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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새눈 Aug 04. 2023

무지렁이의 꿈

고집쟁이 우주인의 파란만장 지구생활 (적응기) 2



  천문학자가 되고 싶은 열망이 끓어오르는 채였지만, 어떻게 하면 천문학자가 될 수 있는지, 천문학자는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어디에 취직을 할 수 있으며 어느 정도의 연봉을 받는지 같은 정보에는 무지했다.

 

  내가 아는 것은 대학교에서 천문학을 전공해야 한다는 것과 공부를 계속해야 하며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 구체적인 과정은 잘 모르지만 공부만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사실뿐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면 열심히 할 테고, 열심히 하다 보면 잘하게 될 것이며, 잘하다 보면 길이 보이겠지. 그러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야.'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환상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대학에 가면 무슨 과를 갈 거냐고 묻는 주변 어른들의 질문에 천문학과에 갈 거라고 대답을 하면 90%의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나중에 기상캐스터 되는 거야? 이야 티브이에서 볼 수 있겠구나!"

 

  내가 쭈뼛거리면서 그게 아니라 지구 밖에 있는 별이나 우주를 연구하는 천문학자가 되는 거라고 설명을 덧붙이면, 어른들은 별하고 우주가 사람 사는데 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그게 대체 어디에 필요한 거냐고, 그걸로 나중에 돈 벌 수 있는 거냐고 정말로 궁금하고 순진한 얼굴로 물어왔다. 그러면 나는 또 조금 당황하면서, 천문이라는 게 옛날옛날에 농사지으며 살 때부터 발달한 가장 오래된 학문인데, 예전에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했고, 지금은 (우리의 일상을 이루고 있는 많은 과학기술들이 천문학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일상에) 꼭 필요하지 않아도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대충 얼버무렸다. 그러면 어른들은 이해가 안 되지만 더 물어도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간파하고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렇구나, 암튼 멋있는 거네. 파이팅!" 하면서 대화를 끝맺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탓에 아빠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이 천문학과 진학을 반대했다. 심지어 할아버지까지도. 천문학과가 뭐 하는 건지는 잘 몰랐어도 취업이 잘 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다들 분명히 알고 있었다. 나만 제외하고.

 

  집안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라고 표현했지만, 해도 잘 들지 않고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으며 밤이면 천장 위로 쥐들이 뛰어다니는 집에 살았고, 어른들의 사정을 자세히 몰랐지만 빚도 많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빚쟁이들이 전화를 걸어 화난 목소리로 부모님을 찾으면 집에 안 계신다고 말하는 역할을 주로 맡아서 했다.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집안에 감돌던 긴장감과 그때 사용하던 초록색 전화기 아직도 기억다. 중학교 시절에는 옆구리에 작은 가방을 낀 일수꾼이 집을 들락거렸고, 법원에서 빨간딱지를 붙이러 온 사람과 마주친 적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집안 형편이 나아지지 않고 점점 더 나빠졌던 것 같다. 중학교 때는 저소득 장학금, 고등학교 때는 교단에 계신 할아버지로 인해 (가족이 학교에 근무하면 줬던 혜택)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지만, 급식비를 제때 내지 못한 적도 많았다. 그런 일로 학교에서 이름이 불릴 때면 창피했고 주눅이 들었으며, 돈과 관련된 낯선 이들이 집을 방문하는 것도 무섭고 불쾌했지만, 그것이 앞으로의 내 인생에 어떤 제약을 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의 배려? 덕분에 돈이 없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좌절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고집이 센 편이었고, 좋아하는 것이라고는 별과 우주 밖에 없어서 다른 선택지를 고민해 본 적 조차 없었기 때문에 아빠의 지지를 등에 업고 천문학을 계속해서 지망해 보기로 했다.     

 

  고3 여름방학이 되기 전, 모의고사 점수보다는 내신성적이 좋았던 나는 1학기 수시전형으로 연세대 이학부에 지원해 보기로 했다. 이학부 안에는 수학과, 물리학과, 천문학과 등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1학기 수시전형은 보통 모의고사 성적 보다 내신이 좋은 학생들에게 유리한 전형으로, 자신의 예상 수능성적 보다 커트라인이 높은 곳에 지원하는 전략-상향지원-중 하나였다.) 그때 세종대에도 천문학과가 있고 1학기 수시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온 (오지랖 넓은)친절 담임 선생님이 어느 학교든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만 있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며 원서를 쓰는 김에 세종대도 같이 써보라고 권유했고, 나는 세종대에 대해서 서울에 있다는 정보 하나만 알고 있는 상태로 별생각 없이 원서를 썼다.

   

    연세대의 불합격 결과를 확인하고 나서 별 기대 없이 세종대의 합격여부를 확인하는 페이지에 들어갔을 때, ‘합격’이라는 글자를 마주한 순간 덜컥 겁이 나고 무언가 잘못된 건 아닌지 불안했던 마음과 합격의 기쁨이 교차하던 야릇한 기분을 기억한다. 나는 합격을 하고 나서야 1차 전형이 최종 전형이라는 사실, 1학기 수시에 합격하고 등록을 하지 않으면 재수를 해야 한다는 사실, 세종대는 (물론 좋은 학교지만) 1학기 수시전형으로 지원을 할 만큼 높은 커트라인의 학교는 아니었다는 사실, 더불어 기숙사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

 


  어쨌든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방학부터 자율학습을 하지 않았고, 수능시험을 치는 날 교실에서 시험을 치르는 대신 교문 앞에서 친구들을 응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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