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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주Ivy Oct 15. 2022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

서른에 앤을 다시 만나다

10대에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원하는 곳에 취직하면 인생의 꽃이 활짝 핀다라고 부모님, 학교로부터 항상 들어왔다. 드라마도 한 몫했다.  

30대가 되면 차는 당연히 가지는 줄 알았고, 돈도 어느 정도 모여 여유로운 생활을 할 줄 알았다. 세련된 정장을 입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전문성을 갖춘 커리어 우먼으로 일을 할 줄 알았다. 강가가 보이는 아파트에서 애인과 와인 한잔을 하며 뜨거운 밤을 보내면서 내 삶도 멋지게 익어갈 줄 알았다.


흔히 드라마에서 보이는 30대의 모습은 허상임을 알았다. 현실은 매일 생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지 늘 의심했고 서른이 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웃을 일조차 사라져 갔다. 나를 항상 감시하는 내면의 경찰이 불안의 수갑을 채우는 바람에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자본주의 속에서 돈이 없어도 돈에 구속되지 않고 나 자신으로 우뚝 설 수 있는지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다. 좋은 대학에 가서 능력을 키우면 된다라고 답하는 부모님에게는 더 이상 묻고 싶지 않았다. 가슴에 답답함이 꽉 차 폭발하기 직전에는 유튜브에 있는 성공스토리들을 몇 시간이고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곤 했다. 자극은 받았지만 그때일 뿐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20대는 넘치는 에너지와 열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항해를 떠나는 시기다. 마주하는 모든 경험으로부터 사람과의 관계를 배우고, 진한 사랑을 하면서 이별을 겪기도 하고, 수없는 거절로부터 좌절하기도 한다. 실패로부터 내가 가진 강점과 약점을 발견하면서 겨우 나를 알아가고 는데 서른이  앞에 닥쳤다.

 

앞자리가 2에서 3으로 바뀔 때는 1에서 2로 바뀔 때의 설렘과 호기심은 없었다.

20대와 달라진 건 유머를 점점 잃어갔고 감정이 무뎌져 서툴었던 표현이 더 서툴어져 갔다.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고 빨리 돈을 모아서 집을 사야 한다는 압박에 마음만 조급했다.

한 해가 갈수록 고민하던 문제들이 해결되기는커녕 다른 욕망들이 고개를 들어 비교와 집착을 낳았다.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과 정면승부를 해보기로 했다.


1. 30대가 되면 좋아하는 일로 전문성을 갖춰서 다른 걱정 없이 일과 연애를 하며 멋지게 살 줄 알았다.


2.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 명성을 얻는 성공을 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갔지만 몸과 마음이 지쳤고 인간관계는 좁아졌다.


3. 4차 산업으로 가는 이 시점에 남들은 잘되는 것 같은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렸다.


4. 성공의 압박이 주는 스트레스로 경미했던 폭식증이 더 심해졌다.


일상 속의 행복보다는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해야 더 큰 행복을 누릴 거라고 생각했다. 쳇바퀴 일상을 감정 없는 로봇처럼 맞이했고 현재를 희생하면 미래가 밝을 거야라는 썩은 관념으로 일상도 썩어갔다.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바쁜 현실에서 무엇을 해야 하며, 좋아하는 것을 알기 위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막상 일 마치고 집에 오면 밖에서 다짐했던 의지는 어디에도 없고 나약하기 짝이 없었다.


To do list를 썼던 시간이 무색하게 집에 오자마자 리모컨을 들고 넷플릭스를 틀었다. 10분만 보자 했던 것이 2시간을 훌쩍 넘겼다. 

드라마를 보면서 광란의 과자 파티도 벌여 배가 볼록한 채 잠이 들어야 과자 먹기를 멈출 수 있었다. 뒤처질까 봐 불안감에 초초해하는 밖에서의 내 모습과 달리 늘어져있는 집에서의 상반된 모습에 스스로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행복하기 위해 사는데 일을 하나 휴식을 취하나 공허감만 남았다. 텅 빈 마음은 우울로 차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만나면 괜찮을까 하는 생각에 친구들을 만났다. 수다를 떨 때는 좋았지만 곧 변하는 건 없음을 깨닫고 허탈했다.

