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힘

또 다른 삶의 시작

by 작가 시일


거울 앞에 서서 두 손으로 얼굴을 더듬는 영환은 낯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인생의 끝자락에 서 있던 자신이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민철 덕분에 목숨을 구했을 뿐 아니라, 평생 상상도 하지 못했던 성형수술을 받아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영환의 가슴은 설렘과 불안이 뒤섞인 채로 요동쳤다. "이 얼굴로... 나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까?" 거울 속 자신을 보며 영환은 계속해서 속으로 되뇌었다.

그때 병원 문이 열리고, 수술을 담당한 의사가 들어왔다.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영환을 바라보았다.

“수술은 아주 잘 끝났습니다. 이제 붕대도 다 풀렸으니, 앞으로는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으실 겁니다.”

영환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한 번 더 확인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원장님, 부모님도 저를 못 알아보셨어요. 이렇게 멋진 얼굴로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영환은 감격에 차 있었다. 그가 평생 꿈꿔온 모습은 아니었지만, 이 얼굴은 분명 과거의 그와는 전혀 다른 삶을 약속하는 듯했다.

병원을 나서는 영환의 마음은 마치 날아갈 듯 가벼웠다. 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렸다. 민철의 전화였다.

“영환 씨, 병원 진료는 잘 받으셨나요?” 민철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수술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이제 병원 주차장으로 가시면 영환 씨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영환은 의아해하면서도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에는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남성이 서 있었다. 그 남성은 영환을 확인하더니 곧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대표님께서 영환 씨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남성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영환의 앞에 최고급 검은색 포르셰가 눈에 들어왔다. 눈이 휘둥그레진 영환은 잠시 말을 잃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남성에게 물었다.

“혹시 착오가 있는 거 아닌가요? 이건 저한테 너무 과분한데요...?”

남성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님께서 영환 씨를 위해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차 안에 편지가 하나 들어 있습니다. 그것도 함께 읽어보시면 됩니다.”

포르쉐.jpg

영환은 조심스럽게 차 안에 놓인 편지를 열어 읽기 시작했다.


영환 씨,

저도 한때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있었지만, 그때 다시 태어날 기회를 얻었습니다. 당신은 저보다 훨씬 똑똑하고 능력 있는 분입니다. 영환 씨가 이번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면, 저보다 훨씬 더 멋진 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저희 THE PROGRAM이 더 성장하는 데 있어 영환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포르셰는 영환 씨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준비한 선물입니다. 포르셰처럼 빠르고 멋진 시작을 하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저와 함께 일하게 된다면, 몇 가지 지시 사항이 있습니다. 만약 함께하기 어렵다면 말씀해 주세요. 지금까지 받으신 지원에 대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각자의 길을 갈 수 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저와 함께하겠다는 결심이 들면, 아래 지시사항을 따라주시면 됩니다.


앞으로 영환 씨의 개인적인 삶을 제외하고는 공식적인 삶은 제가 설계하는 대로 따르셔야 합니다.


직장 내 마음에 드셨던 여성과의 인연은 퇴사 후에만 가능합니다. 사적인 감정으로 우리의 신원이 노출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신원이 노출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영환 씨가 지게 됩니다. 하지만 저를 믿고 함께해 주신다면, 큰 어려움 없이 함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신다면, 이 편지를 차량 안내인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을 내려도 좋습니다.


편지를 읽는 내내 영환의 머리는 복잡하게 얽혔다. '이게 나에게 무슨 일일까?' 심장이 두근거렸고,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주차장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자신을 바라보는 정장 남성의 눈길이 느껴졌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아니면...?'

하지만, 영환에게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었다. 직감적으로 결정을 내린 그는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편지를 다시 접어 남성에게 건넸다.

“대표님께서 곧 이 핸드폰으로 연락을 주실 겁니다.” 남성은 새 핸드폰을 영환에게 건넸다. 영환이 핸드폰을 켜자, 배경화면에는 THE PROGRAM: 환경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다음 날

텔레그램으로 긴 메시지가 도착했다.

“영환 씨, 앞으로 5개월간 아래 미션을 완료하십시오. 모든 비용은 제가 지급하겠습니다.”

김영환 씨는 앞으로 김수현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신분증을 재발급받으세요.


이력서를 작성해 S기업 마케팅부서 경력직으로 지원하세요.


강남에 준비된 아파트로 이사하고, 골프 레슨을 시작하며 서울 인근 골프 회원권을 구입하세요.


입사는 이미 협의가 끝났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영환은 새로운 인생의 첫 발을 내디뎠다. 김수현이라는 이름으로 S기업에 입사한 후, 그는 어느새 사무실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김수현 과장입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팀에 기여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회의실에서 단정한 정장을 입고 자신감 있게 인사했다.

김수현의 세련된 외모와 품격 있는 태도는 특히 여성 직원들의 이목을 끌었다. 사무실의 분위기가 그가 등장한 후로 달라졌고, 그의 명석한 시장분석과 전략은 이미 입사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입사 환영 회식

그날 밤, 수현은 예지의 미소를 기억하며 홀로 웃었다. ‘이제, 정말 새로운 시작이구나.’

