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회고
#트레바리 클럽 [인생에 보탬은 안되지만] 네번째 시즌이 끝났다. 언제나 처럼 즐거웠고, 매 순간 놀라웠던 시즌이었다.
첫번째 날, 우리는 존 그리빈의 <이토록 기묘한 양자>를 읽고 우리 시대 정상과학인 코펜하겐 해석을 위협하는 양자역학의 새로운 해석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파일럿 파동이 입자를 목표 지점까지 안내한다는 파일럿 파동 해석과, 독가스가 든 상자를 열면 고양이가 살아 있는 우주와 죽어있는 우주로 우주가 분리된다는 다세계 해석이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두번째 날, 우리는 박찬국 교수님의 <내 삶에 인생을 들일 때, 니체>를 읽고 근원적 일자로서의 디오니소스적 우주와, 분절되어 존재하는 아폴론적 개별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이 시간을 준비하기 위해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읽었는데, 이 책은 기대나 난이도에 비해 내게 전혀 다른 방향의 깨달음과 성장을 가져다 주었다. 나는 니체를 통해 놀랍게도 비로소 라캉을 이해하게 되었다.
세번째 날, 우리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었다. 엄청난 두께를 가진 벽돌책을 읽고 우리는 이제는 카이퍼벨트 너머를 항해하고 있는 보이저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가 모두 별의 아이들이라는 칼 세이건의 말이 문학적 은유가 아니라 물리적 서술이라는 것을 깨닫고 놀라워했다.
마지막 날, 우리는 이규현 번역가가 쓴 <미셸 푸코, 말과 사물>을 읽었다. 이번 모임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르게 진행해 보았다. 작은 슬라이드들을 준비하고, 중요한 꼭지들을 강독했다. 아마 지금까지 진행한 모든 [보탬] 모임 중에 전달력으로는 단연 최고의 모임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푸코가 직접 쓴 <말과 사물>의 마지막 문단을 함께 읽고, 그 문단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음을 놀라워했다.
우리 클럽은 이제 또 두달 간의 휴식기에 들어간다. 마냥 쉬는 것은 아니다. 쉬는 것은 나 뿐이고, 두개의 인터루드가 기다리고 있다. 김병철 이 준비하고 있는 <말과 사물 심화> 세미나와, Woosang Hwang 이 준비하고 있는 <신학 입문> 세미나다. 인터루드에서 나는 클럽장이나 진행자가 아니라 청강자 중 한 명이 된다.
그 외에도 특별한 이벤트가 많았던 시즌이었다. 우리는 영화 <멜랑콜리아>을 함께 보고 회고하는 번개 이벤트를 만들었었는데, 마지막 날 회고를 하며 그 모임이 가장 좋았다는 멤버도 있었다. 나도 영화 번개 모임을 더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심민경 크루의 기획으로 박찬국 교수님의 <내 삶에 예술을 들일 때, 니체> 북토크 이벤트에 대담자로 참여할 기회를 받았는데, 이 이벤트는 아마 내 삶에 오래도록 기억할, 자부심과 대견함을 담아 돌아볼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네개의 시즌 중 가장 밀도가 높았던, 많은 일들이 있었던 시즌이었다. 나는 이제 두 달을 쉬며 다섯번째 시즌을 준비한다. 아무래도 시즌 중에는 내가 읽고 싶은 책 보다는, 주제책과 관련된 책을 읽고, 주제책 근처에 있는 유튜브 강의를 듣게 된다. 이제 당분간 마음을 내려 놓고, 책장에 쌓아만 둔 책들을 읽기 시작해야지.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번 휴식기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도전할 계획이다.
이하 이번 시즌에 읽은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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