결과를 얻을까 봐 두려웠다.

작년에 구매했던 집이 행운이고 선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처럼 또 나의 판단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까 봐 두려웠다.


두 번째 난관은 내가 과연 이 모든 절차를 이해하고 집 팔고 살 때 하는 모든 서류들을 읽고 이해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였다.


사고 후 난독증이 발생했다.

글자는 읽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가 얼른 되지 않았다.

이해하려고 글자를 계속 읽으면 두통에 시달렸다. 

그리고 목과 어깨 다리에 고통이 있었다.

뇌에 생긴 상처들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내용을 이해하는 정확성이나 유연성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머리가 시시때때로 아파서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면 누워있어야 했다.

집을 팔려고 하면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은데 신경을 조금만 쓰면은 두통에 시달렸다.

내가 무사히 집을 팔고 새 보금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몸과 정신을 잘 보살펴야 했다.


다행히 케니 사촌 S가 부동산 중개인이어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묻고 또 물었다.

나는 하늘에 있는 케니가 하느님과 함께 도와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아니 나를 안전한 곳으로 잘 이끌어주셔야 했다.


금리가 여전히 높아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집을 부동산 리스트에 올렸지만 한 달이 지나도 팔리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모기지 대출값은 야속하게 한 달에 400만 원씩 계속 빠져나가고 이외의 전기, 수도세, 통신비가 빠져나갔다.

통장의 잔고는 점점 줄어들고 불안했다.


나는 집을 잘 팔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집을 잘 팔지 못하면 집을 살 당시에 나와 케니가 내렸던 판단이 틀렸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먼저 케니한테 집을 사자고 제안했던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케니한테 떳떳하기 위해서, 내가 살기 위해서 집을 잘 팔아야만 했다.

하느님께 기도를 하고 또 했다. 

기도하고 집관련해서 리서치하고 부동산 중개인이랑 연락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머리가 아플 때는 하던 일을 멈추고 누워서 눈을 감고 케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루는 너무 힘들어 "하느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지었던 모든 죄를 사죄하여 주십시오. 

가슴깊이 반성하며 앞으로 선량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나치지 않고 도우면서 살겠습니다. 

저를 살게 도와주세요. 저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 주세요. 

집이 팔리고 안전한 보금자리로 저를 인도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연락이 오면 나와 엄마는 광이 날 때까지 닦고 또 닦았다.

조금이라도 더 닦으면 집 보러 오는 사람들이 집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구매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청소하고 쓸고 닦았다.


집가격이 높아서 팔리지 않는 것 같다는 부동산 중개인의 말에 가격을 낮춰서 다시 집을 부동산 리스트에 올렸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은 꾸준하게 있었지만 이런저런 불평을 듣기만 할 뿐이었다.


6월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토론토의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화창한 날씨와 달리 내 마음은 깜깜했다.

나는 점점 예민해졌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두 달 넘게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나의 상태는 엉망진창이었다.

머리도 7일 넘게 감지 않을 때가 많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도 한국 가기 전에 집을 팔지 않으면 더 힘들어지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해야만 했다.

엄마도 나도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오늘은 비가 내려서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지.' 하며 힘 없이 소파에 누워있었다.

멍하니 비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주면은 7월인데 큰일 났네.. 하느님 제발 도와주세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집도 잃어야 하는데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안전하고 새로운 보금자리로 인도해 주세요.' 

간절했다.

나의 기도는 계속됐다.


'띵동'


문자소리에 메시지를 확인했다. 

하느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셨나?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오후 3시에 온다는 내용이었다.


혹시나 해서 엄마와 나는 집을 청소했다.

이번은 마지막 청소이길 바라며 온 마음을 다해 청소했다.


집 보러 오는 사람이 도착했다.

젊은 부부였다.

생각보다 진지하고 오래 봐서 기대 없던 마음이 조금 희망을 가졌다.


젊은 부부는 약 40분 정도 집을 둘러보고 떠났다.

약 3시간 후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젊은 부부가 집이 마음에 들어 사고 싶다고 했다.

그들이 제시한 가격은 내가 이 집을 산 가격보다 조금 높았지만 내가 내야 할 금액들을 포함시키면 조금 손해를 보는 가격이었다.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1년 만에 이득을 본다는 것이 사실 말이 안 됐다.


두 달 만에 온 기회를 잡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젊은 부부에게 집을 팔건지 결정을 했어야 했는데 나의 판단으로 잘못된 결과를 낳을까 봐 두려웠다.

도저히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아빠한테 전화를 해 조언을 구했다.


나와 엄마가 7월 말에 한국에 들어가야 하고 집이 마음에 든다고 하는 사람이 두 달 만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인데, 이 기회를 놓치면 집을 못 팔 수도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집을 드디어 팔게 되었다.

내가 저질렀던 일을 책임을 지는 것이라 생각되니 마음이 씁쓸했다.


나와 케니가 이 집을 구매할 때 우리가 함께 평생 같이 할 보금자리라고 생각하고 들뜬 마음으로 샀다.

그와 나를 닮은 아이를 낳고 이 집에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줄 알았다.

겨우 1년 채 안 돼서 우리의 미래가 무너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집을 사지 않고 케니와 여행을 다니며 추억을 더 만들었을 텐데.

욕심부리지 말고 주어진 거에 감사하며 현재를 살라는 하느님의 뜻인가?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라는 건가.

내가 지금까지 잘못 살았던 죗값을 치르는 건가.

아무 뜻 없이 그냥 운이 안 좋아서 사고가 일어난 건가.


이 사고는 내게 무질서한 세상을, 우리 인간은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적나라게 보여줬다.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에 감사하고 집중하고 살아야 함을 깨닫게 해 줬다.


나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 사고와 상실은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꿨다.

나의 세계와 신념을 흔들어 나의 가치관을 바꿨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이 정신을 못 차릴 만큼 큰 상실임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중이다.

이전 03화 혼란과 혼돈의 감정에 휩쓸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