  

현재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라는 문구를 저자 샤넬서의 책 '수천억의 부를 가져오는 감사의 힘'에서 읽었다. 처음에는 지푸라기 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열심히 실천했다. 입으로는 감사하다고 나는 충분히 가졌다고 말하면서 '거짓말하지 마 속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잖아 돈을 더 벌고 싶잖아' 마음 저 어디에선가 의심의 목소리가 내게 따지는 듯이 말했다. 나는 의심에게 반박할 수 없었다. 감사하는 마음이 깊이 우러나오는 진심이 아님을 스스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가진 것이 충분하지 않았고 많은 돈을 벌고 싶었다.


공부하기 싫을 때 항상 문학책 속으로 도피했었던 학창 시절이 생각나 서른이 되고 10년 동안 잊고 살았던 추억의 책들을 펼쳤다. 빨간 머리 앤, 작은 아씨들, 톰 소여의 모험 잠시 잊고 살았던 도피 시절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저 재미로만 읽었던 빨강머리 앤으로부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내는 태도를 다시 보게 되었다.


매튜와 마릴라가 자신이 아닌 남자아이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마릴라와 보육원으로 돌아갈 때 앤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제부터 즐겁게 마차를 타고 가기로 마음먹었어요. 마음을 굳게 먹으면 뭐든 즐겁게 할 수 있거든요. 물론, 아주 단단히 결심해야 하지만요. 그래서 마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는 보육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요. 지금은 오로지 마차를 타고 있다는 생각만 할 거예요."


수십 개의 인터뷰에서 떨어지고 힘들게 합격한 일터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면서 일했던 시절 내게 앤이 하는 말 같았다. 안 좋은 결과로 부정적인 마음이 목구멍까지 쌓여 숨통을 조이고 있었지만 앤의 태도를 적용시켜 각박한 현실 속에서 현재에 집중하고 좋은 것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타지에서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의심이 반박의 목소리를 내기 전에 얼른 펜을 집어 들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제게 줘서 감사합니다.'라고 썼다.


'쉬는 시간도 없이 일하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스트레스 속에서 일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매일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가며 적어갈수록 감사할 거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났다.

내 명의로 된 집을 가져야 타지에서의 불안정한 생활이 끝이 난다고 생각했었다. 돈을 많이 벌어 집을 소유하자가 목표가 되니 마음이 급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토론토와 서울의 집값은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비슷했다. 괜찮은 집을 마련하려면 10억이 훨씬 넘는 돈이 필요했다. 집이 있으면 결혼 후 돈 때문에 걱정하는 일도 적어지고 싸우는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사는 이유가 돈으로 전락하자 나 자신을 잃어버린 채 시간과 돈에 쫓기는 노예로 사는 거나 다름없었다.


"아, 정말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날이야. 이런 날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니?"


"오늘같이 눈부신 날은 다시없을 테니까. 게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따라서 학교에 간다는 것도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앤이 다이애나에게 환희의 목소리로 말한다.


쳇바퀴 같은 삶에 덤덤해져 나무 사이로 태양이 솟아오를 때도 별 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SNS에 올라와있는 행복한 사진들을 보고 자극적인 기사를 읽으며 출근하는 내 모습이 투영되는 앤의 말이었다.


고독하고 지독했던 겨울을 지나 봄의 기운으로 앙상한 나뭇가지들에 생명이 막 싹터는 시기였다. 얼어붙었던 땅에 봄기운이 퍼지면서 회색빛 잔디 밑의 모든 생명체들이 기지개를 켰다. 세상 밖에 나오려고 노래와 춤을 추는 동, 식물들의 템포에 토론토는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생동감 있게 사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던 때, 그저 앞만 보고 달렸고 무엇에 쫓기는 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닌 것을 머리로는 잘 알지만 일상의 많은 불편함을 해결해 주고,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 편하게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했다.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싶어 하루빨리 돈을 모아야 하는 것에 집착했다. 좀 더 빨리 많이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느라 뇌는 메말라가고 있었다. 행복의 싹은 뿌리를 내릴 수 없었다. 엔도르핀 거름을 줄 이유가 없었다. 우울감의 안개가 자욱해 앞이 보이지 않아 두려웠고 시간이 지나도 안개가 걷히지 않아 무기력해졌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동쪽 나무 너머로 힘찬 주황빛이 솟아올랐다. 감각신경이 죽었는지 무덤덤했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됐구나'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마저 시청하던 주식 유튜브에 눈을 돌렸다. 늘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에 길을 가면서 영어단어라도 외워야 마음이 진정됐다.