그날 저녁, 김수현의 입사를 축하하는 회식이 열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편안한 마음으로 음식을 즐기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김수현은 자연스럽게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이예지에게 말을 걸었다.

"예지 씨, 반가워요. 이렇게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네요. 앞으로 많이 도와주세요."

그의 미소는 부드럽고, 예의 바른 태도가 예지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예지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미소로 대답했다.

"네, 수현 씨. 저도 반갑습니다. 입사 정말 축하드려요. 앞으로 자주 뵐 것 같네요."

수현은 잠시 예지의 미소에 시선을 두었지만, 곧 마케팅 팀장에게 눈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팀장님, 골프 잘 치신다고 들었어요. 저도 얼마 전에 시작했는데, 나중에 기회 되면 한번 같이 라운딩 가면 좋겠습니다. 혹시 부킹이 어려우시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수도권에 무기명 회원권이 하나 있어서 도와드릴 수 있을 거예요."

마케팅 팀장은 이내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정말? 무기명 회원권이라니, 부럽구나! 그럼 언제 한번 꼭 같이 가자고. 기대된다!"

회식 자리는 점점 더 무르익었고, 모두가 수현에게 관심을 집중했다. 그는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어울리며 대화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의 능력뿐 아니라, 따뜻하고 친근한 태도에 많은 이들이 호감을 느꼈다.

회식이 끝날 무렵, 마케팅 팀장이 말했다.

"대리운전 부를 사람은 부르고, 택시 탈 사람도 미리 준비하세요. 이제 슬슬 마무리합시다."

박찬희 과장은 자연스럽게 예지를 보며 말했다.
"저는 도곡동으로 가는데, 예지 씨도 같은 방향이죠? 같이 가면 좋겠네요."

박 과장은 예의상 수현에게도 물었다.
"수현 씨는 어디로 가세요?"

수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저도 도곡동 쪽인데, 대리운전 불렀어요. 먼저 가세요."

수현이 먼저 도착한 대리운전기사를 타고 멋진 스포츠카로 떠나자, 박 과장은 무심히 한마디 던졌다.

"뭐야, 금수저야? 저렇게 돈 많으면 뭐 하러 직장 다니는 거야?" 그는 투덜거리며 택시를 기다렸다.

예지는 그 말을 듣고 살짝 웃었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돈이 많다고 노력을 안 하는 건 아니지. 오히려 자기 분야에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게 더 멋지지 않나?'

박 과장은 예지의 미소에 살짝 질투심을 느꼈다. 김수현의 성공적인 첫날이 그에게는 위협으로 느껴졌다.


다음 날

회식의 여파로 예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 다행히 지각은 면했지만, 여전히 피곤함이 가시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책상에 앉자, 눈앞에 놓인 선물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살짝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다잡으며 우선 컴퓨터 모니터를 켰다. 그때 슬그머니 예지의 책상 위에 숙취 해소제를 올려놓고는 박찬희 과장이 어깨를 툭 치고 사라졌다.

예지는 선물상자가 당연히 박 과장이 두고 간 거라 생각했지만, 그 순간 문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다시 책상 위에 놓인 선물 상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 쪽지와 두 개의 선물이 있었다.



예지 씨,
어제 저의 입사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고자 작은 뇌물을 준비했어요. 어제 술 많이 드셨을 텐데, 여성은 남성보다 간 기능이 약해서 숙취해소제가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대요. 그래서 대신 코코넛 워터를 준비했어요. 그리고 종종 머리가 아플 때는 이 허브 오일을 이마에 바르면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김수현 올림


예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책상에도 같은 사이즈의 선물이 놓여 있어,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나만 받은 게 아니구나.' 숙취해소제는 모니터 옆에 살짝 밀어 두고, 코코넛 워터를 한 모금 마셨다. 신선한 맛이 혀끝에 닿자, 동남아의 아름다운 해변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상쾌함이 느껴졌다.

손가락 끝으로 허브 오일을 살짝 찍어 이마에 발라보니, 상쾌한 향이 그녀의 머릿속을 맑게 해 주었다. 예지는 잠시 눈을 감고 느긋하게 숨을 내쉬며, 이 순간의 편안함을 만끽했다.

'수현 씨... 참 섬세한 사람이구나.' 예지는 마음속으로 수현의 배려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S기업의 마케팅 팀장은 예지와 수현 두 사람에게 중대한 프로젝트를 맡기며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우리 회사에 큰 영향을 미칠 거예요. 그래서 두 분이 같이 준비를 맡게 되었어요. 수현 씨, 예지 씨, 기대 많이 할 테니 열심히 해주세요."

