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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실재계에 있는가

예도 TV 구정특강

by 이상균
이미지 1.png ⓒ 광주시


너무나 좋은 강의를 들었어서, 간단한 소개글을 쓴다.


"이거 받아요. 우리 아들이랑 헤어져요. 혜연 씨는 똑똑한 사람이니까 무슨 뜻인지 알 거예요."


수많은 한국 드라마에서 클리셰로 쓰이는 이 장면을 알 것이다. (너무 밈화 되어서 최근 드라마에서는 본 적이 없다) 대개는 신분, 계급 차이의 여주에게 남주의 어머니가 돈을 건네며 헤어져달라고 하는 장면이다.


우리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누군가 분절해 놓은 상징의 세계를 산다. 나는 이상균이라는 이름을 가졌고, 서울에 살며, 소설을 쓴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들은 실은 상징이다. 실재가 아니다. 이름이야 상징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테고, 생각해 보면 서울이라는 도시 이름이나, 소설이라는 개념도 내가 만든 것은 아니다. 이것들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모두 누군가 명명한, 나 이전에 이미 존재한 상징들이다. (자세한 얘기는 아래에 다른 글을 링크해 놓겠다)


하지만 사랑은 상징이 아니다.


이 유명한 클리셰 다음 장면은 어떻게 되는가? 작품마나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개 여주는 그 돈을 거절한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상징은 돈이다. 우리 세계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늘 돈이다. 하지만 사랑은 실재계에 속하는 것으로, 따라서 모든 상징을 넘어서 있다. 돈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여주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상징계의 대타자인 돈조차 거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을 죽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결혼은 실재계에 속한 사랑을 상징계에 붙들어 두려는 시도다. 실재가 언어를 통해 상징계에 도래하면 죽음을 당하듯, 사랑은 결혼을 통해 상징계에서 죽음을 맞는다. 결혼을 목표로 사랑을 하는 것은 상징계에 복종하려는 태도다.


잘 생각해 보면 상징계는 늘 사랑을 살해하려 하고 있다. 당신은 결혼을 했는가? 어떤 사람과 결혼하려 하는가?


우리는 신분과 계급은 물론이고, 인종, 나이, 성별, 모아둔 재산, 요즘에는 부모님이 노후 준비가 되었는지 조차 살펴보며 결혼 상대를 고른다. 많은 이들이 이미 상징을 넘어서 있는 사랑을, 기껏해야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누군가 만들어 놓은 상징일 뿐인 무엇인가로 재단하려 드는 것이다.


한 번 들어보기를 권한다. 40분짜리 강의인데, 앞에서 10분만 들어도 된다. 10분 이후에는 이 이야기는 더욱 깊어지지만, 핵심은 앞 10분에 다 들어있다.



https://youtu.be/H7BGHm8pyUk?si=obro8VKCxX0clV4b

예도 TV 구정특강: 사랑은 왜 실재계에 속할까?

https://brunch.co.kr/@iyooha/49

https://brunch.co.kr/@iyooha/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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