일상에서 매일 만나는 사물, 풍경의 매혹적인 특징을 살려 생명을 불어넣는 앤은 죽은 내 일상에도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내게 주어진 순간을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앞만 응시했던 내 눈동자는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며 시야를 넓혔다. 꽃과 나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색과 생김새를 묘사했다. 구체적으로 표현할수록 무관심했던 자연에 관심이 생겼고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갔다.


'사랑의 오솔길' '제비꽃 골짜기' '반짝이는 호수' '환희의 하얀 길'처럼 사랑스러운 이름을 짓지는 못해도 길가에 수놓아있는 들꽃에게 안녕이라는 말을 건넬 수 있었고 붉은 석양 뒤로 펼쳐지는 신비로운 보랏빛에 빠져들어 감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마릴라 아주머니는 앤과 상반되는 인물이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다.

앤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자주 공상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 마릴라는 못마땅해했었다. 앤은 자신만의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으로 내면에 묻혀있던 마릴라의 따스함과 감성적인 면을 끌어냈다.


성격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는 과정은 묻혀있던 새로운 모습을 서로 끌어내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비슷하게 물들어가는 것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단점을 서로 지적질하면서 바꾸려고 하면 감정은 상하고 대화가 단절되어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선택지에 꼭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법은 없다. 둘 다 선택해도 되고 보기에 없는 새로운 답을 창조해도 된다.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누군가가 당신을 감옥에 가둬놓으면 어떻겠는가. 사람을 자기 방식대로 바꾼다는 것은 그 사람이 세계를 무대로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을 꺾어 놓는 것이다.


다른 라이프 생활로 잦은 싸움에 지쳐있었을 때 남자 친구는 내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나는 그의 삶으로 살아보고 그는 나의 삶으로 살아보자라는 제안이었다.

이게 과연 도움이 될까 반신반의하며 했던 제안은 역지사지 효과가 있었다.

여전히 남자 친구의 취미를 해보면서 재미없었고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이는 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로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의 방향을 전환했다. 지금은 서로 바꾸려들지 않는다. 다름을 인정하고 사생활을 존중한다. 합의점을 찾아 서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든다.


표현에 서툰 나는 특히 가족에게 부끄럽다는 변명으로 사랑과 고마움을 그때 표현하지 않고 그저 알아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넘어갔던 적이 수없이 많다.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앤이 소풍을 앞두고 가져갈 음식을 걱정할 때, 마릴라가 그녀에게 도시락을 싸준다는 말을 듣고 앤은 감탄사를 마구 연발하며 마릴라의 팔에 와락 안겨 뺨에 마구 입을 맞춰대는 장면이 나온다.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기쁨을 만끽하며 온 몸으로 표현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사랑하는 이에게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왜 점점 서툴어지는가.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건 그 기쁨의 절반을 미리 누린다는 뜻이잖아요, 혹시 이루어지지 못한다 해도 기대하는 동안의 즐거움은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할 거예요. 전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불행한 것 같아요."


머리 뒤쪽이 얼얼했다. 실망을 할까 봐 아무런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내 뒤통수를 때리는 말이었다.

기대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한 기쁨을 미리 누린다는 말이 좋았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니까. 학교에서는 1등부터 꼴찌까지 성적을 매겨 성적표를 만든다. 회사에서는 판매 실적, 성과로 수입이 달라지고 승진의 여부가 갈린다. 책도 베스트셀러라는 이름표가 붙으면 꼭 사서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관념에 묶여 과정의 즐거움을 놓치고 산다. 결과에 집중하면 목표하는 결과를 이뤘어도 그 후 공허감이 몰려오기 쉽다. 결과는 한순간이지만 과정은 피와 땀, 시간을 들인 노력이 들어있다. 좋은 결과가 나오지 못하더라도 과정에 만족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글들은 처음에는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에 첫 문장을 써놓고 세 달 동안 다음 문장을 쓰지를 못했다. '그냥 다 쏟아내자 고치면 되니까 내겐 시간이 많아'라고 생각하니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얘기부터 술술 쏟아져 나왔다. 무질서한 나의 문장들을 하나씩 더듬으며 정리하는 과정에서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해방감을 느꼈다. 새벽에 내 문장들을 정리하는 시간이 미치게 좋다.


