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금은 성벽일까, 비눗방울일까?
아주 오래전 어느 마을에서,
사람들은 성벽을 보며 '세월'이라 불렀다.
무겁고 튼튼해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
쌓이고 또 쌓여,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
그리고 어느 날,
그 성벽 앞을 날아가는 투명하고 가벼운 비눗방울 하나를 보고 말했다.
"저건 '순간'이야."
잠깐 반짝이다 사라지는 것.
닿기도 전에 터져버리는, 너무도 짧은 아름다움.
세월과는 너무도 달랐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순간'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들은 성벽 같은 세월을 쌓으며 살아갔다.
반면, 순간은 그저 감탄하고 흘려보내는 것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의 순간이
단단한 성벽에 닿아 터져 버렸다.
그 일은 점점 자주 일어났다.
그러자 누군가는 순간이 깨질까 세월을 쌓지 않았고,
누군가는 터져버릴 게 뻔하다며 더 이상 순간을 불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사람들은 지쳐갔다.
마을에는 더 이상 순간이 없었고,
순간이 없자 세월도 더 쌓이지 못했다.
사람들은 절망에 빠졌다.
희망이 없다고 느낀 이들은
세월과 순간을 탓하며 서로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이건 다 네 순간이 연약해서 그래.”
“아니, 네가 세월을 너무 거칠고 단단하게 세운 탓이야.”
그때였다.
마을의 어느 청년이 말했다.
“우리가 이름을 잘못 붙인 것이 아닐까요?”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청년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생각해 보면 비눗방울은 '세월'과 같아요.
이미 흘러간, 잡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죠.
그리고 우리가 만들던 이 성벽이야말로 '순간'이에요.
하나하나 단단히 쌓여,
지금의 우리를 지탱해 주는 벽돌 같은 시간들이니까요.”
그날 이후, 사람들은 견고한 순간을 쌓으며 살아갔다.
그리고 가끔은 그 위에 앉아
세월을 감상하곤 했다.
비눗방울은 여전히 성벽에 닿아 터졌지만,
이제는 괜찮았다.
순간이 살아 있는 한
세월은 얼마든지 불어낼 수 있었으니까.
지나간 것을 아름답게 떠올리고,
지금 이 순간을 단단히 살아내는 것.
그건 어쩌면,
이 세상을 조금 더 오래 사랑하는 방법인지도 모른다.