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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새눈 Aug 04. 2023

별소녀

고집쟁이 우주인의 파란만장 지구생활 (적응기) 1


 

 

  별과 우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운명적인 끌림 같은 것을 느낀다고 한다. 나의 경우에 그것을 느낀 것은 내 나이가 채 두 자리 수가 되기 전이었다. 전래동화 세트, 위인전 전집, 과학학습만화 세트가 하얀 책장에 가득 꽂혀 있게 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어느 겨울날. 나는 내 키보다 훨씬 큰 책장을 올려다보며 신이 나 있었다. 나는 책벌레 수준으로 책을 즐겨 읽는 아이는 절대 아니었고, 블록놀이나 인형놀이 등이 재미없어졌을 때 큰 거부감 없이 책을 집어 드는 정도의 아이였으므로, 책이 많이 생겨서 신이 났다기보다는 새 물건이 가득 생겨서 좋았던 것 같다.


  나이가 두 자리 수가 되기 전이었으므로 책을 고르는 기준은 책 표지의 그림이 마음에 드느냐 들지 않느냐였다. 위인전은 제목인 위인의 이름이 마음에 들거나 책 표지에 그려진 위인의 초상이 마음에 들 경우, 과학학습만화는 책 표지의 그림에 관심이 가거나 예쁠 경우 책을 빼내서 읽었다. 과학학습만화 세트 중에서는 별, 우주와 관련된 주제의 책 표지가 제일 화려하고 예뻤다. 지금은 그 책을 잃어버렸지만 물감이 번진 듯 푸르고 붉은 얼룩이 고리모양이나 꽃잎 모양처럼 번져 있던 (성운) 사진이 있었던 것 같다. 책장을 기고 나서는 책에 수록된 사진들이 예뻐서 홀린 듯 보았다. 그 순간이 운명적인 첫 만남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당시 나에게 별이나 우주는 요술공주 밍키가 살던 곳 같은 수준의 존재이긴 했지만.


  나이가 두 자릿수를 넘기면서부터는 책의 내용도 조금씩 이해를 했는데 특히 밤하늘의 별들이 사람처럼 (사람과 같지는 않지만)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간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별들은 모든 순간이 (태어났을 때, 살아 있을 때?, 모여 있을 때, 죽었을 때마저도) 아름답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고, 밤하늘 너머에 그런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가까이서 보거나 만질 수 없고 직접 체험할 수 없는 대상이라 더 궁금해서 안달이 났다.


  초등학교 때의 장래희망들을 돌이켜보면

불 끄는 게 멋있으니까 소방관이 될래,

강아지를 좋아하니까 수의사가 되어 보지 뭐,

엄마가 좋은 거라고 하니까 판사가 되어 볼까,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니까 탤런트를 해볼까..

(만화영화를 주로 보던 나이여서 탤런트들이 얼마나 예쁜지 잘 몰랐던 듯하다 ^^;;)

하다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장래희망이 우주공학자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과학학습만화의 별과 우주 관련 시리즈에서 언급된 직업이 우주비행사, 우주공학자였는데 우주비행사보다는 우주공학자가 더 멋있어 보였다. (과학학습만화를 이끌어가는 주요 등장인물 중에 천문학 박사가 있었지만 그냥 박사라고만 불렸던 것 같고 그 박사의 직업명에 대해서는 읽은 기억이 없다.) 우주공학자가 뭐 하는 사람인지도 잘 모르면서 그냥 별과 우주를 좋아하면 우주공학자가 되는 게 맞는 건가 보다 생각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매일 저녁을 먹고 두 집 건너 거리에 있던 주차장 공터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자리 책을 들고나가 계절별로 밝은 별들을 이어 만든 도형(여름의 대삼각형, 가을의 대사각형, 겨울의 오각형)을 찾거나 별에서 별로 선을 그어보며 별자리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할아버지께 쌍안경을 선물 받은 이후로는 쌍안경을 들고나가 (내 손 때문에) 흔들리는 달의 표면을 보기도 했으며, 그저 황홀한 기분으로 별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하늘에는 색색의 별들이, 영원에 가까운 제 각각의 시간을 달려온 빛들이, 시간이 뒤엉킨 채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신비로운 아름다움은 나를 들뜨게 하기도 하고 미소 짓게 하기도 했으며 슬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도 했다. 별의 존재와 나의 존재가 지금 이 순간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마주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놀라웠다.  별과 나만이 존재하는 듯했던 고요한 그 시간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유명한 천문학교수가 쓴 책에서 (적외선으로 보면) 인간도 별처럼 빛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읽고 나서는 별을 보는 기쁨과 감동이 배가 되었다.


