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별의 아픔의 과정
9년 동안 위기를 겪을 때마다 케니는 내 옆을 항상 지켜주며 항상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빛을 비춰주는 등대였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직면했지만 그는 내 곁에 없었다.
나의 베스트 프렌드이자 사랑하는 사람, 부모님 같은 존재였던, 나의 삶의 일부였던 그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나도 그의 삶의 일부였을 것이다.
나의 모든 사소한 일에 관심을 보여주고 사랑을 표현하는 그였다.
내가 어딜 가든 함께 있어주고 내가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응원해 주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1 호팬이었다.
그의 빈자리가 주는 상실감은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컸다.
처음에는 전혀 다른 두 세계가 만났었다.
나는 아침형이었고 그는 저녁형이었던 것부터 달랐다. 바깥활동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그는 집에서도 그가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을 하며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모험심이 많았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해 항상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그는 안전하고 예측가능한 것을 좋아했고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기보다는 늘 하던 것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삐걱거리는 게 많았고 다툼이 잦았다.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코로나를 같이 맞이하고 함께한 세월이 쌓이니 서로 다른 부분을 있는 그대로 봐주기 시작하면서 서로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았고 배려하려고 노력했다.
가끔 나의 모험심이 발동해 조금 위험한 것을 시도하고 싶을 때는 내가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이끌어줬고, 나는 그가 반복적인 일상생활 이 외에 다양한 것을 해볼 수 있도록 밖으로 데려나갔다.
우리는 만나는 동안 서로에 관해서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성격으로 부딪히는 부분도 많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게 단단하고 견고한 관계를 쌓아나갔다.
나는 조금 더 편안하고 따스한 보금자리를 위해 욕심을 부렸다. 미래를 위해 좀 더 돈을 모으고 투자를 해서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싶었다.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살아가고 경제적인 성벽을 견고하게 쌓으려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어느 날 나와 그의 세계에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 두 세계를 무너트렸다.
그와 단단하게 함께 쌓아 올린 성벽이 처참히 무너졌다.
싱그러웠던 생명들이 죽음을 맞이해 폐허가 되었다.
나는 폐허가 된 땅에서 상처로 온몸이 피투성이로 변했고 미친 사람처럼 떠돌아다녔다.
두 세계가 처참하게 무너지고 난 후에도 계속되는 끊임없는 공격에 멸망에 이를 지경이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밤마다 사고 트라우마로 화들짝 놀래 벌떡벌떡 깼다.
울다가 지쳐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울다가 깬 날에는 케니의 손을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케니 손은 나의 안정제였다.
마음이 불안할 때 케니 손을 잡으면 진정되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다른 세계를 가진 친구들이 아무리 나를 도와주겠다고 와서 폐허가 된 내 세계를 보듬어주려고 했지만 무너진 케니와 나의 세계는 케니가 직접 오지 않는 이상 복구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이 나를 간호하기 위해 한국에서 태평양을 건너 토론토에 왔다.
내게 가족이 있다는 것은 진심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아니었으면 못 버텼을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가족이었고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그들은 케니가 아니었다.
나는 케니의 사랑과 그의 유머, 그다움이 당장 필요했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9년 동안 내 옆에 있었던 안전기지는 케니였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동반자가 떠났을 때 가장 슬픈 이유는 둘만 웃을 수 있는 둘만의 웃음 코드, 둘만의 장소, 함께하면서 맞춰진 일상생활의 방식 그리고 둘만의 루틴으로 일상이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 빈자리에 그 어느 누구도 둘만의 루틴을 채워줄 수 없다.
두 세계가 하나로 융합되는 과정에서 싸우고 화해하고 뜨겁게 사랑하는 과정이 반복되어 융합되었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이 아니면 부서진 세계를 절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하지만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케니의 부재는 더 강렬하게 각인될 뿐이었다.
그들은 내 눈치를 보며 혹여나 나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내가 아프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움 때문에 안절부절못했다.
나를 방문해 준 그들의 마음을 알면서도 나는 다 필요 없고 케니가 돌아오는 것만 원했다. 지금 나한테 벌어지고 있는 이 사실이 비현실적이어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
이왕 부서진 세계를 스스로 파괴해 멸망시키고 싶었다.
깊이 잠이 들어 이 고통을 잠재우고 싶었다.
고통이 너무 심할 때면 혹시 케니와 꿈에서 만날 수 있을까 해서 간호사에게 수면제를 부탁해 강제로 세상과 단절을 선택했다.
