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름 없는 불행

by 미문

너와 닮은 불행을 생각한다. 그 생각을 하며 밤을 지새웠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너를 생각하고 불행의 모습을 한 너의 생김새를 더듬느라 잠에 이루지 못하고 있다. 너를 위해 시간을 버리는 것도 이젠 의미가 없음에도 나는 그 의미 없음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 의미는 오로지 나만이 알 수 있고, 나만이 이해할 수 있다. 잠에 들고 싶지 않다. 너에 대해 생각하다 잠에 들면 기어코 악몽을 꾸곤 했다. 악몽 속에서 몸서리치며 잠에서 깨면 그 찝찝한 꿈들이 눈앞에 선명히 떠올랐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가 꿈속에 그토록 자주 나온다.

이름을 부를 수 없어서 너는 네가 된다. 단 한 번도 너에게 내 꿈에 대해서 말한 적은 없다. 내 꿈에 대해 이야기하면 너는 알지도 못하는 말을 지껄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단어들을 툭툭 내뱉을까.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아느냐고, 오만하게 물었다. 너는 비틀어진 입으로 나를 조각내듯 말했다. 너는 이미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를 내려버렸고 반박하기 위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네 입에서 흘러나온 내 모습이 너무 불행해서 고개를 처박고 울고 싶었다.

내 곁을 맴도는 너는 지독한 불행의 냄새를 풍기며 머물렀다. 불행의 냄새를 밟고 서서 너를 바라봤다. 네 얼굴에 붙어 있는 눈썹과 눈, 코와 입술. 사람의 모양새를 한 그 불행을 보며 나는 오랫동안 사람이라 착각했다. 불행이 모양새를 갖출 때마다 내 손끝은 아려오고 입술은 그 형태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너의 모습은 뚜렷해지는데 왜 내 얼굴은 흐려질까. 너는 되는대로 말했고 나는 되도록이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불행도 익숙해지면 습관이 된다는 걸 넌 알까. 그 익숙함이 공포로 느껴지기까지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걸까. 모든 것이 녹아버릴 것 같았던 그해 여름, 겨우 두 손을 딛고 올라와 마주한 게 고작 너라니. 모든 게 속수무책이었다.

온몸에 들러붙은 오랜 저주의 흔적. 이젠 너무 익숙해져 버린 불행 속에서 나의 작은 용기는 매번 산산이 무너졌다.


보기 좋게 무너지는 다짐과 변함없을 불행 속에서 수없이 인사를 나눈다. 네게 닿지도 못하고 흩어진 인사도 있었고 그 의미를 잃어버린 채 허공을 맴도는 인사도 있었다. 마주하는 게 두려운 것도 나의 오랜 습관이었다. 불행을 잡아챈 내 손에 네 손목이 가느다랗게 잡힌다.

입 안에서 떠도는 인사말을 혀끝으로 꾹 누른다. 다짐처럼 불행도 보기 좋게 무너져 내렸으면 좋겠어. 떠나보내는 것인지 맞이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자세로 인사를 건넨다.

안녕, 안녕.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