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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새눈 Oct 21. 2023

들어가면서



서른 여덟,  9년 가까이 해왔던 일을 관두고 천문학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서른 아홉, 한학기 만에 자퇴를 했다.


  아주 대단한 각오를 하고 변경(급선회)했던 인생의 경로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사고처럼 한 순간 틀어졌다. 나는 마흔을 코앞에 두고 대책이 없어졌다.


  글 머리에 이렇게 쓰고 보면 이건 실패자의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이 글은 개인적인 이유로 쓰였다. 정말로 대책이 없어졌고, 9년간 해왔던 일을 이제 다시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으면서, 나는 지난 날들을 들여다 보고 지난 선택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잘 못 내린 결정이 있다면 바로잡을 기회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르고, 어쩌면 내가 발견하지 못한 미래의 실마리가, 직업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나의 가능성이 그 안에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잃지 않으며 내렸던 선택들의 결과가 지금의 좌절이라면, 지금도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래로 가기 위해 과거의 나로 여행을 떠났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실패자의 변명이나 아직도 철들지 못한 자의 궤변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나는 어느 정도 실패했고, 아직 철들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같은 지향점을 향해 같은 단계를 밟으며 비슷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보통의 사람이다. 누구나 꿈을 품고, 누구나 꿈을 쫓다가 현실에 부딪혀 좌절하거나 포기하곤 하므로, 그런 의미에서 나는 평범하다. 다만 나는 조금 고집이 세고, 조금 이상적이며, 조금 예민하고, 조금 세상물정을 모르며, 조금 느리고, 그리고..... 곧 마흔이다.


  인구의 평균연령이 높아지고 있는 시대에 많은 40대 이상의 분들에게 마흔은 아직 한창인 나이로 여겨지겠지만, 응석을 좀 부려보자면 나에게 마흔은 무언가 새로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것이 아닌지 걱정하게 되는 나이이고, 실제로 무언가 새로 시작하기엔 늦었을 지도 모르는 나이이며,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무언가는 이뤘어야 하는 나이로 여겨진다. 그동안 나에게 새해 그리고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순간들은 그저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는 사소한 일이었는데, 이상하게 마흔이라는 나이는 그 무게가 남다르다. (나이 체계가 바뀌어서 나이가 줄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흔이 코앞인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전히 돈만 버는 일은 하기 싫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나를 찾고 싶고, 그 일을 하며 성장하고 싶은 나는, 어쩌면 마흔이야말로 정말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나이일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가지고 있다.


  넘어지고 보니 눈 앞에 마흔이 덜컥 다가온 지금,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때 별소녀였던 나는 자라서 무엇이 되었을까....  라는 물음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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