세상이 불공평했다.
불공평함에 밤이 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부짖었다.
도대체 왜 케니와 나에게 이런 시련과 고통이 닥쳤는지 내게 벌을 내리는 것이면 그가 하늘나라에 가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내 죄를 사죄하고 다시 착한 사람으로 살 수 있음을 충분히 깨달았을 텐데.
9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두 세계를 하나로 합쳐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직 같이 해보지 못한 것이 무수히 많은데, 그가 세상에 베풀고 나눠줄 것이 많았는데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아이를 좋아했고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영어 과외를 하면서 실력이 향상하는 학생들을 보고 성취감을 얻었고 재미있어했다.
그는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영어를 가르치고 싶어 했다.
나는 케니에게 토론토에서 영어 스피킹 실력 향상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구해 소개해줬었고 그는 시간을 쪼개 부업으로 영어 선생님이라는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케니는 친절하고 남을 항상 배려할 줄 알고 자신을 희생해 남을 생각해 줄 주 아는 사려 깊고 순수하고 선량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고가 난 것은 다 내 잘못이었다.
있는 것에 만족하고 살았어야 했는데 투자를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욕심을 부려 집을 사자고 제안했던 내 잘못이었다.
이사만 가지 않았어도 사고가 났던 헬스장을 갈 일도 없었을 테고 사고 당일 우리는 거기에 있지도 않아 사고를 피했을 텐데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토요일 아침에 느긋한 아침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케니에게 운동하자고 헬스장에 그를 데려갔던 내 잘못이었다.
"하느님 제 말을 듣고 있습니까? 너무 불공평합니다. 케니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다 제 잘못이에요. 그를 살려주시고 저를 데려가셔야죠. 왜 하필 그 시간에 저희가 거기 있도록 허용하셨나요. 지금까지 제가 가졌던 오만함 거만함을 사죄드립니다."
울분을 터트렸다.
가장 잔인했던 것은 그 당시 수술을 받고 난 다음날에 케니의 장례식이 열렸다.
그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그가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배웅해주지 못한 죄책감은 공격으로 변해 나 자신을 공격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한 슬픔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
나는 사고에 대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 케니의 죽음은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서 떠난 허무하고도 어이없었던 일이었다.
이렇게 잔인하고 비극적일 수가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느낌이 전쟁 중에 가족과 생 이별을 하는 느낌에 비유할 수 있으려나? 아니다 전쟁으로 가족이 생이별을 했더래도 그래도 살아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도 있기에 그날을 위해 열심히 살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나와 케니의 이별은 살아서 직접 살을 부대끼며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슬프다 못해 이제는 화가 치밀었다.
케니는 평소에 안전 운전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항상 상대차를 양보했고, 스피드를 한 적도 단 한 번도 없었고 항상 신호규칙을 지키는 사람인 걸 잘 알았기에 사고의 원인을 몰랐지만 상대편이 100% 잘못했구나라고 생각했고 그래야만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왜 사고로 목숨을 잃어야 하는가에 대한 원망과 분노에 사고에 대해 깊게 파 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사고가 일어났는지 알아야만 했다.
사고의 원인이 케니가 아니라 상대방이라는 것을 들어야 했다.
케니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 직접 들어야만 했다.
사고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어서 화가 났다.
사고가 날 때 혹시 내가 케니한테 말을 걸었나? 운전하는데 방해를 했나? 말다툼을 했나?
아무리 머리를 쥐어뜯으며 생각하려고 했지만 극심한 두통에 시달릴 뿐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경찰에게 들은 바로는 오전 10시 20분경 케니와 나는 헬스장 주차장에서 도로에 진입하려고 비보호 좌회전을 하려던 참이었다.
케니 차 앞에는 몇 대의 차가 있었는데 그 차들은 잘 빠져나갔다.
그리고 케니 차가 빠져나가는 중이었는데 시속 50으로 달려야 할 도로에서 시속 100으로 달려와 비보호 좌회전에서 돌고 있는 케니 차를 박고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쭉 밀고 나갔다.
케니가 탄 운전좌석 문에 시속 100으로 달려와 박고 밀었다.
그 충격은 케니의 심장에 그대로 전해졌고 케니는 현장에서 구급차로 이송되다가 심정지가 와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나는 골반, 목, 발목, 쇄골, 갈비뼈 여러 곳이 부러졌고 머리를 심하게 부딪혀 피가 뇌에 찼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비현실적인 사건이 나와 케니에게 일어났다.
