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
알아버렸지만 (2024)
제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사람들이 알면.
민주는 말을 하다 숨을 한 번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선생님은 편안하고, 어쩌면 온화한 얼굴로 민주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민주는 잠깐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음, 사람들이 알면, 어.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면 반드시 선생님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데요,라고 물어올 것이고 그럼 반드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말하게 될 것이 뻔하니까. 다시 선생님의 표정을 살폈다. 선생님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이었고, 오히려 그 평온이 민주의 입 안으로 들어와 목구멍을 막는 게 느껴졌다. 그때 선생님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그 고갯짓이 다시 입 안을 파고들어, 목구멍을 막고 있던 평온을 뱃속으로 밀어 넣는다.
무서워할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저를.
고갯짓 한 번에 입에서 말이 스르륵 흘러나왔다. 마치 버튼을 누르면 나오게끔 설정되어 있는 것처럼, 다른 생각을 하기도 전에 나와 버렸다. 그에 이어서 이번엔 반대로 뱃속에서 뭔가가 역류하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데요?
역시나. 민주의 예상대로였다. 선생님은 여전히 차분하고 따듯한 표정으로 민주를 바라보며 묻는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기에 사람들이 무서워한다는 거예요? 사람이라도 죽일 거예요?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민주는 혼자서 그런 말을 떠올렸다. 비슷하죠, 뭐. 민주는 입을 열지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한동안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의 눈이 왠지 미묘하게 떨리는 것 같다. 진짜로 떨렸을지, 아니면 오히려 민주의 눈이 떨리는 것이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음.
무섭겠지, 아무래도. 무서워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을 알면. 나는 대체로 웃고 있으니까. 사람들은 대체로 내가 웃는 모습을 보니까. 사람들이 보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산다고? 정말로? 왜? 놀라면서 왜냐고 물어보겠지. 물어보지 마. 나도 모르겠단 말이야. 그냥 그런 생각이 드는데 어떡해. 그냥 내가 그렇게 생겨 먹었나 보지, 뭐.
무섭겠지, 아무래도. 무서워할 거야. 나는 네가 울고 있을 때, 슬그머니 너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데리고 나갔던 사람이니까. 괜찮아? 무슨 일 있어? 나는 네가 울고 있을 때, 먼저 물어보고 너의 이야기를 궁금해했던 사람이니까. 나는 네가 울고 있을 때, 단지 네가 울고 있다는 것만으로 너를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던 사람이니까. 그런 내가 너의 등 뒤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었는지 알면 내가 무서워지겠지.
음.
기어코 식도를 타고 올라온 뭔가가 입 안을 휘젓는다. 민주는 그것들을 밖으로 내뱉지 않으려고 목을 가다듬는 시늉을 하면서 음, 음, 소리를 냈다. 혀를 감싸고, 이 사이사이까지 파고든 것들이 입 안을 마구 헤집어 놓는다.
이런 말을 해버리면 모든 것이 걷잡을 수 없게 되어버릴 거야. 여기서 이렇게 토해버리면 이곳이 온통 난장이 되어버리고 말 거야. 내가 뱉어버린 말이 나에게 덕지덕지 붙고 묻어서 나는 엉망이 되어버릴 거야. 그걸 알고 있어. 그걸 알고 있는데.
머리가 빙빙 돌기 시작한다. 눈앞이 새하얘진다. 호흡이 가빠지는 게 느껴진다. 민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지러워, 눈을 뜰 수가 없어.
민주씨?
네?
무슨 생각이기에 사람들이 무서워한다는 거예요? 사람이라도 죽이려고요? 감긴 눈두덩이 아래에서 민주가 만들어 낸 선생님의 목소리가 떠다닌다. 무서워. 너 왜 그래? 가빠진 호흡 아래에서 품에 안겨 울던 친구의 목소리가 몸서리친다. 왜? 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 네가 왜? 역시나 민주가 만든 목소리였겠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눈을 감은 채 민주는 책상 위에 와락 토를 해버렸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토해버려서 죄송해요. 이제 제가 죽어버릴까 봐 걱정을 하겠죠. 그런 걱정을 묻혀버려서 미안해요. 정말요.
-년 -월 -일 -요일
죽고 싶다. 죽고 싶어. 죽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그만하게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자꾸 하다 보면 정말 죽어버릴지도 모르는데. 죽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죽었으면 좋겠다. 죽고 싶다. 죽고 싶어. 힘들어. 나는 죽어야 될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죽어야 끝이 날 것 같다. 죽고 싶다. 죽어 버려. 그냥 죽어. 제발 그냥 죽어. 이런 괴로운 생각을 그만두려면 나는 역시 죽어야 하는 걸까? 미안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닌 척 네 앞에서 웃어서 미안해. 미안해요. 힘들게 낳은 내가 자꾸 죽을 생각을 해서. 미안해. 이런 생각밖에 못 하는 나라서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서 괴로워. 그래서 아무래도 죽어야 될 것 같아. 그것도 미안해. 결국에 죽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나라서. 내가 결국 죽어 버릴 거라서 미안해. 죽고 싶다. 이런 마음도 모르고, 아무것도 남지 않고, 그냥 죽어버렸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그냥 죽어버렸으면. 죽고 싶네.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