   유성우가 내리는 날에는 아빠를 졸라 차를 타고 시골 들판으로 가서 밤을 새웠다. 사실 몇 시간씩 쳐다보고 있어도 유성을 몇 개 보지는 못했지만 별똥별은 단 한 개라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었다. 처음으로 유성을 목격했을 때의 당황스러움과 환희를 지금도 기억한다. 별들 사이로 밝고 얇은 선 하나가 짧게 그어졌다가 사라졌을 때, 처음 느꼈던 감정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찰나의 순간을 내가 제대로 포착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을 잘 못 보고 착각한 것인지, 아니면 아주 잠깐 잠이 들었던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차에서 눈을 붙이고 계셨기 때문에 별똥별은 혼자 보았고 이미 사라져 버렸으므로 확인할 길이 없었다. 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채로 눈을 끔뻑이고 있다가 두 번째로 유성을 봤을 때에야 비로소 기쁨을 실감하며 작게 소리를 지르고 발을 콩콩 굴렀다.  그때 온몸이 반짝이는 별로 가득 채워지는 것 같던 기분이란!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별소녀라고 종종 불리었다. (종종 이므로 기억을 못 하는 친구들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가장 밝은 별들의 이름이나 유명한 성운과 성단의 이름을 줄줄이 외우고 다녔으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태양계 행성의 정보들(반지름, 자전주기, 공전주기, 위성 개수, 위성 이름 등)을 공책에 빼곡히 옮겨 적어 놓거나, 신문에서 별과 우주에 관한 기사를 가위로 오려내어 공책에 붙여 모았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더 많이 더 잘 알고 싶었다.


  영화를 좋아하던 친구를 따라 들렀던 비디오 가게에서 그즈음 우주를 소재로 했던 영화들ㅡ인디펜던스데이(1996년 개봉), 콘택트(1997년 개봉), 딥임팩트 (1998년 개봉), 아마겟돈 (1998년 개봉)ㅡ을 보게 되었다. 그 영화들을 통해서 사진이 아닌 우주의 현실적인 모습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영화 아마겟돈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우주를 유영하는 모습을 보며 너무 부러운 나머지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전혀 슬픈 장면은 아니었고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에서 무언가 작업을 하는 장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주에 갈 수 있다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고 해도 우주에 가는 선택을 하겠노라고 다짐하며 극적인 상상을 하기도 했다.


  특히 조디포스터와 매튜매커너히 주연의 "콘택트"라는 영화에 푹 빠져들었다. 영화 속 주인공이 천문학자여서, 거기서 천문학자라는 직업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꿈이 천문학자라고 말하고 다녔다. (직업명을 알게 되긴 했지만, 영화에서 천문학자 역할의 조디포스터가 헤드셋을 착용하고 별에서 오는 전파 소리?를 듣는 일만 주로 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영화를 통해서 천문학자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진 못했다.)


  나는 그 비디오를 몇 번이나 돌려보며 대사를 받아 적기도 했고 (결국 다 적지는 못했다.), 그 영화에 나온 멋진 대사를 친구들에게 읊어주며 우쭐해하기도 했다.


"콘택트라는 영화 봤니?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와. '아빠, 우주에는 외계인이 있을까요?' 그럼 아빠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알아?"

"글쎄…. 뭐라고 했는데?"

"우주에 우리 밖에 없다면 너무 많은 공간의 낭비가 아니겠니? 크.."

그러고 나서는 꼭 이 말을 덧붙였다.

"나도 우주 어딘가엔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해."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지."


  친구들은 대체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중 밤하늘에 별이 까만 마분지에 뚫린 구멍처럼 보인다고 했던 눈이 나빠 안경을 썼던 한 친구는 나의 설파로 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나와 다른 고등학교의 천체관측부 부장이 되기도 했다! (잘 지내니?)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천체관측부 동아리에 가입했다.

천체관측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청서를 쓰고 면접을 봐야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선배들 앞에 섰던 때를 기억한다.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은 뭐죠?"

"큰 개자리의 시리우스입니다!"


  그 순간 달음박질치던 심장이 평정을 되찾았고, 평소 소심하던 모습과 달리 자신감에 넘쳐 대답을 했다.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지만 선배들은 당황한 듯 수군거렸다. 보통은 북극성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이후 비슷한 질문들에도 나는 막힘없이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아하는 것으로 인해 나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 첫 경험이었다.  


  천체관측부 활동을 하면서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것들을 하나씩 발견해 나갔다. 변화해 갔다고 해야 할까. 별에 대해서는 같은 학년 친구들 중 내가 가장 많이 알았고 잘 알았다. 그런 티가 날 때면 친구들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선망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덕분에 개미 같던 목소리가 좀 더 커지고, 친구들에게 먼저 말도 걸고, 관측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나는 전에 없던 자신감이 생겼고, 2학년이 되고 나서 자연스럽게 천체관측부 부장이 되었다.


  나는 학교 축제와 관측, 관측회 등의 일들을 순탄하게 진행하며 평화롭게 부서를 운영했다. 하지만 졸업앨범에는 연극부에 얼굴이 실려있다. (매우 밝게 웃는 얼굴로 찍혔다.)  2학년 가을 무렵, 선배들의 부당한 훈계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일을 계기로 천체관측부를 탈퇴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현실과 타협이 어려운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런 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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