요가가 끝나고 헬스장 주차장에서 도로로 진입하기 하기 전까지의 케니와 했던 대화들을 기억하려고 그 상황을 수천 번 되새겼다.
기억이 나지 않는 사고 현장을 조금이라도 기억하려고 수차례 사고 현장에 나를 던지는 위험한 시도를 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 몸은 트라우마 상태에 빠졌다.
갑자기 호흡곤란이 와 호흡이 멈출 거 같아 간호사들을 불러 한바탕 난동을 피운 적이 있다.
나의 뇌는 고통스러운 사고에 대한 기억을 차단해 놓았다.
나는 더 이상 사고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주체할 수 없는 두려움이 온몸을 감쌌다.
내 옆에는 분명 가족이 있었지만 그들이 멀게만 느껴졌다.
얼음 속에 내가 갇혀서 그들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가족이 내 눈에 보이지만 나를 감싼 얼음 때문에 그들에게 아무리 소리쳐도 그들은 내 목소리가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얼음 속에서 이렇게 팔다리, 장기, 심장, 모든 것이 그냥 얼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상태는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사고 당일 케니 집으로 와서 벨 설치하는 것을 도와주기로 했던 사촌 S도 케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나는 이 모든 사고의 원인이 나라고 단정 짓고 자책하고 있었는데 사촌 S가 내게 와서 그날 케니와 원래 오전 9시 30분쯤 만나려고 약속을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일이 생겨 오전 11시에 만나는 걸로 변경되었다.
사촌 S는 자신이 약속 변경을 하지만 않았어도 케니가 살았을 거라고 자책을 하고 있었고 케니의 죽음에 대해 책임감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은 다 내 책임이라고 사촌 S는 책임이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며 우리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사촌 S는 몸이 불편한 나를 위해 거의 사고 관련 모든 것을 위해 처리해주고 있었다.
그녀도 사고가 이해가 가지 않아 사고에 대해 깊게 파고들었다.
캐나다에서 판매되고 있는 차는 블랙박스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본인이 직접 설치해야 한다.
케니차와 상대차 둘 다 블랙박스가 설치되어있지 않았기에 다른 방법으로 상대차가 시속 몇 킬로 미터로 달렸는지 측정을 해야 했다.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상대차의 시속 측정이 가능해서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비보호 좌회전을 해야 했던 케니의 입장이 불리해졌기 때문이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나는 눈을 감고 사고 현장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극심한 공포와 공황발작으로 멈춰야 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나의 사건을 맡은 경찰이라고 소개를 듣자마자 손이 벌벌 떨렸다.
그는 자신을 소개한 후 약혼자를 잃은 것에 유감이라며 슬픔을 표했다.
나는 케니의 운전실력을 알았고 그의 안전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을 알았기에 상대차가 분명히 빠른 스피드로 달렸을 거라고 확신했다.
나의 예상대로 상대차는 약 시속 100으로 달려와 케니차를 박았고 그 사람은 신체 상해죄 죽음을 초래한 죄를 경찰로부터 받은 상황이라고 들었다.
땀구멍 모공 몸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분노가 끓어올라 흐르기 시작했다.
사고 당일 날 상대방이 술을 마셨는지 약을 했는지 경찰이 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말에 발끈해서 일반도로에서 시속 100으로 달렸는데 왜 아무 검사를 하지 않았냐고 따졌다.
토론토 교통법은 아무리 빠른 스피드로 달려도 그 사람에게서 알코올 냄새가 나지 않거나 멀쩡하게 보이면 따로 음주측정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음주를 해도 멀쩡해 보이도록 연기할 수도 있고 다른 냄새로 알코올 냄새를 가렸을 수도 있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이 어디 있나.
사람이 사망했는데 아무런 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게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억울함, 증오, 원한 분노가 차올라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복수를 하려고 수년동안 준비 하는 것이 이해가 갔고 나 역시도 케니의 억울한 죽음을 되갚아주고 싶은 복수심이 차올랐다.
케니 차를 박은 정신 나간 놈은 현재 자수를 했고 묵비권을 행사 중이라고 경찰이 말했다.
재판에서 판사의 판결에 따라 그의 형벌이 정해진다고 했다.
정신 나간 놈이 그냥 이유 없이 재미로 스피드를 즐기다가 그런 사고가 났는지 술을 마셔서 정신없음에 그런 사고가 났는지 본인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그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으니 그의 속셈을 누가 알겠는가.