수현과 예지는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나눴다. 팀장은 둘이 함께라면 좋은 시너지가 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박찬희 과장은 그 장면을 보고 속으로 불편함을 느꼈다. 수현과 예지가 함께 있는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수현과 예지는 프로젝트 준비 과정에서 늘 함께 있었다. 서로의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자료를 검토하며, 자연스럽게 웃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많아졌다. 그런 시간들은 부담스러움보다는 오히려 편안했다. 수현은 언제나 한결같은 배려와 차분한 태도를 보였고, 예지는 그의 따뜻한 성격에 점점 마음이 편해졌다.

그날 밤, 수현과 예지는 또 한 번의 야근을 마치고 있었다.

"이 부분만 조금 더 수정하면 완벽할 것 같아요." 수현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박찬희 과장은 처음에는 담담하게 두 사람의 협력 관계를 지켜보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예지와 수현이 가까워지는 모습이 그의 마음속에 얇게 깔려 있던 평온을 서서히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웃음소리, 자연스럽게 오가는 대화,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서로를 도우며 나누는 가벼운 농담까지—모든 것이 박 과장에게는 가시처럼 마음에 박혔다. 분명 단순한 업무상의 협력일 뿐인데도, 그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 감정이 뭐라고 부르든, 분명 질투였다. 질투라는 감정이 그의 내면에 점점 깊이 파고들었다.


질투는 박 과장이 가장 피하고 싶었던 감정 중 하나였다. 그가 경력자로서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프로페셔널한 태도와 이성적인 판단은 질투라는 감정 앞에서 허물어지는 듯했다. 그는 자신의 연륜과 성숙함을 자랑스러워했지만, 그토록 경멸하던 감정에 점점 사로잡혀 가고 있었다. 수현이 예지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며 살짝 웃는 모습, 예지가 그에 맞춰 부드럽게 미소 짓는 장면—그 모든 순간이 그의 눈앞에서 자꾸만 떠올랐다.


그러나 그 감정을 드러낼 수 없다는 것도, 그를 더욱 괴롭게 했다. 그는 이 상황이 업무적인 협력이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지가 수현과 함께 있을 때마다 자신이 점점 밀려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치 그들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엔 그저 단순한 질투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감정은 이제 그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었다. 심지어 사소한 대화조차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날 저녁, 야근을 하고 있던 박 과장은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수현과 예지가 나란히 앉아 화면을 보며 작업을 하는 모습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그들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은 팀워크의 완벽한 예시였다. 그러나 박 과장에게는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이 완전히 배제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예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이제는 사라져 버린 듯한 허탈감이 그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는 그 감정에 스스로 놀라며도 동시에 멈출 수 없었다. 이미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 감정이 틀어져 있었고, 그걸 억누르려 할수록 더 강렬해졌다. 자신이 예지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감정이 그를 휘감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박 과장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수현에게 다가갔다.


“수현 씨,” 박 과장은 차분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썼지만, 목소리에는 미묘한 날카로움이 서려 있었다. “요즘 참 열심히 하시네요. 근데, 좀 지나치게 친해지신 것 같네요, 예지 씨하고.”

수현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놀란 듯했지만, 이내 차분하게 응답했다. "박 과장님, 예지 씨와 함께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거니까 서로 협력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죠."

수현의 차분한 대답에 박 과장은 속으로 자신이 감정을 폭발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더 뚜렷하게 인지했다.


그는 수현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이 단순히 업무적인 것임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속의 감정은 전혀 달랐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질투와 불안감은 이성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서 갈등이 격렬하게 일어났고, 그 감정의 소용돌이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그 순간, 예지의 눈빛이 박 과장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의 눈에는 실망과 피곤함이 어른거렸다. 예지는 박 과장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그가 보인 태도에 실망감을 느꼈다. 그동안 박 과장은 항상 냉철하고 성숙한 선배로서 그녀의 존경을 받아왔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의 불안정한 태도는 그녀에게 더 이상 그를 의지할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예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왜 저렇게 감정적으로 대응할까….' 그녀는 박 과장이 보이는 질투 섞인 반응이 점점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가 보였던 프로페셔널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이제 그의 행동은 성숙하지 못한 남자의 불안정한 반응으로 보였다. 예지는 그런 그의 모습에서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그가 보였던 냉철한 판단과 리더십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고, 지금의 박 과장은 자신이 알던 그 사람과는 전혀 달랐다.


그때, 갑자기 클라이언트로부터 긴급한 수정 요청이 도착했다. 예지는 그 순간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수현 씨, 수정 요청이 왔어요. 지금 바로 처리해야 할 것 같아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즉시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의 빠른 대처와 침착한 태도는 예지에게 신뢰감을 주었다. 예지는 그가 얼마나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인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가 보이는 성숙한 프로페셔널함은 상황을 빠르게 정리했고, 예지는 그와의 협력이 자연스레 더욱 편안해졌다.

반면, 박 과장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억누를 수 없는 불안감과 자책감이 함께 소용돌이쳤다. 그는 이런 감정을 느끼면 안 된다는 걸 스스로에게 되뇌었지만, 이미 너무 깊이 빠져 있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그로 인한 후회는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고개를 들었지만, 이미 두 사람은 바쁜 업무에 집중해 있었다. 그 자리는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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