마릴라는 브로치가 사라지자 앤을 바로 의심한다. 앤이 예뻐서 만졌다고 말하자 마릴라는 앤이 브로치를 잃어버렸다고 단정을 짓는다. 그리고 앤이 거짓말한다고 생각하면서 화를 낸다. 앤이 자백하지 않자 앤의 소원이었던 소풍을 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거짓자백을 받아냈다.

어른들은 자신이 잘못을 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실수투성인 아이가 그랬을 거라고 단념한다. 아이가 거짓말한다고 제멋대로 생각하고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 못 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뺏기까지 이른다. 순수한 아이는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좋아하는 자기의 것을 되찾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모습은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시켰다.


어릴 때 영어 공부를 하면 내가 갖고 싶었던 크레파스를 사주겠다, 수학 시험에서 1등을 하면 친구 집에서 놀게 해 주겠다 구구단을 다 외우면 좋아하는 피자를 사주겠다고 제안을 했던 부모님이 생각났다.

거기서부터 시작됐을까, 어느 순간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을 멈췄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수박 겉할기식의 공부를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기보다는 사회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기준을 넘으려고 남들처럼 사는 것이 목적이 되어 나를 잃어갔다.


앤의 친구 다이애나 동생이 후두 기관지염에 걸려 아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두려움에 빠졌을 때

앤은 패닉에 빠진 다이애나에게 울지 마라고 위로하며 후두 기관지염을 낫게 했던 경험을 설명하며 다이애나를 안심시켰다. 차분하게 자신의 경험을 살려 치료해 미니 메이는 죽을 고비를 넘겼다.

집과 학교 학원을 반복했던 11살의 내가 앤이었더라면 침착하고 차분하게 대처를 할 수 있었을까?

13살 무렵, 학교 마치고 학원에 가던 중이었다. 길가에 머리가 하얀 노인이 배를 움켜잡고 풀썩 주저앉아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심한 고통에 움직일 수 없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주위 사람들도 노인을 쳐다만 볼 뿐 선뜻 무슨 일이냐고 도울 용기가 없었는지 바빠서 시간이 없었는지 그냥 지나쳤다.

무슨 일일까 걱정은 됐지만 선뜻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가오는 학원 시간을 핑계로 지나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 일이 아니면 나 몰라라 하는 세상에서 길에 쓰러진 타인을 돕는 용기는 수학과 영어학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막상 하고 싶은 것이 생겨도 못하는 이유가 수십까지 떠오른다.

나이, 돈, 실패의 두려움, 걱정이 하고 싶은 마음을 무차별하게 짓누른다. 결국 미루다가 후회를 한다. 재밌는 것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현실이 되지 못하고 상상 속의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만다. 반복되는 쳇바퀴 같은 삶에 지쳐갈 때쯤 앤의 말들이 새벽만 되면 내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남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를 시작했다. 인간들이 깰까 봐 고요하게 숨 쉬는 나무, 꽃들과 제 자리에서 각자의 할 일을 묵묵히 하며 세상 반대편에서 열심히 일하고 온 태양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어떤 재밌는 생각이 머릿속에 퍼뜩 떠오르면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죠. 그냥 생각만 하다 보면 다 망칠 수도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이 머릿속에서 떠올라도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실패할 것을 먼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실패하는 변명거리를 만들어내 자기 합리화를 하며 '아직은 준비가 덜 됐어.'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자' 했던 적이 얼마나 많은가.  


매일 꾸준히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나 역시 유튜브 영상 제작을 하다가 방향성을 잃어 도중에 멈춰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은 글 쓰는 것이 더 좋아 유튜브를 잠시 쉬고 있다.

아이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하고 싶으면 별생각 없이 한다. 실수를 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다른 재밌는 것을 찾아 떠난다.


앤은 행복은 외적인 조건으로부터 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자신의 주변의 것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에 젖다 보면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에 벗어나도 된다고, 나 자신대로 진실되게 하루를 맛보라고 앤은 용기를 북돋아 준다. 돈과 명예를 쫓아가는 삶이 아니라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라고 응원한다.

암울한 현실에서도 이미 가진 것으로부터 감사하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태도로 삶을 마주한다면 30대의 여정은 오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희로애락이 충만한 삶으로 눈부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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