뜨거운 용암 같이 끓는 분노가 폭발하지 못하고 피눈물로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다.
사고의 원인을 알면, 케니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면 속이 좀 시원해질 줄 알았는데 허망했다.
허무했고 인생이 부질없다고 느꼈다.
케니의 잘못이 아니라고 확실한 증거를 찾았지만 혼란 속으로 빠졌다. 더 찝찝했다.
그럼 왜 하필 그 타이밍에 그 상황에 케니차가 있었는지 1초만 정신 나간 놈이 늦게 왔어도 케니는 살 수 있었는데 왜 현장에서 그를 데려갔는지 신에게 따지고 묻기 시작했다.
끝이 없었다.
이것이 케니 운명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내 세계는 멸망하고 없어지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나의 분노는 자연스레 내 옆을 지켜주는 엄마에게 향했다.
나는 나쁜 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토록 후회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또 후회할 짓을 또 반복하고 있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분노에 차서 통제가 되지 않았던 나의 고통은 고스란히 엄마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나의 짜증과 분노와 울분을 받아주는 엄마,
먹는 것을 거부하는 나에게 삼시세끼 다 차려줬던 엄마,
조금이라도 나의 기분을 괜찮게 하기 위해 노력을 했던 엄마,
아빠와 동생들은 일 때문에 한국에 돌아갔고 엄마는 나를 위해 6개월 동안 내 옆을 지켰다.
엄마가 내 곁에 없었으면 절대 못 버텼을 거라는 것을 잘 안다.
나는 분노의 눈물을 흘리던 중 새벽에 엄마가 흐느끼고 있는 것을 들었다.
같은 공간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던 엄마와 나.
혹시 내가 엄마한테 준 스트레스 때문에 엄마가 아프면 어떡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극심한 공포가 나의 온몸을 칭칭 감아 숨을 조여 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다시는 같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았다.
서로 대화를 하지 못해 서로의 마음을 몰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끝까지 대화를 하고 또 해서 그 사람을 후회 없이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싶었다.
케니를 잃은 분노를 엄마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하기로 마음먹었다.
엄마와 케니는 각별한 사이였다.
한 번의 만남으로 엄마와 케니는 장모님 사위 사이가 되었고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사랑한다고 서로 표현했다.
케니와 엄마는 사랑으로 대했고 서로 아끼는 마음이 특별했다.
케니를 위해서라도 엄마한테 잘해야 했다.
케니가 추구하고 원했던 삶을 내가 살고 싶었다.
케니의 성품을 봤을 때는 복수로 그의 죽음의 정당성을 찾는 것보다 나누고 베풀고 사랑하는 삶을 살면서 그의 정당성을 찾는 것이 그가 원하는 삶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엉망진창인 내게 케니가 삶의 방향을 조금씩 비춰주고 있었다.
케니가 하늘나라에서 나를 보고 뿌듯해하고 함께 행복해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었다.
분노를 터뜨려 화산 폭발을 하는 활화산이 될 수 있었지만 케니를 생각하며 나는 분노를 잠재워 휴화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화산활동이 완전히 멈춘 사화산이 당장 되기는 어렵지만 사람들이 화산을 구경할 수 있고 화산에 있는 호수의 물을 데워 사람들이 온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화산이 되는 것이 케니가 원하는 방향임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케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하고 있어 멍키,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 항상 그래왔듯 잘 해낼 거야. 내가 항상 옆에서 지켜줄게."
멍키는 케니가 나를 부르는 많은 애칭들 중 하나였다.
'그래 나는 상상을 잘하니까 상상을 해서 케니가 항상 내 옆에 있다고 생각하자.'
그때부터 혼잣말로 케니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혼잣말하는 정신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지만 상관없었다.
케니의 사진을 항상 내 옆에 놔두고 불안한 마음이 생길 때마다 그에게 털어놓았다.
"자기라면 어떻게 할거 같아? 나 이런 마음이 드는데 너무 힘들어."
그의 웃는 모습이 곧바로 떠오르는 동시에 그가 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말라비틀어진 내 세계에 매일 끊임없이 물을 실어다 뿌려주는 엄마 덕분에 멸망을 해서 영원히 사라질 뻔한 내 세계가 버티고 있었다.
다행히 사랑으로 분노를 잠재우고 있었다.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실의 분노를 엄마에게 사랑으로 표현해야 했다.
케니는 하늘나라에서도 내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멋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 고통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정말 살아남고 싶긴 한 걸까?'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에게 감사하고 그가 미치도록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