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행로

2024년 10월 4일 금요일

나는 충분히 말하기 위해 글을 쓴다. 쓰면서 걱정한다. 내가 너무 많이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글쓰기는 필연적으로 너무 많이 말하게 되는 작업이다. 일반적으로는 굳이 말해지지 않는 경험과 감정을 문장으로 남기는 작업이 내게 남기는 것은 무엇일까. 글쓰기를 통해 얻는 희열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 가치는 내가 정할 수 있다. 다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나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 그건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나는 심적으로나마 조금 더 건강해지고 있나. 어떤 응어리를 풀어내고 있나. 글쓰기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동시에 새로운 스트레스를 받는 작업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깊은 속내를 모두에게 말하는 일이다. 혼자이면서도 광장 한복판에 있는 기분을 느낀다. 나는 발가벗겨지고 재단된다. 그 일을 행하는 자는 다름 아닌 나이다. 나는 최대한 진실을 쓰고 싶다. 글 안에 내가 너무 깊게 들어가 있지 않기를 바란다. 글 속의 화자는 내가 아니다. 그는 나를 벗어난 무엇이다. 나를 거쳐 간 무엇이다. 글 속에서 말하는 자는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확인하고 나를 거스르고 지배한다. 내가 글을 장악하지 않으면 그 글은 성공할 수 있는가. 작가를 벗어난 글은 어디로 갈까. 글은 작가를 어디로 데려가고 싶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